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깁니다. 사이트가 지향하는 글의 형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전체가 하루 남짓의 짧은 시간에 걸쳐 작성되었이기에, 글이 난삽하고 표현도 정제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글이 뒤죽박죽되고 난장판이 됩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어쩔 도리가 없네요. 저의 능력 부족입니다. 그래도 YOUN님이 자신의 글에서 제시한 각각의 논제들과 그 내용을 가능한 모두 세세하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인용이 지저분합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사용한 비트겐슈타인 저서에 대한 약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BB : 청색 책
RLF : Some Remarks on Logical Form
WL : Wittgenstein‘s Lectures, Cambridge 1932~1935
RFM :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YOUN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A.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이론철학자의 “언어게임이 지닌 모순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그 언어게임이 ‘혼동’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B. 이론철학을 비판하는 작업은 “단순히 문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식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언어게임(의 문법)에 대한 일목요연한 조망은 이론철학자를 설득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네 가지 논제로 뒷받침됩니다.
(1) 『논고』에서 『탐구』로의 이행 과정은 전기 철학의 모순 발견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 『탐구』는 ‘언어/세계’, ‘적용/규칙’, ‘낱말/감각’을 각각 ‘지시’, ‘해석’, ‘사적 언어’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모순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3) 오늘날 비트겐슈타인의 중요한 계승자들은 이론철학의 언어게임이 지닌 모순의 문제에 주목한다.
(4) 언어게임의 모순을 ‘해소하는’ 작업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다양한 언어게임의 문법을 ‘보여주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응하여 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해 왔습니다.
C. 이론철학의 언어게임에 내재된 모순을 폭로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작업이 아니다.
D.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작업은 언어게임의 문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이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이 글의 목표는 YOUN님의 주장과 논제를 반박하고, YOUN님이 어떤 경로로 그릇된 주장과 논제에 이르렀는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저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YOUN님이 제시하는 독해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 대한 왜곡이 너무나 연속적이고 일관적이어서,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꽤 클 것이고, 읽자마자 즉각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사소한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죠. YOUN님이 제시한 네 가지 논제 중 (3)은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 논쟁의 쟁점에서 약간 비껴간 말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만 아주 간단히 제시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와 오늘날의 계승자들의 차이는, 오늘날의 계승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작업의 귀결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관점을 자신들의 본격적인 철학적 작업 이전에 (비트겐슈타인을 이해함으로써) 이미 획득했다는 점,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과는 달리 특정한 이론철학자/철학 이론을 표적으로 삼고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차이를 굳이 지적하는 까닭은, 비트겐슈타인을 계승한 학자들의 작업이 이론철학의 언어게임이 지닌 모순의 문제에 주목했다는 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작업이 그러하다는 근거로써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더군다나 저의 주장이 “이론철학의 언어게임에 내재된 모순을 폭로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주의 철학과 상충한다.”가 아니기 때문에, 저의 주장을 훼손하지도 않습니다. 이 논쟁의 초점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의 연장선상이 아닌 비트겐슈타인 철학 자체를 조명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제 (3)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조금 더 검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