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철학/가짜 철학 혹은 철학에서 철학(들)의 시대

(1) 요근래 '철학'(philosophy)의 시공간적 범위의 확장과 '동시대의' 여러 철학/이론들에 대한 논의가 짧게 있었다.

(2)

이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을 정의하려는 시도, 혹은 진짜/가짜 철학을 구분하려는 시도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wildbunny 님의 지적처럼, 이와 같은 구분은 '쉬운 시도'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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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진짜 철학/가짜 철학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이를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와일드버니님이 지적하듯, 몇 가지 좋은 이론이 가지는 덕목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동시대 사람들은 물론, 역사적으로 그 학문이 '진짜'라 평가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저 자신이 믿는 바대로 학문을 하며, (다른 지평에 서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상대가 나를 무시하더라도) 상대의 학문적 배경을 공부한 다음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건설적이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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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 사례를 보고 생각한 바이다. 논쟁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코멘트를 달 것이 없지만, 르네 데카르트라는 인물이 어떻게 '과학(사)'와 '철학'이라는 오늘날 구분되는 현대 분과에서 '찢어졌는지'를 볼 수 있는 사례라 난 여긴다.

이와 같은 찢어짐은 중세 철학이 '저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요근래 재평가가 활발히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중세 철학의 가진 한계라 난 생각한다.)

많은 부분 신학과 무관한 내용, 혹은 신학과 연관되었어도 오늘날에도 통찰을 주는 여러 주제들이 다루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중세 철학의 시도는 (a) 고대 그리스적 세계관 혹은 당대 발전하고 있는 자연과학적 발견과 (b)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신학/철학을 (정도는 달랐지만) '조화롭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달리 말해 (b)의 전제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중세 철학의 '조화'는 그저 무의미한 시도였다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오늘날의 '철학'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현대 분석 철학이 그토록 자명하게 여기는 자연주의/자연과학이 반증되어버린다면, 사실상 그 이론에 토대를 두던/그 이론과 다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하던 여러 시도들은 결국 무의미했을 따름이다. (단적으로 생각하면, 진화론이 사실상 거짓으로 판명난다면, 진화론과 연관된 모든 이론적 설명들은 [1차적으로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물론 그 파편들을 수습해서, 학자 자신의 맥락에서 어떤 유용성을 발견하는 2차적인 의미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3-2)

피코 데 미란돌라는 흥미로운 인물인데, 그는 스콜라 철학뿐 아니라, 고대 (정통) 그리스 철학인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비교라 표현되는 카발라와 헤르메스주의까지도 폭넓게 탐구했던 사람이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이 (그와 당대를 살던 사람들에 의해) '지식'이라 불리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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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역으로

중세 철학의 '조화'는 그저 무의미한 시도였다

는 시각을 거부하는 방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계 종교 신학/철학의 수용 여부와는 독립적으로요. 왜냐면 중세 당대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논리가 다시 부상할 수 있고, 곧 그동안 '구닥다리가 됐다'고 여겨졌던 아브라함계 종교 신학/철학의 성과를 유용하게 써먹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세한 과학사/과학철학적 맥락은 무시하고 과감히 던지는 소리입니다만) 근대 기계론의 부상으로 인해 '구닥다리'로 취급받았던 "목적론적" 설명관이 진화론 출현 이후 재부상하게 된 것 역시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철학의 경우, 특히 Sara L. Uckelman 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중세 논리학에 대한 관심이 이런 양상을 반영하는 예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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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해주신 아티클에는 Sara Uckelman뿐 아니라, Dutih Novaes가 언급되는 점이 흥미롭네요.

(2)

Uckelmand의 CV를 살펴보면, 현재 언어철학/논리학이 기존 분석 철학 (그것도 코어한 언어철학/논리(철)학 등)의 자원을 활용하면서도 보다 실천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픽션(fiction)의 의미있음, 의무논리 (아마 중세 논리학의 강점은 오늘날 분석 철학과 다르게 양상논리에서 의무 논리를 분리/구분하지 않았다는 점 아닐까, 하는 미묘한 추측을 하게 됩니다.), (불교 철학을 경유한) 인간의 주장-근거(arguments) 화행에 대한 간문화적 접근.

예전에 말씀하신 (저도 동의한) 흐름이 떠오르네요.
(제가 짤막하게 언급한 [결은 다르지만] 릿거스대의 Elisaneth Camp도 생각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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