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아주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교에서 철학사를 가르치는 파올로 트리포디(Paolo Tripodi)가 쓴 Analytic Philosophy and the Later Wittgensteinian Tradition이라는 책입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지닌 영향력이 1970년 이후로 분석철학계에서 점점 쇠퇴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네요. "From the Golden Age to the Decline"이라는 제목을 지닌 제1장을 읽어보았는데,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역사가의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보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연구자들의 시대별 증언은 물론이고, 비트겐슈타인 인용 지수나 비트겐슈타인 관련 출판물의 양 같은 통계 자료를 가지고서도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부흥과 쇠퇴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더라고요.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분석철학계에서 더 이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항상 아주 의아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일종의 '후기 비트겐슈타인주의적' 관점의 철학을 선호하기 때문에 편향적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로서는 70년대 이후의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명확하게 '극복'되었다고 할 만한 이유나 사건을 알고 있지 못해서요.
물론, 콰인의 "On What There Is"을 통해 존재론적 개입 기준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났고, 루이스와 크립키를 통해 양상논리의 의미론과 가능세계 형이상학이 제시되자,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이 분석철학 내부에서 다시 크게 일어났기는 했죠. 소위 '분석적 형이상학'이라는 명칭이 생겨났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저로서는 과연 이런 사조들이 정말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극복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무시한 것인지에 대해 잘 확신이 서지 않아요. 분석적 형이상학의 지지자들과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 사이의 뚜렷한 '논쟁'이나 '대결'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요.
트리포디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쇠퇴가 철학 내적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보네요. 물론, 트리포디 스스로 자신의 책을 철저한 '철학사 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니, 개별 철학의 이론이나 주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보다는 그 철학들이 생겨난 역사적 맥락과 사회학적 환경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방법론상의 제약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트리포디는 그런 사회학적 환경이 결코 손쉽게 무시되기 어렵다는 점과, 철학의 논의를 추동하는 힘이 실제로는 논증보다는 다른 외적 요인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네요.
"이 책은 철두철미하게 철학사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의되고, 바라건대, 부분적으로 설명되는 역사적-철학적 현상은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어서, 넓은 의미에서, 관념사, 지성사, 지식사회학으로부터 빌려온 여러 가지 관점들의 뒷받침을 필요로한다. 요점은 철학적 논증들이 그 논증들의 결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논증도 결론도 철학적 성공이나 실패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참된 관념들의 내재적 힘'은, 관심, 편견, 열정의 형태로, 모든 영역으로부터 끊임없이 저항에 직면하기 때문이다."(Bourdieu 1999: 220). 사회적 메커니즘과 광범위하게 문화적인 조건들은, 비록 종종 세부사항을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간과하기 어려운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방법론적으로 매우 포괄적이며, 종종 (개념 분석, 합리적 재구성, 역사적 맥락에 대한 조사 같은) 철학사의 전통적 방법을 다양한 종류 (질적이고 양적인) 사회학적 도구와 개념과, 경제사로부터 빌려온 (특별히 아날 학파에 속하는) 범주들과, 프랑코 모레티에 의해 수십 년 전에 문학사로 도입된, 소위 '멀리서 읽기 방법(distant reading method)'과 결합시킨다(Bloor 1976; Braudel 1980/1997; Bourdieu 1984a; Kusch 1995, 2000; Wallerstein 2000; Moretti 2005, 2013)."(Tripodi, 2020: 3)
"[…] 이 책은 [철학사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이 아니며, 철학사 속 추동적 힘이 가장 우선적으로 철학적 논증이라는, 분석철학자들에게 종종 수용되고 심지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관점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책은 추동적 힘이 논증의 표면 아래에서, 포괄적으로 문화적이고 심지어 사회적인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관점에 공감한다(예를 들어, Bourdieu 1984a, 1999; Bloor 1976; Kusch 1995). 이 책은 개별 사례 연구를 통해, [다시 말해] 분석철학의 역사 속 비트겐슈타인의 쇠락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관점의 타당성을 보여주거나 아마도 단순히 제시하기 위한 시도로서 여겨질 수 있다."(Tripodi, 2020: 21)
아직 제1장밖에 읽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트리포디가 어떤 문화적 혹은 사회학적 요인이 후기 비트겐슈타인 전통의 쇠락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는지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1장 내용 중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비트겐슈타인과 그 제자들이 후속 세대를 키워내는 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었어요.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앤스콤, A. C. 잭슨, 개스킹, 굿스타인이라는 네 명의 직계 제자가 있었고, 그로부터 나온 115명의 '제자의 제자'가 있긴 하였지만,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는 '비비트겐슈타인적 분석철학자(non-Wittgensteinian analytic philosophers)'라는 사실입니다.
가령, 노먼 말콤을 비트겐슈타인의 직계 제자 목록에 추가로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말콤이 지도한 70명의 학생들 중 47명은 시드니 슈메이커를 자신들의 '선조(forefather)'로 여긴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과 단절되어 있다네요. 또한, 폰 라이트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야코 힌티카도 비트겐슈타인 정통과는 거리가 있고요. 앤스콤의 세 제자인 앤서니 케니, 필리파 풋, 마이클 더밋 중에서, 마지막 두 사람이 키워낸 37명의 학생들도 상당수가 '비트겐슈타인주의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하네요.
콰인에게 247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 중에 도널드 데이비슨, 데이비드 루이스, 길버트 하만 같은 후속 세대를 선도하는 인물들이 나왔던 것에 비교해 보면, 비트겐슈타인과 그 직계 자제들로부터 '정통 비트겐슈타인주의자'라고 할 만한 인물들은 100명도 채 나오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이승종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이승종 교수님께도 "비트겐슈타인의 영향력은 왜 쇠락하였는가?"라는 일련의 질문을 드린 적이 있거든요.
윤유석: 오늘날의 철학자들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목할 만한 철학자로는 누가 있나요?
이승종: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탁월한 후계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여전히 고독한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이승종 & 윤유석, 『철학의 길: 대화의 해석학을 향하여』, 세창출판사, 2024, 143쪽.)
오늘 대학원 논리철학 수업을 청강하러 갔다가 주변의 다른 대학원생들에게도 "왜 오늘날 분석철학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나?"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한 분은 논리철학과 존재론을 전공하시는 박사과정생이신데, 이렇게 대답해 주시더라고요.
H: 비트겐슈타인이 잊혀졌다고 할 수 있나요? 다른 사조들에 포섭되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요?
나: 가령, [메타존재론에서의] 카르납주의 같은 사조에 비트겐슈타인이 들어갔다는 거죠?
H: 반드시 카르납주의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비트겐슈타인과 XXX"이라는 방식으로 언급되잖아요.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실증주의" 같은 방식으로 말이에요. 그렇게 비교되다 보니, 좀 더 일반적인 사조 속에서 함께 이해되는 게 아닌가 해요.
나: 말씀하신 논리실증주의와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사실 차이가 상당히 큰데, 철학사에서는 종종 그렇게 묶이곤 하죠.
H: 그렇지만 그렇게 안 묶으면 비트겐슈타인만 단독으로 인용하기는 어렵잖아요. 워낙 글을 특이하게 쓰니까요.
나: 하긴, 예전에 서강대 김영건 교수님도 그러셨죠. 비트겐슈타인의 글들은 너무 파편적이라, 비트겐슈타인으로는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고요.
석사에서 맥도웰을 전공한 또 다른 분은 트리포디와 비슷한 견해를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J: 저는 비트겐슈타인이 왜 쇠퇴하였는지에 대해 사실 별로 관심이 없어요. 특별히 철학적인 이유가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이 쇠퇴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일종의 정치적인 변화 때문에 무시당한 거겠죠. 예일대학교에서 한때 대륙철학 전공자들을 교수로 전혀 뽑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대륙철학 같은 것은 철학도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비트겐슈타인의 쇠퇴도 비슷한 이유겠죠.
여하튼, 후기 비트겐슈타인주의적 철학을 옹호하는 저에게는 "비트겐슈타인의 영향력은 왜 쇠락하였는가?"라는 물음이 참 관심이 많이 가는 물음이라 앞으로 이 책을 좀 집중적으로 읽어보게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트리포디가 '역사학적' 관점에서 쇠퇴의 원인을 추적하였다면, 저는 좀 더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싶긴 하지만요. 과연 후기 비트겐슈타인주의적인 철학으로부터 오늘날 존재론이나 인식론이나 윤리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은 정말로 막혀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제 자신의 대답을 구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