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과 언어에 대한 몇 가지 상념 (사회 존재론, 없음, 픽션)

(1)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많은 형이상학 학자들은 논쟁을 한다. 대체로 그들이 논쟁을 벌이는 대상은, 형이상학적으로 추상적 존재자(abstract object)라 불리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자연적 존재자(natural objects)에 대해, (경험으로 관찰 불가능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그 존재가 있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내가 논의할 것은 우리가 이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지만, 자연적 존재자인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1-1)

픽션적 존재자(fictional object)와 사회적 존재자(social object)가 대표적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일반적 예시는 셜록 홈즈, 후자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예시는 돈일 것이다. (픽션적 존재자는 곧 사회적 존재자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수학이나 윤리 등을 픽션적으로 본다면, 픽션-수학/픽션-윤리 역시 사회적 존재자인가?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픽션적 존재자와 사회적 존재자를 가정하면, 우리는 여러 형태의 사실 진술들이 참이라 말할 수 있다.

(i) 셜록 홈즈는 베이커가에 산다.
(ii) 은행은 돈을 맡아준다.

이 두 진술은 사실 진술이며, 참이다. 왜 참인가? (i) 픽션적 존재자는 이 픽션을 가정할 경우 참이 된다. (ii) 사회적 존재자는? 돈과 은행은 무엇인가? 물과 같은 자연적 존재자와 다르게, 사회적 존재자는 순수하게 '기능적'으로 정의되는 듯하다.

한 걸음 나아가보자. 도덕을 사회적 존재자라 하면, 우리는 도덕적 진술에 대한 인지주의를 수용하면서, 도덕 자연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형이상학'을 제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즉, 수반이 아닌, 일종의 기능주의적 형태로 말이다. - 이러면 프랭크 잭슨의 도덕 기능주의와 유사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2)

없음은 형이상학의 큰 난제였다. 분석 철학의 결론은 '없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조금 난감한 경우가 존재한다. 행위와 인과성에 있어서 '없음'은 인과적 원인으로 작용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i) 나는 식물에게 물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생명을 유지한다.
(ii) 나는 식물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죽었다.

이 두 문장은 모두 인과 문장일 것이고, 딱히 별 문제 없이 참이라 수용할 수 있다. (ii) 문장을 분석하는 것이 문제인데, '식물이 죽었다'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물을 주지 않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존재론으로 생각해보면, '물을 준다'의 부정이기에, '없음'의 일종처럼 보인다. 그러면 없는 것이 인과적 효력을 가지는 셈인가?

이 '없음'과 관련된 기묘한 양상은, 행위 철학 일반 그리고 좁게는 윤리에서 어떻게든 활용한 방안이 있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도가의 무위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욕망이 든다 -> 어떠한 행위를 한다. 욕망이 들지 않는다 ->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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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언급하신 주제는 'omission'이라는 주제로 행위 철학이나 형이상학에서 다뤄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주디스 톰슨도 이 주제로 논문을 쓰고 했었던 것 같네요.

엄청나게 다양한 노트를 쓰고 계시네요. 좋은 주제 잡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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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합니다.

(2) 아무래도 저야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고, 흘러가는데로 보다보니 다양한 주제로 낙서를 하는 듯합니다. 원래 관심사인 메타윤리학이 (a) 규범적 발화라는 언어 철학의 영역에도 (b) 규범적 속성이라는 형이상학의 영역에도 (c) 그로 인해 촉발되는 행위라는 행위 철학/심리 철학의 영역에도 있다보니 두루두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좋은 메타윤리학적 이론이란 이 세 영역을 모두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할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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