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에서의 말씀들이 여럿 달렸네요. 특히 @Herb 님의
[quote="Herb, post:7, topic:3271”]
살짝 아연해지는 부분은, 개념공학자들이 이것을 "작정하고" 한다고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이죠. 개념공학자들이 특정한 규범적 개념들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개념들의 내포와 의미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뒤(engineering), 이러한 개념사용을 세계에 유통시켜 (implement; p.4), 세계를 변화시키겠다 ("conceptual engineering is ultimately about changing the world" (p.3) 라는 야망(?)이 제게는 좀 오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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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씀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일단은 이 야망은, 본문에 잘 나오듯, 단지 도덕철학 분야에서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진리 개념을 재구성한 샤프의 시도가 그 예시이고요. 물론 가장 대표적으로는, 해스랭어의 작업에서 보여지듯, 윤리적, 정치적 영역에서 개념 공학이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들이 정말로 오싹한 것인가, 생각하면 살짝 갸우뚱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속도’ 개념을 방향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조작한 물리학자들의 작업도 실제로는 개념 공학의 일부일 거거든요. 또, (개념 공학이 가능한 작업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러한 작업이 충분한 실천론적 토론 이후에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개념 공학이 ‘오싹한’ 시도로 취급됨 직하다면, 모든 실천철학적 작업들이 이런 ‘오싹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도 됩니다.
한편 @FrancesYates 님의 코멘트는 다른 이유로 흥미롭네요. 개념 공학의 시도는 (가상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행해질 언어 제약 정책과는 어쩌면 정반대 방향을 갖는 시도여서 그렇습니다. 언급하신 ‘언어 공학’이 특정한 언어적 표현들의 사용을 제약하는 것이라면, 개념 공학은 어떠한 언어적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는 작업이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념 공학의 이상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제로 제기하신 기시감이 들 법도 하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다시, 해슬랭어의 작업에서처럼) ‘여성’을 재정의해서, 사회적 억압을 받는 특정한 생물학적 집단만을 여성으로 간주한다면 성별에 관한 많은 담론들이 당연한 말, 또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는 말로 간주될 텐데, 어쩌면 혹자에게는 이러한 결과가 사상 억압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차이는 여전히 있겠지만요.
다만 앞의 속도 개념 사례에서도 언급했듯, 이런 일이 문제적인지는 의문스럽다는 게 한편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학문적 활동에서 개념 공학이 목표 삼는 작업은 아주 일반적이고, 자격 있는 활동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말이죠. 중요한 것은 개념의 조작 자체보다는 이를 변증하는 과정일 것이고, 정당화가 충분히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수용되지 않음에 따라) 학문적 활동으로서 개념 공학은 정치적으로 무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