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만한 말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매우 큰 제 견해를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지금 같은 '빅토리아 시대 모험가'로서의 철학자/철학사가라는 역할은 10-20년대로 수명을 다할 것이다.
; 사실 철학사 내 이러한 흐름은 학계 내부적 요인과 학계 외부의 사회작 요인이 결합한 탓으로 저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i) 학계 내부적 요인이라면, '전통적인 철학사'를 전공한 사람들의 교수 자리는 여전한 반면, 이들이 '연구할 만한 새로운 내용'은 더 이상 부족하게 된 상황을 의미합니다. 말하셨듯, 전통적으로 철학사는 '거인'에 대한 주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인은 7대장 - 16대장으로 그 수는 매우 적고, 이제 무수히 많은 전세계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물고 뜯고 맛보고 논문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떠한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이와 같은 학계 내부적 모순 상황에서, (ii) 학계 외부의 상황적 변화는 어떠한 이 교착 상황에 대한 타계책을 제시했다 여겨집니다. 하나는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이고 다른 하나는 PC의 흐름이겠죠. 지성사는 제가 보기에 '거인'보다는 '역사'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다보니
이 아닌, 틈새/전달자/번역자 등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것이면 무엇이든 연구할 수가 있죠. (그리고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보입니다.)
나아가 PC의 흐름은 이 '역사적 가치' 중 무엇이 더 연구할 만한 가하는 선택의 기준을 제시했다 여겨집니다.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젠더퀴어/소수인종/타문화권 등등.
아마 장기적으로는 지성사와 철학이 분리되면서, 지금의 상황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거인'을 '기적적으로' 발견한다면, 그 사람은 이제 철학의 커리큘럼 내에서, 다시 물고 뜯고 맛보는 신세가 되겠죠. (오늘날 인도 철학이 점점 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나가르주나, 쿠마릴라, 디그나가 등등)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그런 것들에 대한 연구는 (외부의 PC라는 바람이 다시 잠잠해진다면) 철학계의 '무관심'으로 인해, 지성사의 영역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b) 장기적으로 (영미권 분석) 철학계 내부에서 유익할 만한, 철학사 연구는 20세기 전반 영미/독일의 영향을 받은 반-서양 국가들의 철학자들이다.
; 앞서 말했듯, 결국 철학과 내에서 계속 거인 대접을 받고 지속적으로 연구될 사람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람이 아닌 '철학적 가치'가 높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철학적 가치란 대체로 논증의 치밀함, 신비주의와 같은 (오늘날 사람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비약이 없는 것 등등이죠.
(그렇기에,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나 이슬람교 신비주의인 수피즘, 불교/힌두교의 탄트라 같은 요소들이 각 문화권 내에서는 '철학'이라 불리는 흐름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정작 오늘날 철학사 연구에서는 떨떠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철학적 가치가 높은 문헌은 필연적으로 지금 분석 철학계와 유사한 풍토를 가지면서도, 영미권 학계와 고립되어 있었기에 독자적인 연구 방향성을 생성한 반(half)-서양 국가들에 많을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반 -서양이 조금 애매한 표현이긴한데, 서유럽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은 아니지만,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일찍부터 서양 철학/계몽주의/모더니즘을 수용한 국가를 지칭하고자 제가 쓴 표현입니다. 대체로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폴란드/헝가리/체코 같은 중부유럽, 핀란드/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멕시코/아르헨티나/브라질 같은 라틴아메리카가 있습니다.)
(이처럼 핀란드에는 게임 이론 - 형식 논리학을 활용해 사회학적 주제를 탐구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번 르포르가 편집하는 응용언어철학 컴패니언에 참여하는 학자 중에서 핀란드 분이 계시기도 합니다.])
(한편 비-형식 논리학을 비롯, 주류 영미 철학계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논리학/언어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전통이 네덜란드에 존재합니다. 이 Dutilh Novaes는 네덜란드에 계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