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그림 이론을 논하시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은 ‘언어 그림 이론’에 근거하여 성립한다. 언어 그림 이론이란 명제의 의미와 진리치를 명제와 실재 사이의 비교를 통해 해명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이다. 우리는 언어 그림 이론을 구성하는 테제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즉, (1) 명제는 그 명제에 해당하는 ‘사태(Sachverhalt)’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얻는다. 또한 (2) 명제는 그 명제에 해당하는 ‘사실(Tatsache)’과의 관계에서 참이나 거짓으로 확정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의미/무의미의 문제와 참/거짓의 문제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한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문장이 의미 있는지 무의미한지를 아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은 이러한 차이를 다루기 위해 ‘사태’와 ‘사실’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두 개념은 각각 세계의 가능한 모습과 세계의 실제 모습을 가리킨다. 즉, ‘사태’란 실제로 존립할 수도 있고 존립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논리적 가능성이다. 명제는 그 명제가 표현하는 대상들의 결합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사실’이란 실제로 존립하는 사태이다. 명제는 그 명제의 의미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들의 결합과 일치할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참이다.
언어 그림 이론은 진리 함수 이론과 함께 “말해질 수 있는 것”의 한계를 규정한다. 진리 함수 이론이란 모든 명제를 ‘요소명제’와 ‘조작 N’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즉, 진리 함수 이론에 따르면, 모든 명제는 상호 독립적인 요소명제들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이때, 우리가 요소명제를 결합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부정)’, ‘∨(선언)’, ‘·(연언)’, ‘⊃(함축)’, ‘≡(동치)’와 같은 논리적 상항들은 명제들의 동시 부정만 가지고서 모두 표현될 수 있다. 다른 논리적 상항 없이 명제들의 동시 부정에 근거하여 요소명제를 결합시키는 이러한 진리 함수적 관계는 ‘조작 N’이라 일컬어진다. 따라서 요소명제들의 집합에 조작 N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는 것만으로 원리상 모든 명제들의 총체를 산출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의 한계란 요소명제와 조작 N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 그림 이론과 진리 함수 이론이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별히, 두 이론 사이의 갈등은 모순과 동어반복을 둘러싸고 발생한다. 즉, 언어 그림 이론에 따르면, 모순과 동어반복은 진정한 명제가 아니다. 그 둘은 대상들의 결합과 상관없이 모든 경우에 참이거나 모든 경우에 거짓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아무런 실재도 그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진리 함수 이론에 따르면, 모순과 동어반복은 진정한 명제이다. 그 둘은 ‘p · ~p’와 ‘p ∨ ~p’처럼 요소명제 p가 결합한 결과라는 점에서 (요소명제 p를 ‘N(p, N(p))’와 ‘N(N(p, N(p)))’와 같이 조작한 결과라는 점에서) 요소명제의 진리 함수이다. 비트겐슈타인이 과연 자신의 입장에 내재된 이러한 모순을 자각하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언어 그림 이론과 진리 함수 이론을 통해 “말해질 수 있는 것”의 한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에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
이승종,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 논리철학적 탐구』, 문학과지성사, 2002, 제2장.
이승종,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 자연주의적 해석』, 아카넷, 2022, 제2장.
49.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을 논하시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은 언어와 그 언어가 얽혀있는 활동들을 기술하기 위해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에서 강조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즉, (1)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용이 마치 게임처럼 일종의 활동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2) 비트겐슈타인은 게임이 지닌 다양성을 통해 언어의 사용이 지닌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그림’에 비유한 자신의 전기철학에서 크게 세 가지 문제가 간과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째로, 그는 언어 사용이 세계에 대한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언어는 인사하기, 기도하기, 증명하기, 사실을 서술하기 등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둘째로, 그는 언어의 의미가 언어의 사용을 통해 성립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언어의 의미는 사람의 삶의 문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셋째로, 그는 의미의 문제가 언어의 모든 사용과 관련되는 반면, 진리의 문제는 단지 언어의 특정한 사용과 관련될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사람의 삶의 문맥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는 의미를 지니지만, 그 중에서 지식과 정당화의 문맥에서 사용되는 언어만 참과 거짓을 지닌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후기철학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언어를 바라보고자 한다. 첫째로, 언어의 사용이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탐구도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 이제 언어비판은 단일한 ‘논리적 구문론’에 따라 명제의 총체를 평가하려는 시도에서 다양한 ‘문법(Grammatik)’에 따라 언어의 사용을 하나하나 분석하려는 시도로 변화한다. 둘째로, 언어의 사용이 사람의 삶의 문맥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탐구도 사람이 어떠한 존재자인지에 대한 탐구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제 언어의 규칙을 기술하는 작업이란 사람의 ‘자연사(Naturgeschichte)’를 기술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 셋째로, 의미의 문제가 진리의 문제보다 더 근원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탐구도 그 두 문제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 이제 ‘지식’과 ‘정당화’란 우리가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확실성(Gewissheit)’ 위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강조된다.
‘언어게임’이란 언어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의 삶의 문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즉, 사람은 다른 존재자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의 삶의 형식’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사람의 삶의 형식은 ‘사람의 자연사’라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때, 사람의 자연사를 구성하는 다양한 활동이 바로 ‘언어게임’이다. 철학이 탐구하는 언어의 규칙이란 언어게임을 성립시키는 각각의 ‘문법’이다. 따라서 언어의 규칙만을 따로 추상화하여 이론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허구적이다. 각각의 문법은 각각의 언어게임을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각각의 언어게임은 사람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자인지를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람의 삶의 형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
이승종,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 자연주의적 해석』, 아카넷, 2022, 제2장; 제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