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언어의 양상 표현과 의무 표현에 관한 몇 가지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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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 후 여러 아티클들을 읽었다. 그에 따라 조금 진전된 생각과 다른 아이디어들을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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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언어에서 시제(tense) - 상(aspect) - 서법(mood)은 모두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요소다. 시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사건/발화자의 시간적 시점에 관한 내용이다. 상은 사건이 "계속 진행 중인지" 아니면 "끝났는지" 등 진행에 관한 내용이다. (이 정보들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각 언어마다 다르다. 문법적 요소 중 하나라 문장 구성마다 강제될 수도 있으며, 단어로 표현되어 특별하게 정보를 드러낼 의도가 없다면 생략될 수 있는 요소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서법(mood)가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편이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서법은 모달리티(modality)에 관한 내용이다. 언어학에서 모달리티(modality)는 철학보다 "양상"으로 번역되는 것보다 범위가 넓다. 언어학에서 모달리티란 언어가 참/사실과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명령법, 의문법(문), 감탄법(문)처럼 화자의 발화 의도와 관련된 정보도, 대상에 대한 의심/희망과 같은 정서/믿음을 표현하는 정보도, 필연/가정처럼 (철학에서 말하는) 양상적 정보까지 모두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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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디어는 도덕적 언어/문장의 역할은 의미론적으로 사실의 서법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서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다. 아마 감탄법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략 이해하는 듯하다. (따라서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가"의 문제는 여기에서 독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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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어학에서 저 모든 표현을 서법으로 뭉뚱그려 놓았듯, 각 영역의 전형적인 표현들이 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은 사례가 꽤 많다는 점이다. 다음은 몇 가지 예시다.

(i) 너는 치과를 가야만 해. (You should go to 치과)
(ii) 너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해. (You should not steal)
(iii) (해가 뜨지 않은 상황에서) 해가 떴어야 하는데. (Sun should rise)

아마 (i)과 (ii)의 should는 모두 규범성을 드러내는 표현이지만, 전자를 도덕적 영역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iii)의 사례는 무엇인가? 규범성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양상적 정보 혹은 발화자의 믿음의 정도를 드러내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 (철학에서는 독립적으로 보이는 세 영역 ; 양상, 규범성, 믿음이 예상 외로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다른 예시는 영어에서 will의 용법이다. 보통 우리는 will을 미래 시제(tense)와 연관된 (조)동사로 이해한다. 하지만 will의 원 뜻은 free will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듯, "의지",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i) 나는 내일 장을 볼 것이다. (I will 장 보기)

이 문장이 미래로 읽히는 이유는, will이 (i) 화자의 의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ii) 그 의지의 강도가 꽤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will에 의지 표현과는 독립된 미래 시제의 의미가 있다 주장할 수도 있다. 나는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여기서 밝히고 싶은 것은 will의 의지적 표현과 미래 시제 표현이 일종의 동음이의어라기 보단, 개념의 확장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will의 용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ii) 넌 실수 할 걸, (You will make mistake)

사실 한국어로 영어의 원문을 정확히 옮기기는 어려운 편이다. 여기서 will은 (i)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가정일 수도 있고 (ii) 아니면 (이와 살짝 달리) 너가 과거에도 자주 실수를 저질렀기에, 넌 앞으로도 계속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일종의 "습관"에 관한 진술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를 habitual aspect이라 부른다. 힌디어에서는 이 서법 표현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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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관해서 일종의 맥락주의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맥락주의가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다중적인 서법 표현이 "우연에 의해" 동음이의 관계가 된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중적 서법 표현의 기반에는 좀 더 심오한 심리철학적/인식론적/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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