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이들은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데 성공했는가?
제 실제적인 관심사는 이들이 헤겔을 닮았냐 칸트를 닮았냐 내지는 누구의 비트겐슈타인이 진짜 비트겐슈타인이냐가 아니라 이들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현대철학에서 칸트의 길을 따르는 것과 헤겔의 길을 따르는 것은 여전히 첨예한 문제입니다. 분석적 헤겔주의 진영이라고 불리는 존 맥도웰과 로버트 브랜덤조차 더 철저히 헤겔적 작업을 밀고 나갈지 아니면 칸트적 관점에서 침묵해야할 영역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서로 동의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할 역량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만 두 입장이 해명해야할 부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칸트 내지는 칸트적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전통적인 철학의 요구, 철학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지식의 선험적 조건, 언어게임의 기초적인 문법을 누가 정확히 서술했는가를 어떻게 보증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를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문제는 결국 (1) 직관에 호소하든가 (2) 공동체의 권위에 호소하든가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1)을 택할 경우 독단적 형이상학자들이 저질렀던 오류를 그대로 담습하게 되고 (2)를 택할 경우 "선험적 조건"이 그 보증 방식은 전혀 선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보증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 됩니다.
반면 헤겔주의자의 경우 지식의 조건을 말하거나 언어게임의 문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결국 신의 관점을 상정하는 것이기에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경우, 또 그런 신적 관점을 상정하는 것이 한 이론이나 언어게임의 내적 모순을 낳게 된다고 주장할 경우 철학 바깥의 학문들에 대해서는 해명이 안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가령 헤겔주의자들이 다루는 언어의 문제는 언어 일반의 문제이지만, 정작 자연과학, 수학의 영역에서는 헤겔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 "신적 관점"이라고 생각할만한 전제들과 법칙들을 상정한 채 발전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헤겔주의자들은 자연과학의 성공과 신적 관점을 상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하겠지만, 최소한 신적 관점이라고 해석되는 것을 상정한 채로 유의미한 성공을 이룬 언어게임이 있고 실천이 있다면, 그것을 과연 독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칸트적 입장에서는 철학의 언어게임과 과학의 언어게임이 문법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차이라고 간단하게 설명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나가면서
voiceright님과 YOUN님의 토론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은 저도 비트겐슈타인을 정합적으로 잘 읽을 수 있도록 공부를 하고,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이 옳은 주장을 했다면 근거를 가지고 지지하고 잘못된 주장을 했다면 제 나름대로 논변을 주장하면서 비판을 하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두 분의 해석에 관한 토론처럼 한 학자를 정합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건설적인 비판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