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 대륙철학, 그리고 과학철학?!

얼마 전에 Daily Nous에서 재미 있는 글을 보았는데, 여기도 올려봅니다. Pablo Andrés Contreras Kallens (Cornell), Daniel J. Hicks (UC Merced), Carolyn Dicey Jennings (UC Merced)의 논문인 “Networks in philosophy: Social networks and employment in academic philosophy”에 따르면, 이제는 철학계의 지형이 분석/대륙철학이 아니라 분석/대륙/과학철학으로 구분되는 편이 더 좋다고 하네요. 과학철학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지만, 분석/대륙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네요. (물론, 저 겹치는 부분에는 영어권 철학 속의 복합적이고 '비분석적인' 전통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어서, '코어 대륙철학'과는 구별된다고 하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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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요즘 과학철학은 '과학'이라는 거대한 학문 일반을 다룬다기보다는, 개별 '과학' 학문들의 이론적 기반을 검토하는 학문에 가까워진 느낌이 있어서 놀랍지 않습니다. 분자생물학의 철학, 진화론의 철학, 생태학의 철학, 면역학의 철학 등등이 나오는 상황에서 뭐.....

(2) 동시에 분석/대륙 구분 역시 희미해지고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분석철학도 어떤 의미에서 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급격히 '사회문화적 관심사'로 이동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학술적 기반/역사'를 대륙 철학에서 가져오는 상황이 꽤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어디까지나 알리바이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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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겠네요. 저 표들에서도, 과학철학이 분석철학과 겹치는 영역이 거의 없어서 좀 의아했는데, 정말 개별 과학의 이론적 기반을 검토하는 작업들이 '과학철학'이라고 불리는 거라면, 왜 분석철학과 과학철학 사이에 그런 갭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네요.

(1) 실제로 과학철학 분야에서 꽤 명망있는 상(으로 보이는) 라카토스(Lakatos) 상의 요근래 수상자 목록만 봐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긴 합니다.

2022 - Catarina Dutilh Novaes - 연역 추론의 대담/대화록적 기반 ; 역사적, 인지적, 철학적 관점에서의 추론

2021 - Anya Plutynski - 암 설명하기 ; 무질서에서 질서 찾기

2020 - Nicholas Shea - 인지과학에서의 재현

2019 - Henk W. de Regt - '과학적 이해'를 이해하기

2018 - Sabina Leonlli - 데이터 중심 생물학 ; 철학적 연구

2017 - Craig Callender - 무엇이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2016 - Brian Epstein - 개미덫 ; 사회과학의 기초를 다시 검토함

2015 - Thomas Pradeu - '자기'의 한계 ; 면역학과 생물학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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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넓고도 넓은 학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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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시대죠. 2022년 수상자인 Catarina Dutih Novaes만 봐도, 고대 그리스/중세 라틴 논리학 같은 철학사도 하고, 전형적인 분석철학 주제인 논리학의 철학과 과학철학도 하면서, 동시에 사회 인식론과 인지과학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2022 수상작이 총 세 챕터인데, 첫 파트가 연역 추론에 관한 분석철학적 접근, 두번째 파트가 고대 그리스-중세 라틴 스콜라로 이어지는 철학사적 측면, 마지막 파트가 사회 인식론과 인지과학에 근거한 파트로 이루어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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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주제에 대한 접근법만 놓고 보면 이곳저곳에서 자료 뽀려와서 복붙해 만든 철학과 학부생 2학년 김모씨의 기말레포트 같은데, 뭐시기 어려운 상을 받았다고 하니 “이게 뭐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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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굉장히 특이한 구성이네요. 저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솔직히 제 학위논문도 좀 특이하게 구성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한데, 어설프게 하다가 "철학과 학부생 2학년 김모씨의 기말레포트"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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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면 아마 이게 요즘 영미권에서 자주 쓰이는 '안전빵' 전법처럼 보입니다. 내가 철학과 어느 포지션으로 갈지 모르니 최대한 다양하고 넓은 분야에 대해서 써보자.

듣기로는 영미권 철학 박사 학위들은 요근래 이런 방식으로 최대한 넓게 쓰곤 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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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저만 학위 논문 주제를 넓게 잡으려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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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뭐 박사학위가 대대손손 영구히 인용될 <존재와 시간> 같은 걸작이라기보단, '제가 이런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취업 지원서 같은 느낌이라....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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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지금 영미 박사 준비하는 중이라 그쪽의 분위기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는데, 대륙과는 달리 입학때부터 어떤 한 포인트에 뛰어난 사람을 구하고 기르기보다는, 전반적인 이해가 뛰어난 사람을 구하고 기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박사 과정 내에서 결국에 쓰게될 자신의 박사과정 논문과는 크게 상관없는 학술지 논문도 쓰는 것 같던데, 박사논문조차도 말씀하신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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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륙은 뭐랄까.....여전히 사-승 느낌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기본 커리큘럼도 없고, 있어도 지도교수랑 샤바샤바하면 넘어갈 수 있고, 대신 지도교수가 패스를 안 시키면 절대 뭘 수를 쓰더라도 졸업을 못한다고 하죠. 그래서 강사님들이 농담삼아서, 필살기로 '누구와 원효', '누구와 이황' 같은 걸로 지도교수의 혼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뽑아서 통과하고 오신다고들 하시죠.
대신 장점이 있다면, 영미권보다는 자기만의 이상한 학문을 하는 독창적인 학자라던가, 정말 한 우물만 하는 장인 같은 전문가들이 임용된다는 점 같습니다.
미국이라면 아퀴나스 전문가도 '아퀴나스와 덕윤리', '아퀴나스와 행복' 같은 주제로 논문을 써야할텐데, 대륙이라면 그렇지 않죠. 또 미국에서는 펀딩이 전혀 안 나올 에티오피아 고문헌, 동남아 고문헌 등에 관한 연구도 유럽에서는 꽤 전문가들이 있는 편이죠.

(2) 반대로 미국은 넓고, 다양하고 대중과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학자라는 것은 장인이라기보단 직업인에 가깝게 본달까요?

(3) 그리고 사실 이 둘의 절충인 캐나다라던가 영국이라던가 호주라던가 특이한 영미권 국가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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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모 선생님(미국에서 학위)께 들었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군요.
그분 말씀에 따르면, 미국은 도제방식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존하여 학생을 기르고, 그 학생이 어떤 한분야에 뛰어난 사람은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철학적 역량이 뛰어나도록 하고, 나아가 그 학생을 다시 교수로 만드는 것(다시 말해 후학 양성)이 목표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시스템 유무의 차이에 의해, 도제시스템에 의존하는 유럽권은 스승이 전력을 쏟지 않으면 학계가 망가지기 쉽상인데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철학의 터전도 미국으로 옮겨오고 있는거라고 하시더라구요.

영국이 실제로 반반치킨인가보네요. 제가 전공하는 니체는 미국과 영국에 뛰어난 교수들이 있어서 영국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입학에 요구하는 허들은 미국과 동일하게 높고, 장학금 주는 것은 대륙처럼 또 짜게 주길래 단번에 포기했습니다 ㅎㅎ.

(1) 철학이나 사회과학 등의 학문에 있어서는 유럽 학계가 미국 학계에 '점령' 당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합니다.
대신 유럽 학계에는 나름의 장점이 존재하죠. 사학이나 문헌학, 역사언어학, 미술사 등의 분야에서는 유럽은 여전히 전통적 방식의 전문가를 생산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원 사료를 다루고, 원 사료를 분석하고, 새롭게 나오는 원사료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죠. 반대로 미국 학계에서는 항상 이 사료들을 '새로운 이론'에 따라 재해석하도록 요구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학계의 트렌드나 여러 이론들을 배우고, 접목하게 되고 그만큼 원사료를 접하는 시간은 줄어드는 것이죠.

아무래도 이는 학자의 생산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미국에서도 학계의 트렌드를 바꿀 정도의 성과를 일시적으로 낸 학자는 있지만, 그 문제 의식을 계속 발전시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걸작을 내놓고, 그 다음 작품에서는 이걸 확장시키고 그러는 경우가 많죠.

(2) 영국은 입학 조건이 상대적으로 느슨하지 않나요? 영국은 GRE 시험을 요구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편한 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은 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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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시점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코로나 열풍땜에 GRE 테스트 시행이 어려워져서 gre성적을 약 이년가량 요구하지 않은 미국 학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 기세를 계속해서 이번에도 gre를 안보는 학교도 꽤나 있구요. (아마 입학시켜보니 gre성적은 별 중요하지 않다는 조류가 생성됐지 않나 싶습니다) 나아가 심지어 이제 토플 성적마저 요구하지 않는 대학도 있어요. 제가 1번으로 지망하는 대학은 토플, gre모두 요구하지 않고 오직 sop와 writing sample만 봅니다.

아 결론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공식적인 허들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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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님께서 소개해주신 Dutilh Novaes 저작의 내용이 분명 틀리진 않은데, 조금 오도적일 수 있을 것 같아 첨언을 올립니다.

2022 수상작이 총 세 챕터인데, 첫 파트가 연역 추론에 관한 분석철학적 접근, 두번째 파트가 고대 그리스-중세 라틴 스콜라로 이어지는 철학사적 측면, 마지막 파트가 사회 인식론과 인지과학에 근거한 파트로 이루어져 있죠

언뜻 '전혀 상관없는 자료들을 대충 묶어다놓은 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구성입니다만, 책의 제목인 "The Dialogical Roots of Deduction"만 봐도 사실 이 구성은 매우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구성입니다.

최근 논리철학계에서 Dutilh Novaes의 주된 기여는 '논리학의 본성은 한 주체의 사유가 아니라, 여러 주체의 대화와 논박이다'라는 관점을 재조명하고, 이런 관점이 현 논리철학의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인 바에 있습니다.

Dutilh Novaes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논리학은 본디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그 제재로 갖고 있었으며, 논리학이 '한 사람의 사유'에 대한 학문으로 전환된 것은 많은 부분 데카르트 등 근대철학자들부터라고 진단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책에 철학사적 고려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불어 논리학을 '여러 사람들 간의 대화'라는 관점으로 보는만큼, 현대 사회 인식론 및 인지과학의 성과를 통해 우리의 논리학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는 것 역시 당연히 따라나오는 귀결입니다.

이처럼 Dutilh Novaes의 저작은 보수적인 의미에서도 상당히 '종합적' 인 책이고, 본인의 연구 프로그램들 역시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제 소견에는, Dutilh Novaes의 저작 같은 예시가 있을 경우엔 보다 정확한 상세사항을 파악한 이후에 보다 거시적인 담론을 논의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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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도 제가 흥미있는 부분만 읽어서 그런지 전체 계획에 대해선 무지했네요. 훌륭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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