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세 층위와 규칙 따르기

(1) 객관성 (objectivity)은 "특정한 자격이 있는" 인지자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라 단순히 정의해 볼 수 있다. (특정 자격이라는 한정은 인지자의 불완전성에 따라 객관성을 가진 것에 접근할 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각 장애인은 객관적인 시각 정보에 얻지 못한다.)

(2)

객관성이 성립하는 형이상학적 층위는 다음 같은 간단한 도식을 통해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 듯하다.

(i) 모든 인지자가 사라지더라도, 세계에 대한 모두가 동의할 참이 있다. (순환적 정의 같지만 넘어가자)

(ii) 모든 인지자라면 모두 동의할 만한 것이 있다.

(iii) 인간 인지자라면 모두 동의할 만한 것이 있다.

(3)
거칠게 말하자면, (i)은 마음-독립적 객관성 - 형이상학적 객관성이다. (ii)은 마음-의존적 객관성 - 즉 인식론적 객관성이라 할 만하다. (iii)은 마음 의존적 객관성, 그 중에서도 규칙 따르기로 분류할 만하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i)은 인지자와 무관한, 말 그대로 참인 것이다. (ii)은 인간이 아닌 인지자라면, 어떠한 규범적 규칙을 따르든, 동의할 참이다. 예컨대, 개든 인간이든 어떤 것이 고기다 딸기다 정도의 감각 지각에는 동의할 듯 싶다. (iii)은 인간의 규범적 규칙에 따를 경우 성립하는 참이다.

(iii)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을 지닌듯하다. (a) 일단 우리가 위반할 수 있다. (b) 하지만 다른 개인과의 공동체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준수해야되는 규칙이다. (반-개인주의라 정의해 볼 수 있다.) (c) (b)에 따라 이는 어떠한 규범이며 이를 따르는게 "합리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여기에는 언어학적 규범 - 사과를 "사과"라 불러야하는 것, 화용론적 규칙을 따르는 것 등, 윤리-행위적 규범 -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실을 말하는 것, 이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늘 것[사과를 먹는다면서 바나나를 먹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인식론적 규범 - 시각 정보에 대해선 시각이 더 뛰어난 사람의 증언을 믿는 것 등이 속할 것이다.)

(ii)와 (iii)은 구분할 한 가지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할 수 있어 보인다. (iii)은 의도/의지를 가진다면 위반할 수 있지만 (ii)은 그러기 어렵다. 사과를 "바나나"라 부를 수도, 사과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지만 바나나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를 시각적으로 본다면 그건 사과가 아니라 할 수 없다.

(4)

여기서 문제는 특정한 객관성이 어느 층위에서 성립하는지 인간은 확정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정말 이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할까?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인간의 규칙 따르기인가 아닌가? 다른 종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5)

규칙 따르기는 비트겐슈타인의 유산이지만, 상대적으로 그동안 덜 주목받은 기분이다. 물론 존 설 같은 일상언어-화용론 학자나 타일러 버지/라포르 같은 데이비슨의 논의를 계승한 학자들, 크립키나 보고시안 등도 이를 다루었지만, 아주 큰 틀에서 통합적으로 다룬 적은 없어 보인다.

소사가 인식론을 "규범적 영역"으로 다루어야 한다 선언한 이후, 메타윤리학과 인식론을 하나로 다루려는 범-규범성에 대한 시도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하만이나 아우디는 이 시도의 선구자처럼 보이는데, 이 둘은 "합리성"이라는 규범을 내세우며 행위-윤리학과 인식론을 다루었다. (즉 인간은 한정된 인지적 자원을 가지고 이 한정성 때문에 "합리성"이라는 규범에 의존한 추론-행위 규칙을 가진다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논리학 - 논리학 기반의 인식론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 르포르나 존 설, 바흐 등의 화용론 학자들이 언어의 의미를 다루는 방식이 이와 같은 "합리적 규칙"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합할 수 있어 보인다.
(또다른 이상한 방향으로는 윌리엄 알스톤이 있어 보인다. 알스톤 역시 화용론-발화수반 행위와 의미를 긴밀히 엮으면서도 동시에 인식론과 믿음의 규범성 문제를 다루었다. 흥미롭게도 아우디 - 알스톤은 모두 종교 철학과 종교 인식론을 다루었던 학자라는 점이다. [이 계열의 또 다른 학자로는 알빈 플랑틴가가 있다.])

(이 통합이 이루어지면 데이비슨의 계획이 완성되는 셈이다. 데이비슨은 행위 - 언어 - 지식을 하나의 큰 틀에서 통합하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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