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 전회 이후의 사회적 전회?!

데일리 누스에 이런 기사가 있네요.

글 앞부분에 인용된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언어적 전회는 끝났다. 우리는 열심히 파티를 하였고, 취하였으며, 이제 책임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 오늘날, 새로운 혁명이 끓고 있다. 분석철학은 사회적 전회 한 가운데 있다.

“The linguistic turn is over. We partied hard, got hungover, and now we’re trying to live as respectable adults… Today, a new revolution is brewing. Analytic philosophy is in the midst of a social turn.”

듀크 대학교의 철학 조교수 케빈 리차드슨(Kevin Richardson)이 쓴 글입니다. 형이상학, 언어철학, 사회철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고 하네요. 리차드슨은 자신이 90년대 키즈로서 학부생 시절에 로버트 브랜덤과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을 통해 언어적 전회를 통과하였다고 고백하네요. 그 시절에 자신은 '실재적 세계(Real World)'를 부정하면서 '세계의 판본들(world versions)'만 존재한다고 보는 굿맨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카르납의 「경험주의, 의미론, 존재론(Empiricism, Semantics, and Ontology)」의 마지막 절을 문신을 새기듯이 항상 새기고 다녔다고 고백하네요. 그렇지만 이제 그는 (위에서 인용한 구절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분석철학에서 언어적 전회가 끝났다고 평가합니다.

리차드슨이 '언어적 전회' 대신에 새롭게 도래했다고 강조하는 '사회적 전회'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략 이렇게 소개되어 있네요.

철학의 모든 영역은 이제 번영하고 있는 데다 활발하게 사회화된 하위분야를 가지고 있다. 퀼 쿠클라(Quill Kukla) 같은 사회적 언어철학자는 담론적 부정의를 토의하고 있으며 젠더 담론의 언어적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사회적 인식론자들—예를 들어,크리스티 돗슨(Kristie Dotson), 미란다 플리커(Miranda Fricker), 제니퍼 래키(Jennifer Lackey)—은 우리의 언어적 실천이 사회적 부정의에 기여하거나 사회적 부정의를 구성하는 방식들을 연구하고 있다. 케야 마이트라(Keya Maitra) 같은 페미니스트 심리철학자는 명시적으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마음을 고민한다. 마지막으로,—나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인—사회적 존재론은 샐리 해스랭어(Sally Haslanger) 같은 철학적 거장의 작업 덕분에 더욱 번성하고 있다.

Every area of philosophy now has a thriving and lively socialized subfield. Social philosophers of language like Quill Kukla are discussing discursive injustice and analyzing the linguistic function of gendered discourse. Social epistemologists—e.g., Kristie Dotson, Miranda Fricker, Jennifer Lackey—are studying the ways that our epistemic practices contribute and constitute social injustice. Feminist philosophers of mind, such as Keya Maitra, consider the mind from an explicitly feminist perspective. Finally, social ontology—my own beloved field—is thriving more ever, thanks to the work of philosophical giants like Sally Haslanger.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 정도 생각이 드는데요.

(1) '사회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철학들이 전부 젠더 담론이나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어서, 솔직히 저자 분의 철학적 관심이 좀 특정 연구 주제나 연구 영역에만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란다 플리커나 샐리 해스랭어 같은 인물들이 우리 시대에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철학자들인 것은 맞지만, 저분들의 논의가 정말 현재의 분석철학계 전반의 동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또, '사회' 존재론이나 '사회' 인식론 등이 '젠더' 문제에서만 국한되어서 다루어질 것 같지도 않고요.

(2) 굳이 로티나 브랜덤이나 비트겐슈타인이 이제는 극복된 철학자들인 것처럼 서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이 사람들이야말로 언어의 사회적 성격을 굉장히 강조한 인물들이라, 철학의 '사회적 전회'를 논의하려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물론,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이 젠더나 부정의 같은 현실의 구체적 이슈를 직접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트겐슈타인주의 전통은 우리의 '규범(norm)'이 언어적-사회적 실천과 얼마나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는지를 잘 지적하잖아요. 저라면 차라리 비트겐슈타인 전통의 여러 가지 통찰들을 사회적 존재론이나 사회적 인식론의 이론적 근거로 내세울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래의 글에서 @Mandala 님도 그렇게 보시고 말입니다.)

(3) 솔직히,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라는 말이 거의 한 세대를 지배한 이후로, '전회(turn)'라는 용어가 너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철학자들은 뭐만 하면 전부 '전회'라는 용어를 붙이잖아요.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 대륙철학의 '사변적 전회', 형이상학에서 일어난 '실재론적 전회' 등등 말이에요. 모든 새로운 철학적 경향이 '전회'라는 용어로 자신들의 입장을 홍보하려 하는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그렇게나 극복하고자 하는 '언어적 전회'가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그나저나 90년대 키즈인데 듀크대 조교수라니, 부럽네요.

전에 @Mandala 님께서 '사회적 전환'과 '사회 존재론'이라는 주제로 몇 개의 포스팅을 해주셨는데, 이번 글은 그 내용들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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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금만 검색해봐도 'the political turn in analytic philosophy', 'the historical turn in analytic philosophy', 'turn toward the living body in philosophy' 등의 제목이 붙은 단행본이나 논문류를 찾을 수 있네요. 솔직히 turn이란 말은 남용되어서 그 의미의 임팩트가 상당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의 '전회'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동안의 연구가 축적되어서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죠.

그리고 위에서 논의된 분석철학 내에서의 연구동향 등은 제가 잘 알지 못해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social turn' 앞에 제한어구가 붙지 않은 이상 일반적인 의미의 것이라 보아야 하겠고, 이에 대해서 그러한 용어를 붙일만한 '일반적 의미'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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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해당 글의 여러 댓글들에서도 나타나는 얘기입니다만, 아마도 "영미철학"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 '전환'이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는 이유는 꼭 순수 '학문적'인 이유에 그치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분석) 형이상학에서의 '실재론적 "전회"'는 학문적으로 매우 중대한 변화였지만, 50년대부터 형성된 영미권 철학계의 사회적 유인 구조에 있어 큰 변화를 가지고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최근의 "사회적 전회"는 업계 초년생일수록 피부로 와닿는, "영미철학계"의 유인 구조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에 많은 업계인들이 '전회'라는 말에 공감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특히나 재밌게 읽었던 이하 대목을 보더라도 "사회적 전회" 자체가 갖는 '사회적 의의'를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grin:

[사회적 전환의] 희망찬 요소 #2: 새로운 철학적 지형

사회적 전환이 왜 멋진 이유를 또 하나 꼽자면 새로운 철학적 발견이 이루어질 터전을 마련해줬다는 점이 있다. [부분전체론의] 특수 구성 문제(Special Composition Question)에 대해서 새로운 기여를 하고 싶다고? 아이고, 행운을 빕니다! 아마 논문을 투고하면 심사자들이 '일단 이것부터 읽으셔야지' 하면서 기존 문헌을 백만개쯤 들이밀 것이다. 반면에 성별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는건 확실히 더 확률이 높을 것이다. (좀더 확률을 높이고 싶다고? '성별과 특수 구성 문제'를 주제로 삼아보길!) 요는 사회적 전환이 새로운 철학적 풍경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미탐사 지역에서 젊은 학자들은 보다 용이하게 새로운 사상을 펼침으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게 왜 업계에 좋냐고 묻는다면, 음 어쨌든 새로운 철학적 주제는 신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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