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언어에 대한 여러 생각들. (다시)

(1) 의미에 대한 이론 아티클을 번역하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고 있는 기분이다. 러셀-프레게-가능세계 의미론까지는 어떻게 알겠는데, 세부적인 각론들은 보면 머리가 핑핑 돈다. 지표사, 도넬란, 카플란, 스탈레이커, 맥도웰.

(2)

이 말은 메타윤리학, 특히 메타윤리학적 언어철학에 그대로 적용된다.

에이어의 이모티비즘이라던가, 헤어의 규정주의/지시주의 같은 시도들은 프레게-게치 문제에 봉착한다. 사실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의 함의다. 에이어/헤어처럼 도덕적 발화를 일종의 "다른 화행"으로 보는 것은 (의미론의 차원에서 시도될 경우), 그냥 일상 언어 화자들이 도덕적 발화를 할 때와 지나치게 괴리감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프레게-게치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 있는 척도는, "다른 화행"으로 보면서도 이게 얼마나 일상 언어 화자들의 [일상적-평서문적] 화행과 근접할 수 있는지라 할 수 있다.)

(2-1)

에이어/헤어/카르납 같은 초기 분석철학자들의 메타 윤리학 이론은, 일상 언어의 윤리적 발화를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들만의 형이상학을 가정하고 그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을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든 꼼수를 발휘한 느낌이다.

(3)

따라서 나의 기본적인 논제는 우리가 일상 언어의 도덕적 발화에서 "시작하는" 메타윤리/언어철학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상 언어의 도덕적 발화, 라는 현상을 구분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사실 한번도 제대로 된 규정을 본 적이 없다.) 넓게 말하면, 규범적 발화 영역일텐데, 이 규범성 역시 다시 정의의 문제에 부딪친다. (또 규범성 문제가 해결되도, 규범성 중에서 도덕성이 특별히 다른 특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주제 구분에 불과한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보인다.)

(4)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도덕적 발화가 두 가지 "의미론적"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생각한다.

(i) 하나는 양상적 표현의 형태로 드러나는 의무론 논리(denotic logic)의 내용이다.

이 부분은, 의미론, 특히 가능 세계 의미론에서 많은 영감을 가져올 수 있을 듯하다.

(ii) 다른 하나는 감정의 표현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표현주의 의미론이 닿아있는 영역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기존 고전적 의미론이 가장 "간과한" 부분이며, 고전적 의미론과 충분히 통합 가능한 영역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나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의미론의 영역에서, "화자의 태도" 역시 중요한 정보값으로 여겨져야 하는 사례라 여겨진다.

이는 비하 표현(slur)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이 초내포성[hyperintensionality]로 보인다. 여기서 보였던 흥미로운 예시는 다음과 같다. (i) 그건 40% 확률로 일어날거야. (ii) 그건 60% 확률로 일어나지 않을거야. 이 두 문장은 지칭이나 내포에서도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의미의 영역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화자의 태도" 역시 정보값으로 보자면, 전자와 후자는 같은 사태에 대해서, 같은 내포까지도 가지지만 화자의 태도는 다른 셈이다.)
(이는 또 두꺼운 개념[thick concepts]와 이어진다. 이는 '얇은 개념'과 대조되어 사용되는 용어다. 우리가 무엇이 '싫다'할 때와 무엇이 '혐오스럽다'할 때, 둘은 같은 "부정의 태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혐오스럽다'는 단순한 '싫다'보다 정보값이 많아/'두꺼워' 보인다.
이는 도덕적 영역에서는 중요한데, 우리는 같은 '부정의 태도'일지라도 다른 정보값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엮여있는 또다른 문제는, 의성어/의태어의 문제로 보여진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무엇인가? 진리값의 문제로 여기기에는 무언가 "부가적인" 정보값이 있어 보인다.)

(5)

크리스먼의 최근 논의에서 보듯, 도덕적 발화의 "힘"이 생기는 영역이 의미론의 차원인지 화용론의 차원인지에 대한 복합적인 (혹은 종합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듯하다.

사실, 도덕적 문제가 "사실"의 문제라면, 의미론인지 화용론인지는 부차적이다. (진리값은 대체로 의미론의 영역이고, [이 통상적 진리값을 뒤트는] 화용론적 함축이나 그런 문제는 "도덕적 발화는 제대로 하지 않은" 부차적인 영역에 불과하다 여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근데 감정의 표현이라면? 아니면 다른 화행이라면? 문제는 살짝-많이 복잡해진다. 특정 발화의 감정 표현은 의미론 단위에서는 소실될지라도, 화용론 차원에서는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i) (그냥 평범함 어조로) "살인은 나쁜거야."
(ii) (화난 격한 어조로) "살인은 나쁜거야!!!!"

전자와 후자는 의미론적 차이는 없지만, (어조라는 화용론적 요소로 -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화용론을 넘어선 의사소통의 "비언어적 요소"라고 불려야 할지도 모른다.) 정보값의 차이를 가져오는 듯하다. 전자는 (별다른 가정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의 기술일거고, 후자는 그 기술에 더한 어떠한 태도를 표명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걸 화행의 차원으로 가면, 더 복잡해진다.

앞서 말했듯, 헤어는 도덕적 발화가 (의미론적 형태로 아무런 암시가 없지만) 명령법의 화행이라 여긴다. 이건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프레게-게치 문제에 부딪친다. (그래서 헤어는 명령 논리라는, 이 프레게-게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령법만의 의미론-논리적 체계를 만들려 했다.)
근데 이걸 화용론의 차원이라 보면, 많은 문제들을 우린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의미론적 형태에선 아무런 암시가 없는, 화용론으로만 알 수 있는 화행 변화 역시 존재한다.)

(i) [상황 ; 추운 겨울 방 안에 창문이 열려있다. 교수와 내가 앉아있다. 나는 창문 가까이에 앉아있다.] 교수 왈 : "방 안이 춥군."

이 발화 자체는 의미론적 차원에서 사실의 진술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화용론적 화행의 차원에서는? 명령법이나 권유로 이해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도덕적 발화를 의미론적 차원으로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화용론적 상황까지 포괄할 것인가? 포괄한다면, 의미론-화용론의 영역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동적 의미론(dynamic semantics)가 여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의미론은 문장이 기본 단위가 아니라, 담론-대화가 기본 단위라고 한다. 담론 차원에서 화행 전환을 연구한다는데, 이걸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6)

나아가, 나는 인간의 발화에서 여러 다른 인간의 능력들이 개입한다 여겨진다.

평서문 - 사실 진술은 (흄적 구분에 따르면) 믿음이라는 심적 상태와 연결되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매칭이 쉽지 않아 보이는 사례가 여러 군데 등장한다.

특히 상상력은 중요해 보인다. 만일 도덕적 참-도덕적 평서문-믿음이 도덕이 가진 "규범성"이 발휘되는 영역이 아니라 한다면, 우리는 보다 복잡한 영역을 상정해야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상정해야 한다 여긴다.)

인지 언어학(cognitive lingustics)에서는 인간의 언어 활동이, 언어-기관뿐 아니라 복합적인 인지 활동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이 역시 어떠한 의미로든 나의 이론화에 도움이 될 듯하다.

(7)

이 문제는 다시 넓은 의미에서 '지향성'(intentionality)의 문제로 엮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든다.
프레게의 내포-외연 구분에서, 결국 오늘날 가장 성공한 이론인 고전적 의미론들은 외연/지칭의 차원에서 내포를 해결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그 결과, 프레게가 내포를 지향성과 연관시켰던 함의는 언어철학에서는 동떨어지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감각 지각의 철학과 심리 철학에서는 이러한 지향성의 문제가 (오히려)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들이 이따금 언어철학으로 넘어오곤 한다. (물론 이것도 어느정도 옛말이다. 이 연구는 주로 더밋 이후 영국의 지각 철학 흐름과 인지과학의 부흥하던 시절 심리철학에서 의식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주로 다루던 주제다.
오늘날은 더 이상 이런 주제를 심리철학-인지과학-지각의 철학쪽에선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이제 보다 세부적인 논의들을 한다. 인간의 판단[reasoning]의 방식, 구체적인 방법, 영향을 주는 요소들 등등.)
(따라서 지향성을 중심으로 언어철학-심리철학-지각의 철학을 하나로 종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고전적 의미론과는 다른 결이 생길 듯하다.)
(또한 고전적 의미론과 분석 형이상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지향성-aboutness에 대한 단행본을 썼다는 점이다.)
Aboutness - Stephen Yablo - Google 도서
Intensional Logic and Metaphysics of Intentionality - Edward Zalta - Google 도서

다음은 지향성의 문제를 다룬 SEP 아티클들이다.

Intentionalit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Consciousness and Intentionalit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ule-Following and Intentionalit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he Normativity of Meaning and Conten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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