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의 논문 「해석학적 반성의 범위와 기능」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가다머가 라캉에 대해 높이 평가한 내용입니다. 가다머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거기에서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다머의 스승인 하이데거와 라캉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저에게는 이 부분이 다소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가다머의 논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 사실, 해석학적 반성이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정신분석학에서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전에 강조한 것처럼, 무의식적 동기는 해석학적 이론의 명료하고 완전히 뚜렷한(articulable) 경계를 표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동기를 찾으려는 작업이 해석학의 한계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의미—역자 주] 즉, 그 동기는 해석학의 더 넓은 외곽에 포함된다. 심리치료는 "중단된 교육의 과정을 충분한 역사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작업으로 기술될 수 있으며, 그래서 심리치료에서 해석학 및 대화로 둘러싸인 언어의 순환은 중심적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무엇보다도, 자크 라캉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한다." (H. G. Gadamer, "On the Scope and Function of Hermeneutical Reflection", Philosophical Hermeneutics, D. E. Linge (trans. &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1967], p. 41 인용자 강조.)
가다머의 해석학은 (하버마스의 표현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도시화된(urbanized)" 버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다머와 하이데거 사이에는 근본적인 일치점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수제자였으니까요. 그래서 난해한 하이데거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세련된 가다머를 읽는 것이 좋다는 말들도 자주 나오고는 하죠.
하지만 철학적 태도(?)에 있어서 하이데거와 가다머는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라캉을 대하는 둘 사이의 차이만 보아도 이 점이 드러나죠. 가다머가 라캉에게서 한 수 배웠다고 고백하는 것과 달리, 하이데거는 라캉을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하이데거와 라캉 사이의 일화에 대해서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라캉에게도 같은 공격을 가한다. 하이데거의 사유가 가진 권위 있는 어조에 홀린 라캉도 그의 힘과 문체를 찬양한 바 있다. 후일 하이데거는 정신과의사인 메다르 보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 "당신 역시 분명 라캉으로부터 두꺼운 책 한 권을 받았지요. 내 생각을 말하면, 나는 분명 이 바로크적 텍스트", 아마도 "파리에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와 비슷한 야단법석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이는" 그 텍스트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몇 개월 후에 같은 의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있다. "이번 편지에 라캉에게서 온 편지를 동봉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정신과의사는 다른 정신과의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사르트르 평전』, 변광배 옮김, 을유문화사, 2009, 247쪽, 인용자 강조.)
자주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다머의 포용력은 가다머의 인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스승인 하이데거를 철저하게 계승하고 있지만, 철학적으로 거의 '근본주의자'에 가까웠던 하이데거와는 달리, 가다머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 있는 철학들과도 대단히 적극적으로 대화하니까요. 가령, 가다머는 수많은 논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할 뿐더러, 데이비슨과 로티 같은 비트겐슈타인 계열의 분석철학자들과도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었죠. 로티가 신임 대학강사 시절이었을 때, 가다머가 미국 가톨릭대학교에서 로티에게 윌프리드 셀라스의 철학을 배웠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고요. 더욱이, 아도르노 밑에서 하빌리타치온 논문을 썼다가 심사에서 탈락한 하버마스를 가다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초빙하였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죠.
게다가, 가다머의 철학은 그 자체가 애초에 대화와 포용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는 가다머의 유명한 개념부터가 낯선 텍스트를 수용하여 이전의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갱신시켜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니까요. 우리의 삶 자체가 끝없는 지평융합의 과정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직면하는 과정에서 매 순간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가다머의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의미에서, 요즘 핫한 비빔대왕님께서 말씀하신, "비비지 않으면 어떠한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가 가다머의 철학에 대한 가장 훌륭한 요약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