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전회'와 지역성, 그리고 "분석철학"의 미래?

@YOUN 님께서 소개해주신 케빈 리차드슨의 글에 달린 댓글들을 읽던 도중, 이른바 '사회적 전회'의 협소성을 지적하는 여러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헤닝언 대학의 David Ludwig이 남긴 댓글 하나가 특히 의미심장하게 보였는데요.

"사회적 전회"는 "언어적 전회"가 띠었던 협소성(provincialism)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어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실을 벗어난 철학적 논쟁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구조적 변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양성"이 개념화되는 방식을 보면, 북미 및 유럽에서 젠더 및 인종에 관해 벌어지는 사안들만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분석철학자들이 "정의"나 "압제" 같은 개념들에 대한 명시적으로 비판적인 접근을 취할 때조차 "그 나머지 세계"는 무시되기 마련입니다. 본인들의 이론적 틀이 세계 절대 다수의 압제받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국제주의가 강단철학에서의 사회적 전회가 갖는 또하나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만, 현재로서는 중대한 하나의 한계로 남을 뿐인 것 같습니다.

이 댓글을 읽고서 문득 이전에 @sophisten 님께서 남겨주셨던 댓글 하나가 떠올랐는데요.

이 댓글의 내용을 함께 고려해보니, Ludwig이 경계하는 "협소성(provincialism)"이라는건 어쩌면 소위 "사회적 전회"의 필연적 귀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i) 사회적 주제는 필연적으로 한 지역이나 문화에 국한된 사안일 수 밖에 없고, (ii) 그러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고려가 철학적 탐구 일반의 핵심적 목표가 되어여 한다고 가정한다면, 곧 각 지역이나 문화를 초월한 '국제적'인 철학적 탐구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지난 1세기 동안 소위 "분석철학" 전통은 각 지역이나 문화권을 초월한 보다 보편적인 철학적 언어를 제공해야한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현실은 ... 글쎄요.) 특히 20세기 초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구체적인 국제주의적 기치를 주창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만약 위에서 제시된 진단이 옳다면, 이런 "분석철학"의 기치는 이제 슬슬 종막에 가까워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전회'는 곧 국제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는걸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 전회'를 완전히 거치고 남게 될 철학적 전통에는 "영미철학" 내지는 "구미철학"이라는 명칭을 붙이는게 좀더 자연스럽게 되겠지요.

이런 가설적인 장래의 변화는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그건 독자분들의 판단에 남겨두고자 합니다.


덧.

전에 @Mandala 님께서 소개해주셨던 문학동네 기고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분석철학"의 '사회적 전회'는 선배격인 "비평계"가 남긴 발자욱을 잘 따라나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이런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독자분들의 판단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아예 나아가서 이전에 지적되었던 "분석철학의 분화"라는 주제와도 맞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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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생각이 들지만, 우선 Ludwig가 쓴 협소성 - 지역성(provincialism)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예전에 와일드버니님이 남기셨든 '지역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는 보편적이지 않은, 각 지역에 있는 로컬한 개념과 문제들이죠.

이것이 ludwig가 말한 연구에 부합하는 내용일겁니다.

한편, 로컬한 것을 넘어 보편적인 것을 다루지만, 로컬한 학맥/연구 성과에 의해서 부각되는 주제가 있을겁니다.

(2)

따라서 사회적 전회에 대한 생각 역시 두 가지 방면으로 고려해볼 수 있겠죠. (a) 로컬한 관심사에서 촉발된 보편적 개념 혹은 (b) 로컬한 개념.

(3)

정민우님이나 Ludwig가 걱정한 것은 (b) 로컬한 개념임에도, 마치 (WERID에서 나온 연구가) 보편적 개념인양 쓰이는 상황인듯합니다.
(물론 무엇이 로컬인지 무엇이 보편인지에 대한 논쟁은 있을 것이고, 이조차 메타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철학적 논쟁처럼 보입니다.
이는 스테판 스티치의 실험철학이 여러 로컬/folk한 개념 중 결국 무엇이 옳은 개념인가를 확증하기 위한 시도에서 나왔다는 점, 요근래의 철학/인지과학이 WERID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어 보입니다.)

(4)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b) 로컬한 개념"들"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해서 (a) 그 개념들을 묶는 일종의 '가족유사적인' 보편 개념에 대해 탐구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는 00년대 종교의 정의 자체를 공격한 종교학에서도 이루어지는 방향성이고요.)

(5)

여튼 두서가 없지만, 사회적 전환이 굳이 보편 철학이라는 기치를 훼손할 것 같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1) 사회적 전환과 관련된 보편 개념을 탐구할 수도 있고 (social ontology 자체는 메타적인 보편 개념이겠죠?) (2) 로컬한 개념들도 결국 그에 상응하는 메타적 보편 개념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여러 로컬들에 존재하는 race/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념을 연구해 보편적
race/섹슈얼리티 개념을 연구해봄직 하죠. 어쨌든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것은 어떤 긴밀한 유사성이 있다는 의미니깐요.) (3) 로컬에 대한 연구는 (보편적이며 개념적 연구라는 철학의 테제를 벗어난다면) 다른 인종학/젠더학으로 분화되지 않을까요? (예컨대, 과학철학이 쿤 이후로 사실상 과학사회학/과학역사학으로 전환되면서 철학과에서는 사라지고, 대신 개별 과학의 개념을 탐구하는 개별 과학의 철학이 들어온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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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동감합니다. 이를테면 뉴욕이나 옥스포드에 사는 소수민들이 받는 압제, 그리고 "범 남반구(global south)" 어딘가에 사는 소수민들이 받는 압제를 묶는 보편적인 '압제' 개념을 끌어내어 이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적어도 제 개인적 관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런 "보편화"에 대한 희구가 '사회적 전회'의 중요한 기치로 보이는 아래 명제와 긴장 관계에 놓여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철학일 수록 더 좋은 철학이다!

뉴욕, 옥스포드, 그리고 지구 반대편 범 남반구 어딘가, 그 모두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에 천착할 수록,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구체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적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것과는 어쩔 수 없이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게 저의 우려입니다. '사회적 전회'를 주도하는 분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깊이 공감하시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구요.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고, 사회철학을 해나가실 분들의 향후 작업을 지켜볼 일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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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하신 사회적 전회의 기반을 이루는/이룬다 추정되는 기치 역시 저는 두 가지로 읽어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
(a) 보편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더 협소한 로컬에 밀착한 이론을 생산해야한다.
(b) 로컬의 현실에 (직접적이든/간접적이든) (실용적/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론을 생산해야 해다.

(a)와 보편 철학 테제는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려워 보이지만, (b)와는 나름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경제학에서는 (기존 보편적 경제학 이론에 토대를 둔 채) 현실의 로컬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매커니즘 디자인"이 나름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철학에서도 개념 공학(conceptual enginering)이라는, (기존에 있는) 개념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 이를 개선/재정의/평가/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이는 (b)와 보편 철학이 나름 접점을 갖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개념 공학 자체는 folk concept를 더 과학적인 개념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논리실증주의 - 심리적 제거주의/환원주의와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결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아주 괴상한 변종까진 아니라 생각합니다.)(거슬러 올라가자면, 인공적 개념어를 만들고자 했던 바로크 스콜라주의자나 라이프니츠와도 유사하고요.)

(a)라면, 사실 인류학과 (질적) 사회학에서는 이미 겪고 있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예전에는 문명, 국가, 민족이였던 것이 이제는 한 마을, 심지어는 한 개인이라는 단위까지도 좁아졌죠.
하지만 전 여전히 '보편성'이 이들 이론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라 생각합니다. 좋은 이론이라면, 한 개인에게 기반해 생산한 것일지라도,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개인에게도 적용되어야 맞을테니깐요.

어떤 의미에서 철학이 시공간적 "보편 이론"이라는 지위는 내려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래야한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저희가 탐구하는 몇 가지 철학적 문제는 전적으로 저희가 생물학적 인간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정체성의 문제 역시 인간이 신경계가 물리적으로 고립된 개체이기에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히드라 같은 신경계가 서로 접속하는 군체생물에게 정체성의 문제는 다르게 사유되어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하나의 싱귤러한 것에 대한 이론'이 된다기 보단, '중범위 이론'이 된다는 것으로 여겨야한다 생각합니다.
뭐랄까요. 이 역시 고정관념일 수 있지만, 이론은 적어도 꽤 다양한 것에 적용되어야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sweat_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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