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님과 voiceright님께서 올려주신, 제 석사학위 논문보다 긴 분량의 글들을 전부 읽었습니다. 유의미한 논쟁은 양자의 충돌지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본 글에서 저는 두 분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보이는 지점과 그 이유를 해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그 길고 긴 글들은 다음의 주제를 중심으로 공회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철학적 문제를 모순의 지적을 통해 해소하는가? (YOUN)
아니면, 언어게임에 대한 일목요연한 조망을 보여줌으로써 해소하는가? (voiceright)
먼저, YOUN의 입장을 봅시다. YOUN은 비트겐슈타인이 형이상학자의 언어게임을 해소 대상으로 삼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1) 색깔 배제 문제, 2) 언어/세계를 지칭으로 매개하려는 시도, 3) 적용/규칙을 해석으로 매개하려는 시도(규칙-따르기 논변), 3) 낱말/감각을 사적언어를 통해 매개하려는 시도(사적언어 논변)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근거로, 비트겐슈타인이 해당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모순을 지적/폭로했다고 주장합니다.
YOUN의 주장은 맥도웰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맥도웰은 항상 형이상학 혹은 이론철학자들이 상정하는 딜레마를 명시하고, 그 딜레마의 가정을 논박하는 방식으로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읽은 한에서 2)는 Mind and World, 3)은 How Not to read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 Brandom's Wittgenstein"에서 다뤄진 맥도웰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편, voiceright의 입장을 봅시다. voiceright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문제를 해소 대상으로 삼았다고 봅니다. 그는 1) 『논고』–『탐구』의 이행이 연속적이라는 점, 2) 모순에 관한 수리철학의 논의, 3) 규칙-따르기의 '회의적 역설'에 관한 해석 등을 근거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문제 해소가 모순에 대한 직접적 지적 혹은 폭로가 아니라 문법의 일목요연한 조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voiceright의 입장은 스탠리 카벨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voiceright의 해석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내에서 문법의 위반 사례를 지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언어게임 일반에 대한 전체 조망을 신적 관점에서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언어의 사용 사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문법에 관한 일목요연한 조망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목요연한 조망이 제기될 때, 회의주의자는 여러 가능한 언어 사용 중 하나를 택하여 자신의 말을 유의미하게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언어게임 바깥에서 말하도록 이끌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