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성(normativity)에 대한 몇 가지 생각

(1) 규범성은 우리가 굉장히 자주, 폭 넓게 쓰는 말이지만 사실 엄밀히 정의된 적은 본 적이 없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겨진다.

(a) 규범성은 무엇을 해야 할 이유(reason)가 있다는 의미이다.
; 즉, 규범성은 지향성(intention)과 관련이 있다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지향성이 의식적인 것인지, 비-의식적인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언어 문법의 규범성을 따르는 것은 비-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한 위반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
; 우선 생각해본 사례는 척수 반사다. 우리는 누군가가 무릎을 첬을 때, 반사적으로 발을 뻗는다. (다만 이 사례는 다시 인과론으로 환원해볼 수 있다. 누군가가 무릎을 쳤기에 -> 발을 뻗었다는 것이다. 나는 직관적으로 이는 규범성과 관련이 없다 여겨진다. 왜 관련이 없는가? (b)가 그 답이 될 듯하다.)

(b) 따라서, 이 말은 규범성은 법칙(law)와 다르게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우리는 자연 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 우리는 중력을 위반할 수 없으며, "빨간 것이 빨간 것이다."라는 동일성의 법칙에 대해서 위반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규범적인 것은 위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문법은 규범적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문법에 어긋난 언어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이 언어가 의사소통과 같은 언어의 목적이라 가정된 것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는 부차적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을 규범성이 있지만, 이를 위반할 수 있다.
; 척수반사는 (제대로 된 인과 사슬이 구성되는 이상) 우리가 위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규범성이 없다 여길 수 있다. (따라서 규범성에 대한 논의는 오직 목적론적 설명과 연관된 듯 보인다.)

(c) 동시에, 규범성은 무작위와 다르게 어떠한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여러 과일 중에서 사과를 고르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기서 사과의 색깔(초록, 빨강 등)은 아무런 규범성을 가지지 않는다. 아무것이나 골라도 된다.
; 즉, 아무런 근거를 가지지 않고 한 행동은 규범성이 없다 볼 수 있다. (여기서 원인과 근거는 구분된다.)

(2)

간략히 생각해보았지만, 이 생각들은 양상적 개념들, 확률적 개념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앞서 보았듯, 자연 언어에서는 이 세 가지 표현(규범적 - 양상적 - 확률적)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3)

이 아이디어를 보다가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다.

(a) 도덕적 발화의 목적은, 양상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규범성에 대한 주장이다.
(b) 이는 규약주의/(좀 더 복잡한) 주관주의의 형태로, 행위자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c) 문제는 이 요구는 행위자의 감정/실제 동기와 합치될 수도 합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살인을 하지 말아야한다는데 동의하면서도,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에 대해서는 죽이고 싶은 강한 분노를 느낀다.)
(d) 여기서 일종의 미묘한 덕 윤리학이 개입하는 듯 보인다.
(d-1) 합치한다면 행동하면 된다
(d-2) 합치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방식이 있어 보인다.
(i) 요구에 대한 변명을 수용한다. (ii) 감정의 저항을 이겨내고 행동한다. (iii) 감정도 해소하면서 요구사항도 충족시키는 행동을 한다.

(iii)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모든 경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진 않는다. 다만 (iii)을 가장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덕이 있다 말할 수 있어 보인다.

(그동안 내가 썼던 모든 윤리학적 이야기를 집합시킨 아아이디어다.)

(4)

(3)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키면 다음과 같다.

(a) 도덕적 발화는 도덕적 용어를 사용한 발화다. 이 발화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하나는 should/ought to의 양상적 표현을 사용한 발언이다. 다른 하나는 good/bad 같은 가치 표현을 사용한 발언이다. (또한 엄밀하게 말해야 하는 것은, 이 도덕적 발화는 반드시 사건[event]에 대한 발화라는 점이다. 우리는 개체[object]에 대해선 어떠한 도덕적 발화를 할 수 없어 보인다. 만일 그러한 발화가 있다면, 그 개체와 연관된 사건을 함축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a-1) 양상적 표현을 사용한 발언은, 가능 세계를 통해 정의할 수 있는 어떠한 규범성에 대한 주장이다. 예컨대, "X를 해야만 한다."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i) 모든 가능 세계에서 이에 해당하는 도덕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이 도덕적 사건은 필연적이지 않다. (이를 통해 규범성은 형이상학적/논리적/자연과학적 필연성과는 구분된다.) (ii) 이는 대체로 많은 가능 세계에서 발생한다. (대체로라는 표현이 굉장히 모호하다.) (iii) 대체로 많은 가능 세계에서 발생했을 때, 이는 좋은 일이다.
([ii][iii]가 굉장히 모호하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스칼론/코스가르드 스타일의 규약주의를 상정한 것이었다. 그들은 도덕성을 이성적 행위자라면, 기꺼이 할 행동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가능 세계로 확장 가능할 듯하다. 이성적 행위자라면, 어느 가능 세계에서든 연관된 상황에 처했을 때 할 행동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상적 행위자/평가자 등의 주관주의도 비슷한 주장을 하므로, 가능 세계의 형태로 다시 정의해볼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는 양상적 표현 - 행위할 동기를 엮어내고 싶었다.)

(a-2) 가치 표현은 대상/사건에 대한 태도를 함축한다.

(c) 문제는 양상적 요구 사항과 감정 표현이 합치하지 않는 경우가 분명 발생한다는 점이다. 앞서 본 살인자의 경우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범례는 직관적으로 (대체로) 모두가 도덕적으로 옳다/그르다 라는 사건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무차별 살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를 것이다. 특별한 동기 없이, 이타심에서만 누군가를 돕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을 것이다.
(원래의 아이디어는 관습/도덕의 구분을 여기에 적용해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도덕적인 영역으로 불리는 것은 도덕적 감정과 관습-규약이 일치한다.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도덕적 감정과 관습-규약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규약과 관습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는 점이다. 음. 어쩌면 굳이 말하자면, 관습은 도덕 원칙을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이고, 규약은 도덕 원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e) 사실 내 이론에서 도덕적 딜레마, 도덕적 불일치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도덕적 참" 같은 것을 애당초 상정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약점일까? 약점처럼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처럼 느껴진다.
다만 채워야 할 지점은, 이 도덕적 딜레마/도덕적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는 "도덕에 있어서 전문성/능숙함"이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있고, 그게 실제 판단/행위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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