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케임브리지 학파는 J. 오스틴의 발화 개념을 자신들의 연구에 적용합니다. 이들은 (a) 단순히 책만 읽는 것도 (b) 책을 둘러싼 당대의 경제적,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젤렉의 개념사는 이들에게 불완전합니다.] 이들은 (c) '책을 쓴다는 것'은 명백히 저자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쓴 발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참여한 논쟁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케임브리지 학파는 대다수가 정치철학/정치 사상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기존 철학사가들이 하는 정치 철학 연구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1) 이들은 당대 철학자들이 알리가 없는 개념들을 그 철학자에 적용해서, '~의 선구자'라는 식의 과잉 해석을 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로크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개념을 알리가 없고, 따라서 그런 목적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로크를 민주주의의 선구자라 취급하는 해석에 반대합니다.)
(2) 또한 철학사가들은 지나치게 철학자들의 저자를 취사선택해서, 이들의 본래 의도를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토마스 홉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홉스의 기독교 왕국 등의 신학적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대다수의 철학자들인 이 부분을 무시한 채, '만인 대 만인'의 투쟁만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철학사가들이 '협소한' 정전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철학사가들은 '중요하다고 공인된' 학자들만을 연구해, 당대에 있었던 다른 마이너한 흐름들을 무시한다는 지적입니다.
(4) 이와 같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주장은 지나치게 과대한 지점이 존재합니다. 특히 (a) 왜 과거 철학자들에 대한 재해석이 '의미가 없는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아야하는지 입니다. 이에 대해서 스키너는 자신은 '철학자에 대한 재해석'에는 별 불만이 없지만, 그 재해석을 '그 철학자에 대한 진짜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꽤 타당한 구분이라고 봅니다. 리처드 로티 역시 이를 구분해야한다고 동의했고요.)
또한 이 방법론은 (b) 지나치게 정치사상/경제사상 등에만 한정된 문제로 보입니다. 예컨대, 홉스나 로크 등의 정치 사상은 '당대의 특정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맥락에서 나왔기에, 이 맥락을 찾아서 '복원하는게' 이들의 진의를 찾는 옳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허나 인식론이나 형이상학처럼, '보편적인 진리를 찾기 위한 담론'을 의식하고 연구하는 행위에 있어서, 이 연구 방법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c) 이들은 발화자의 맥락'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실제로 책이 어떻게 수용되었고 전승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논쟁의 맥락에서 벗어난, 시공간적 다른 맥락에서 이 사상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추가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 문제를 지성사가들이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성사가들은 이 맥락'들'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한 마디로, 개노가다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John Robertson의 The Case of the Enlightenment, Scotland and Naples 1680-1760은 스코틀랜드와 나폴리에서 유사하게 전개된 계몽주의를, 두 나라의 맥락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피해갑니다.)
(5) 그렇다면 지성사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왓모어가 책에서 주장하는 점은 지나치게 상식적입니다. 이들은 (a) 철학자들이 안 만드는 비판본을 만들어주고 (b) 철학자들이 안 연구하는 마이너한 학자들을 발굴해주고 (c) 기존 대가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준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 지성사가 주는 효용은 두 가지 정도 있어보입니다. (a) 철학자/철학사가들에게 경고를 준다는 점입니다. 때론 철학 연구자들은 A의 진의와 A에 대한 재해석을 구분하지 않고 논문을 쓰곤 합니다. 저는 이 같은 혼동은 별로 좋지 못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스키너의 지적마냥 이 둘은 명백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게다가, 명확한 해석이란 당대의 논쟁을 중심으로 정리하는게 '제일 유용한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b) 두번째는 철학사와 당대의 다른 사상들 간의 교류와 충돌들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토마스 홉스와 과학자 로버트 보일은, 보일이 한 과학적 실험의 타당성에 대해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토마스 홉스와 로버트 보일의 논쟁은 단순한 어불성술로 보이고, 심지어 홉스의 오류라고만 단순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성사가들은 이들 논쟁을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와 연관시켜 연구를 했습니다. ( Leviathan and the Air-Pump: Hobbes, Boyle, and the Experimental Life, 라는 책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프랜시스 예이츠(Francis Yeats)가 있습니다. 예이츠는 당대 영국에서 헤르메스주의와 카발라가, 당대 철학자들 (로크 등)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연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