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행위로서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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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도덕에 관해 말하면서, 도덕의 범위(외연)을 확정하기 어렵다 말한 바 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데이빗 왕(David Wang)의 도덕 상대주의 논의에서 나온 것이다. 왕의 도덕 상대주의는 다른 상대주의와 다른 측면이 있다. 하만 등의 도덕 상대주의는 "도덕적 옮음/참이란 각 개인-공동체마다 다르다."라는 일종의 인식론적/형이상학적 주장이라면 왕은 (이 논의에 앞서) 도덕의 외연부터 정의하고자 한다.

왕은 서양 윤리학이 가진 도덕에 대한 발상이 편향적이라 지적한다. "살인은 나쁘다."를 생각해보자. 분석철학의 표준적 발상은 i) 나쁘다는 표현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ii) 지칭에 대한 형이상학적/인식론적/규범윤리학먹 견해를 확장해 이론화하는 것이다. (칸트라면 좋음이 이성의 법칙이라 주장할 것이며 결과론이면 결과의 좋음이라 주장할 것이다.)

반면 다른 문화권, 특히 동북아에서 윤리란 "윤리적 고려 대상"에게 적절한 표현을 했는지에 대한 학문이라 왕은 주장한다. (라고 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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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 차이를 잘 드러내는 것은 상례다.

통상 동북아 철학에서 상례는 윤리의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서양 철학에서는 (최소한 현대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동북아에서 상례가 중요한 이유는, 윤리적 고려 대상 중 가장 중요하다 여겨지는 부모님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존중"하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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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이러한 접근은 한 가지 우수한 장점을 가진다. 바로 응용윤리'들'에 대한 메타적 이론(예컨대 메타응용윤리)을 성립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응용윤리의 부상은 당대 윤리학의 한계에서 시작되었다. (a) 하나는 새롭게 부상하는 윤리적 고려 대상들 (여성, 소수자, 생명, 동물, 환경, 피식민지)에 대해 어떠한 윤리적 태도를 가져야할지 기존 "좋음"에 대해 탐구하던 윤리학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를 일반화하면 (b) 기존 윤리학이 탐구하던 윤리적 법칙이 실제 현실 적용의 "판례"에서는 실패하던 셈이다.

(3)

왕의 접근법은 이 판례를 어떻게 만드는가? 우리는 화용론에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다.

화용론은 화자와 청자 간의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논의다. 화용론은 이 의사소통 행위를 규율하는 법칙(rule) 혹은 금언(maxim)을 통해 일종의 경계짓기를 시도한다.

만약 도덕이 왕-만달라가 보듯, 행위자-피행위자 간에 도덕적 태도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화용론을 가져올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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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표현 준칙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정해볼 수 있다.

(a) 화자와 청자는 도덕적 태도에 대해 공통 지식을 따라야한다. 예컨대,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뺨을 때리는 건 아무리 의도가 도덕적 태도의 표명일지라도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

(b) 화자는 청자가 예상하는 화자의 능력 안에서 '적정한 수준'의 의도한 결과/도움을 이룰 것을 요구 받는다. 예를 들어, 다리가 다친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고 그를 도덕적이지 않다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재산 등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른 정도의 헌신 (돈의 양, 시간의 투자 등)을 기대하는 듯한다.
[아마 이 준칙에 따라 어떠한 사회이든 일반적인 경우에서 남에게 의도적으로 물리적/심리적 해를 끼치는 것을 부도덕하다 여기는 듯하다.]

(c) 동시에 화자는 청자가 부담을 느낄 정도의 과도한 헌신을 해서는 안 된다. (일종의 황금률) 니비슨이 유교 경전 해석을 통해 지적한 바인데, 인간은 상대의 도덕적 호의에 대해서 나름 그 호의를 갚아야 한다 부담을 느낀다. 예컨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전재산을 준다는 건, 상대에게 딱히 좋은 것 - 윤리적인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d) 화자는 청자와 자신의 관계성을 고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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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겠지만, 이 준칙들은 규범 윤리 중 의무론과 결과론을 오묘한 방식으로 결합시킨다.

아마 결과론 중 청자와의 관계성을 벗어난 것 (예를 들어 독재자를 죽이느냐 안 죽이느냐)은 이 담론에 따르면, 윤리의 영역은 아닌 셈이다. (윤리의 영역은 아니지만 규범의 영역이긴 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선택 이론을 통해 집합적 선을 달성해야하는 문제이며, 이 집합적 선/좋음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무게를 다는 문제일 것이다.)
(아마 이건 윤리의 far side - 존중 준칙과 구분되는 결과론의 영역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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