'현대철학' 카테고리의 설명
|
|
0
|
289
|
11월 21, 2021
|
김경만, 「현대성, 합리성, 문화 변동에 대한 하버마스와 로티의 논쟁」
|
|
3
|
306
|
11월 13, 2023
|
VV Mayor, 「Die Idee der Philosophie als Kritik bei Nietzsche und Adorno」
|
|
0
|
109
|
10월 19, 2023
|
비트겐슈타인 연구의 신세대가 출현했다?: 마리우스 바르트만의 책에 대한 단상
|
|
1
|
1406
|
9월 15, 2023
|
표상주의에 대한 로티의 비판에서 핵심은 무엇인가?(feat. 로버트 브랜덤)
|
|
5
|
559
|
9월 12, 2023
|
게메스, 「포스트모더니즘의 니체 이용과 오용」
|
|
8
|
481
|
8월 18, 2023
|
'진짜' 니체는 누구? - '힘에의 의지' 사용과 관련하여
|
|
1
|
301
|
8월 17, 2023
|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적 사기인가?: 로저 스크루턴의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에 대한 단상
|
|
4
|
655
|
8월 10, 2023
|
언어적 전회 이후의 사회적 전회?!
|
|
2
|
428
|
8월 9, 2023
|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계승자인가, 배반자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하이데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볼피, 타미니오, 타나사스의 해석
|
|
3
|
445
|
7월 11, 2023
|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동국대 김종욱 교수
|
|
0
|
262
|
7월 6, 2023
|
하이데거와 아리스토텔레스: 파나지오티스 타나사스, 「프로네시스 vs. 소피아: 하이데거의 양면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2)
|
|
0
|
183
|
5월 1, 2023
|
하이데거와 아리스토텔레스: 파나지오티스 타나사스, 「프로네시스 vs. 소피아: 하이데거의 양면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1)
|
|
0
|
353
|
4월 14, 2023
|
말년의 양식 ; 분석 철학에서도 대작은 나온다
|
|
3
|
548
|
4월 21, 2023
|
현대철학의 문제들: 미셸 푸코
|
|
7
|
1099
|
4월 16, 2023
|
'강단철학'과 학계의 권력
|
|
4
|
1170
|
4월 9, 2023
|
니체의 삶-긍정(life-affirmation)과 삶-강화(life-enhancement) 개념 구별
|
|
3
|
479
|
4월 8, 2023
|
Preliminaries to Tugendhat's theory of Self-consciousness: Dieter Henrich's criticism on the previous theories of the Self-consciousness
|
|
4
|
234
|
4월 6, 2023
|
현대철학의 문제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
1
|
664
|
3월 24, 2023
|
현상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해석
|
|
2
|
457
|
3월 19, 2023
|
아시아의 분석철학: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
5
|
699
|
2월 3, 2023
|
전기 푸코의 칸트의 니체화 전략과 그 실패 - 권력과 저항 中
|
|
0
|
263
|
2월 3, 2023
|
현대철학의 문제들: 위르겐 하버마스
|
|
2
|
677
|
1월 29, 2023
|
「부정신학 없는 해체주의를 향하여: 해체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출판
|
|
6
|
838
|
1월 25, 2023
|
현대철학의 문제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
0
|
495
|
1월 20, 2023
|
[번역/연재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가 (8)
|
|
0
|
550
|
11월 22, 2022
|
1951년 파리의 어느 술집: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또 하나의 갈림길
|
|
3
|
683
|
11월 22, 2022
|
<차이와 반복> 강독 소개
|
|
1
|
950
|
10월 8, 2022
|
니체의 투쟁 개념 해석과 아곤적 투쟁의 메커니즘에 관한 두 입장
|
|
2
|
646
|
9월 29, 2022
|
"제 얘기를 이해하질 못하시네요."
|
|
13
|
1197
|
9월 2,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