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글인진 기억이 안나지만, '도덕'의 영역을 정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말한 적이 있다.
(2)
우선 도덕이 '행위'의 영역에 있으며,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관한 '규범성'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듯하다. 그렇지만 이 영역에는 온갖 복잡다단한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 이보족은 쌍둥이가 태어나면, 쌍둥이 중 하나를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제처두고) 도덕의 영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도덕과 무관한 영역, 예컨대 종교적-문화적 관습인가?
(3)
나는 항상 내 입장이 깔끔한 메타-윤리학적 입장으로 잘 구분되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일단 나는 도덕 회의주자는 아니다. 하지만 도덕 상대주의자는 맞다. 동시에 한정된 영역에서는 도덕 절대주의가 이기도 하다.
내 설명은 도덕 상대주의자이면서, 한정된 영역에서는 도덕 절대주의자라는 이 괴상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4)
우선 도덕의 영역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해볼 수 있다 생각한다.
(i) 윤리적 고려 대상에게 (ii) 그에 적합하다 여겨지는 감정의 표현을 하는 것. (이때 우리가 실제 이 감정을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는 부차적이다.)
예를 들어, '인간을 죽이지 말라.'는 (i) 인간이라는 윤리적 고려 대상에게, (ii) 죽이지 않음이라는 일종의 존중을 표하라는 행태의 주장으로 분해해볼 수 있다.
(5)
(4)에서 정의한 도덕의 규범 중에서, 나는 규약주의적 측면이 있는 영역이 있다 여겨진다. 즉 모든 이성적 행위자라면,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마땅히 해야한다 느끼는 감정의 표현이 있다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말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등
문제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상대주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각 인간 집단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남자가 여성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은, '여성을 존중하기 위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표현이라 가정해보자.) 반대로 독일에서는 남자가 여성을 돕지 않는 것이, (여성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라는 점에서) '여성을 존중하기 위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일종의 '공통 지식'(common knowledge)라는 점이다. 나와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A'라는 행동을 하는 것이 'B'라는 감정의 표현임을 안다. (그리고 이 지식을 공동체에 속한 모두라면 알 것이라 가정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공동체 속에서 이 도덕적 행동을 통해 서로 잘 의사소통하고 잘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존중'이라는 감정의 표현이 제대로 전달되기만 한다면, 그게 어떠한 '방식'(표현)으로 전달되든 그건 별 상관이 없는 셈이다. 살인이나 도둑질처럼, 물질적인 해를 가하는 것이야 어떠한 방식으로든 부정적 감정의 표현이겠지만 (즉, 나에겐 일종의 규약주의를 통해 도덕 절대주의가 성립하는 영역이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이처럼 어떠한 것을 하든 상관이 없는 '상대주의적' 결론에 도달하는 듯하다.
(6)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패러독스를 찾아볼 수 있다.
(i) 요근래 한국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인 듯하다. 한국 여자들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우받길 원하면서도, 여전히 남성들에 자신들을 도와주길 원한다. 이는 내로남불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어느정도 사실인지는 이 논의에서 부차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a)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우받길 원한다. 즉 존중을 원한다. (b) 다만 이 사회에서 존중의 표현에 해당하는 공통 지식은 남성이 '여성을 돕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나를 돕는 것은 (a) 나를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인가? 아니면 공통 지식의 위반을 통해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표명하는 것인가? 일종의 패러독스 상황에 몰리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공동체의 (같은 감정에 대한) 도덕적 규범이 충돌하는 경우, 아니면 윤리적 고려 대상의 범위가 충돌하는 경우, 우리는 패러독스에 직면한다. 만약 도덕 이론이 이러한 문제조차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한테 이건 내 이론의 파트 2에 해당한다.)
(ii) 이보족의 쌍둥이 살해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언제나 이 현상과 도덕에 대해서 흥미로워하는 것은, 이 풍습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 풍습은 미신으로 규정되었다. 그래서 정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금지되었는가? 어느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쌍둥이의 어머니들은 적극적으로 이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드렸다. 즉, 이들은 이 관습이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에 적합하지 않다 생각한 셈이다.
많은 형태의 윤리적 고려 대상을 팽창시키자는 주장이나, 어떠한 관습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경우 우리는 대체로 감정에 호소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말한 도덕적 참은, 누구나 느끼는 이 감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7)
번외이지만, 데이빗 루이스는 관습을 규약(convention)과 공통 지식, 게임 이론을 통해 분석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게임 이론을 여러 인간 상호 작용에 적용해보려는 철학적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화용론적 차원에서도 몇 가지 이론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