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철학의 구별 -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를 읽다가

리처드 로티의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를 읽다가 재밌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철학을 두 가지로 구분할 때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영미철학)으로 구분하는데, 로티는 사회철학과 비-사회철학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며 이 둘부터 구분하네요.

그나저나 볼드체로 제가 강조한 부분은 꽤나 저에게 아픈 구석인데, 로티가 참 잘 찌르네요.

요즈음 세계 여러 나라 대학의 철학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철학의 핵심영역과 사회정치 철학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후자, 즉 이른바 철학의 핵심영역은 형이상학과 인식론, 심리철학, 언어철학을 포함하고 이 영역의 주변부에 종사하는 철학자들은 핵심영역에 종사하는 철학자들과 대체로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사회정치 철학을 전공하는 철학자들은 동료 철학자들이 쓴 책보다 정치학이나 법학 교수가 쓴 책을 더 많이 읽으며, 마음과 몸, 언어와 실재의 관계에 관한 책은 읽지 않는다. 이와 정반대도 역시 성립하는데, 이른바 철학의 핵심영역과 관련된 주제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들도 대체로 사회정치 철학에 대해서 정통하지 못하다. 두 부류의 전공자들이 동일한 학문 분과의 구성원들이라는 점은 대학의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 두 영역이 상당히 다른관심사를 가진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부각된다. '분석' 철학 및 때로 '대륙' 철학이라 불리기도 하는'비분석' 철학 사이의 분열은 정치적 쟁점을 다루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어떤 분류표를 가지고도 정치적 쟁점을 다루는가의 여부로 하버마스와 프레이저, 라즈, 마낭을 제대로 분류할 수 없다. 이 철학자들은 왈처M.Waltzer와 드워킨R Dworkin, 포스너RPosner, 벡U.Beck과 같은 비철학자[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다루는 것과 동일한 쟁점, 즉 정치적 쟁점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유를 사회질서 및 정의와 더 잘 결합하기 위해 정치사회적 제도들을 변화시킬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정치 철학에 괄호를 치게 되면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분열은 현대 철학의 전개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이 된다. 대부분의 분석철학자들은 러셀의 기술이론이 철학의 모범적인 예라는 램지의 생각에 여전히 동의한다.
비분석 철학자들 대부분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나 하이데거의 <휴머니즘에 대한 편지>에 비견할 것이 러셀에게는 없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로티, 철학은 시가 될 수 있을까: 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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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세부 분야가 많아져서 각 분야의 전공자가 다른 세부 분야를 잘 모르는 현상이 그리 놀랍거나 안타까운 일 같지는 않아요.

제가 보기에 저자 주장의 핵심은 단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현상이 놀랍거나 안타깝다>가 아니라, <사회철학 전공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철학의 핵심 영역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비사회철학 전공자들과 달리, 아예 철학 바깥의 논의를 본다는 점에서 매우 구별된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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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거나"라는 말을 제가 앞에서 쓴 이유는 위 문장 때문입니다.

"안타까운"이라는 말은 위 문장 때문에 썼어요.

구성주의 수학이 이론 컴퓨터 과학에서 어떤 의의가 있는지와 별개로 제가 구성주의 수학이 철학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는지 연구한다면, 마음과 몸, 언어와 실재의 관계에 관한 책보다 논리학과 수학에 관한 책을 더 중요시할 것입니다. 제가 콰인의 새 기초론을 연구하고자 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철학의 핵심 영역 자체보다는 철학 밖의 분야에 더 집중해야 되는 철학 분야가 사회 철학 말고도 더 있을 것입니다.

형식 논리학과 형식 논리학 밖의 철학 사이의 차이도 크다고 말할 수 있을 테고, 아마 다른 예도 더 들 수 있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서로 차이가 큰 철학 분과들이 사회철학과 비사회철학 말고도 더 존재한다는 주장이, 사회철학과 비사회철학 사이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반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철학의 역사를 반추해볼 때 철학이 예전에는 결코 이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철학이 세분화될수록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아래 철학이라는 학문 분과 전체에 대한 반성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의미에서는 철학의 세분화가 "놀랍거나 안타까운" 일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로티가 사회철학과 비사회철학, 분석철학과 대륙철학 사이의 큰 괴리를 지적하는 맥락이 메타철학적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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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사회 철학과 그 밖의 철학 사이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 별로 의아하거나 충격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다만 수학의 세분화와 마찬가지로, 철학의 세분화는 안 일어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놀랍고 안타까울 수는 있지만 당연히 철학도 세분화됐고, 앞으로 더 나뉠 거라고 봅니다. 철학 전체에 대한 성찰은 매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할 듯해요. 세부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수학도 현재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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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가 살던 시대에는 네트워크 분석이 없거나 대중적이지 않았을 거 같네요. 저런 명제는 주요 학술지에 개제된 논문들 인용 네트워크를 만든 다음에 분석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심리적인 요소가 있지만(서로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같은), 실제로 서로 연구에 영향을 줬는지는 실증적인 문제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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