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논문 「사용 이론과 회의주의를 넘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정적주의」(『철학논집』, 제69권, 서강대학교철학연구소, 2022, 143~178.)가 출판되었습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해석하는 네 가지 입장들인 사용 이론, 회의주의, 초월론적 철학, 정적주의를 비판적으로 비교하면서, 어떠한 해석이 주석적으로 가장 올바르면서도 철학적으로 역시 가장 설득력 있는지를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논문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관련하여 198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해석들을 모두 포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논문에서는 오스틴, 브랜덤, 크립키, 쿠쉬, 해커, 카벨, 맥도웰이라는 일곱 명의 철학자들의 견해가 등장합니다. 이렇듯 논문의 스케일이 상당히 큰 편이다 보니, 심사자들 중 한 분은 "이 논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론과 주장들은 단지 한쪽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간단히 논박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하시기도 하셨지만, 또 다른 심사자 분들은 반대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해석에 관해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논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관한 풍부한 이해를 전해주는 가치 있는 논문"이라고 호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완결된 이론의 형태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대의 수많은 연구는 광범위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함축적 통찰을 제시하는 그의 텍스트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을 받았다. 누군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후기 분석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영미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개척한 인물로 지목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포스트모더니즘’과 ‘반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륙철학의 급진적 논의에 영향을 준 인물로 바라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칸트의 초월론적 철학을 읽어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니체의 형이상학 비판을 발견하기도 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론에서 추론주의를 도출하는 입장, 논리철학에서 초일관주의를 도출하는 입장, 심리철학에서 기능주의를 도출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1953년에 『철학적 탐구』가 출판된 이후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의미에 대한 ‘사용 이론’(use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소개되었다. 사용 이론에 근거한 해석은 종종 1930년대 이후에 등장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1945~1970년 사이에 발전한 오스틴의 일상 언어 철학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이러한 해석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의미를 언어의 사용을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미론을 제시하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언어와 세계 사이의 표상 관계를 무비판적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던 기존 논리실증주의를 극복한 사용 이론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사용 이론의 관점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독해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으로는 브랜덤(R. Brandom)을 언급할 수 있다.
1982년에 크립키의 『비트겐슈타인의 규칙과 사적 언어』가 출판된 이후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의미에 대한 회의적 역설(skeptical paradox)을 제시하는 입장으로 주목받았다. 회의적 역설에 근거한 해석은 플라톤주의를 거부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외부세계와 인과법칙을 거부한 버클리와 흄의 경험주의와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이러한 해석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초사실(übermäßige Tatsache)과 같은 형이상학적 대상을 상정하는 기존 진리 조건 이론을 회의적 역설을 통해 비판하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어떠한 이론도 언어의 의미를 고정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강조한 회의주의로 여겨진다. 오늘날 회의주의의 관점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독해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으로는 쿠쉬(M. Kusch)를 언급할 수 있다.
본고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사용 이론이나 회의주의가 아니라 정적주의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사용 이론이나 회의주의를 통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설명하려는 입장은 얼핏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동전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다. 두 입장은 모두 비트겐슈타인이 특정한 의미의 조건을 미리 상정한 상태에서 의미 있는 언어와 무의미한 언어를 구분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독해는 심지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정통적 해석에서조차 발견된다. 그러나 의미의 조건을 바탕으로 의미의 한계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의미에 대한 독단주의와 회의주의의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본고는 우선 사용 이론을 통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해석하려는 입장과 회의주의를 통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해석하려는 입장을 각각 비판할 것이다(Ⅱ~Ⅲ). 다음으로, 두 입장이 전제하는 의미의 한계 개념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일종의 초월론적 철학으로 바라보는 정통적 해석에도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폭로할 것이다(Ⅳ). 마지막으로, 정적주의야 말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주석적으로 올바른 해석이자 철학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입장이라고 강조할 것이다(Ⅴ).
특별히, 이 논문은 서강올빼미에서 저와 voiceright님 사이에서 이루어진 몇 년 간의 논쟁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의 첫 번째 각주에도 이 점을 기입하였습니다.
본고는 인터넷 철학 포럼 “서강올빼미”(https://forum.owlofsogang.com/)에서 이루어진 김태우 씨와의 오랜 논쟁을 통해 쓰였다. 비록 필자와 김태우 씨 사이에 는 여러 가지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필자가 스탠리 카벨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김태우 씨의 유익한 조언과 비판 덕분 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논문의 시초가 된 논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데 성공했는가? - YOUN과 voiceright의 논쟁에 대한 단상 (1)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데 성공했는가? - YOUN과 voiceright의 논쟁에 대한 단상 (2)
의미의 한계?: 제임스 코넌트의 「형이상학의 극복에 대한 두 가지 개념: 카르납과 초기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단상
많은 분들이 논문을 읽어주시고 비판적으로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트를 통해서 새로운 논쟁들이 다시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저에게 논문을 쓸 영감을 주시는 분들은, 제가 앞으로도 이번처럼 그분들의 아이디어를 제 논문에서 무단 도용하고서 각주에 이름을 박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