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k Van Roojen의 <Metaethics ; A Contemporary Introduction>(Routledge, 2015) 8장에 대한 번역입니다. Roojen은 원래 번역하려고 했던 "도덕인지주의 대 비인지주의"( Moral Cognitivism vs. Non-Cognitiv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저자입니다. 이 아티클이 보다 내용이 풍부하고, (보다 저자의 견해가 나오는) 정교한 논의가 나와서 이를 번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의가 디테일하고, 분량이 많아서 언제 다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0) 개요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판단(judgement)이 감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주관주의에 동의한다. 또한 단순 주관주의/복합 주관주의와 함께 자연주의적 형이상학 구도를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든 가설로든) 도덕적 판단이 감정/태도에 관한 것(about)이라는 주장은 부정한다. 비인지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 도덕적 판단은 그것(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다(express). 따라서 비인지주의는 단순 주관주의를 주장하는 동기를 급격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셈이다. 이전 장의 복합 주관주의자들은 단순 주관주의의 문제를, (여전히 내용이 재현적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 도덕적 판단의 내용을 복합화함으로서 해결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단순 주관주의자들처럼) 도덕적 판단이 여전히 (판단과) 연관된 개인이 가지는 태도에 "관한 것"으로 취급한다.
대조적으로 비인지주의자들은 동일한 문제를 (단순/복합 주관주의자들이 가지는) 재현적 구도를 거부함으로서 해결하려 한다. 이 구도를 거부함으로서, 그들은 동시에 최소 사실주의(minimal realism) 역시 거부한 셈이다. 비인지주의의 결정적인 부분은 두 개의 부정 주장으로 이루어진다. (i) 도덕적 문장은 일반적인 평서문이 세상을 재현하는 것과 다르게, 그러하지 않는다. (ii) 도덕적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 세상을 재현하는 것과 다르게, 그러하지 않는다.
(8-1) 두 개의 부정 주장
비인지주의자들은 도덕적 판단이 인지적 심적 상태(cognitive states)라는 주장을 부정한다. (인지적 심적 상태란 우리가 [예컨대] 거짓말이 나쁘다고 누군가가 믿을 때, 그 사람의 심적 상태라 부르는 것이다. 이 심적 상태는 일반적으로 "거짓말은 나쁘다."라는 평서문 형태의 주장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비인지주의라는 명칭을 가진 이유 중 하나다. 비인지주의는 도덕적 판단이 인지적이지 않다 여긴다. 마음에 대한 표준적인 구분에 따르면, 인지적 상태는 세상을 재현하는 (represent) 상태인 반면, 비인지적 상태는 세상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향한 (욕망, 감정과 같은) 능동적인(conative) 상태다. 표준적인 비인지주의자들은 도덕적 용어를 사용한 문장의 의미에 대한 두번째 부정 주장을 옹호한다. 그들은 이들 문장이, 다른 평서문 문장이 전형적으로 그러하듯, 세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본다. 이는 여러 문헌에서, 도덕적 판단인 "기술적(descriptive)"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들 부정 주장을 다음과 같은 명칭으로 구분할 수 있다.
(i) 심리적 비인지주의 ; 도덕적 주장을 수용하는 심적 상태는 사실 인지적 상태가 아니다. (이때 인지적 상태란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을 재현하는 상태이다.)
(ii) 의미론적 비인지주의 ; 평서문의 도덕적 문장은 일반적인 평서문과 다르게, (일차적으로) 세상을 재현/기술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의미는 재현적이지 않다. (최소한 일차적으로는 그러하지 않는다.)
이들 주장이 부정이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i) "도덕적 믿음"이라 우리가 부르는 것은 어떠한 심적 상태인가? (ii) 도덕적 문장의 기능은 무엇이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들 질문은 긍정 형태의 답변을 요구한다.
(8-1-1) 비인지주의의 몇 종류들
여러 종류의 비인지주의는 이 질문에 대한 긍정 답변에 의해 나눠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특정 비인지주의적 입장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명명되었다. 모든 입장이 두 질문을 동등한 중요성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몇 입장은 의미론적 문제에 더 집중하고, 다른 입장은 심리학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각 입장들은 문장의 의미와 도덕적 주장을 수용할 때의 마음 상태에 대한 (거칠더라도) 특정한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이모티비즘(emotivist)은 도덕적 용어들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이라 제안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공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 본다. 이 생각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도덕적 용어를 특정한 종류의 발화 행위(speech act)을 수행하는 언어학적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청자로 하여금 호/오라는 태도의 표현을 이해하게 해주며, 청자도 이 태도를 공유할 것을 촉구하는 장치로 보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 답변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판단을 수용하는 심적 상태를 문장으로 표현되는 태도로 받아드릴 것이다. 초기 이모티비즘 입장은 오늘날 표현주의(expressivist) 입장의 선조다. 표현주의는 두 질문을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연관된 태도와 그 태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규정주의/지시주의(prescriptivists)은 언어에 대한 주장에서 시작하는데, 도덕적 문장을 지시라는 발화 행위에 적합한 명령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 입장의 가장 단순한 버전에 따르면. "살인은 나쁘다."의 의미는 "살인 하지마!"일 뿐이다. R.M 헤어가 주장한 더 복잡한 입장인 '보편 지시주의'(universal prescriptivism)에 따르면, 도덕적 주장은 다른 용어로 번역될 수 없는 일반화된 명령법이다. 이 명령법은 적절하게 유사한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과 그에 연관된 유사한 행동들)의 지시/금지에 대한 명령이다. 그러므로 (거칠게 말하자면) 'X가 옳다'는 말은, '너네는 모두 X(와 이와 유사한 행동들)을 유사한 상황에서 해야 한다.'를 의미힌다. '보편 지시주의'의 '보편'은 이 지시가 충분히 유사한 상황에 속한 누구나에게 지시된다는 점을 가리킨다. (즉, 그 상황의 행위자, 관중 그리고 판단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모티비즘에서 도덕적 언어에 대한 설명에서 도덕적 믿음/수용에 대한 설명으로 유비적으로 넘어간 것과 다르게, 이 (언어적) 생각에서 도덕적 믿음의 본질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가는 것은 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명령을 내리거나/수용하는데 누군가가 어떠한 심적 상태를 가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Hare는 명령을 수용하는 것이 (명령이 요구하는) 행동을 따를 것에 헌신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라 제안한다.
오늘날 표현주의 이론가들은 이모티비즘의 후예다. 그들은 (이모티비즘보다) 도덕적 용어의 의미를, (그 용어를 포함하는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특정한 심적 상태와 더 강하게 연결시킨다. 특히, 대부분의 체계적 표현주의자들은 도덕적/규범적 용어를 포함하는 각 문장이, 그 문장을 통해 표현되고자 하는 심적 상태에 대응한다 본다. 그리고 그들은 표현 관계의 본질에 대해서 더 나은 설명을 제시한다. 예컨대, 그들은 문장으로 표현되는 심적 상태에 있는 것이, 그 문장을 적극적 주장(assertive)에 사용하기 위한 적정 조건(appropriateness condition)이라 제안할 수 있다.
(8-2) 주관주의의 후계자로서의 비인지주의
비인지주의 입장을 구성하는 두 개의 부정 문장에 대한, 전형적인 비인지주의가 하는 긍정 답변은 (그들이 가진) 주관주의적 뿌리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비인지주의적 관점은 도덕 문장의 의미를 그것들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어떠한 태도와 연관시켜서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도덕적 주장을 믿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심리학적 문제는 마음의 특정한 상태의 본질을 묻는다. 빙니지주의자들은 이에 주관주의에 영향을 받은 답을 한다. (도덕적 판단과) 연관된 심적 상태는 비인지주의적 주관적 상태다. 이는 아마 6장에서 단순 주관주의자들이 도덕적 판단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말했을 때, 매우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문장의 의미는 이 주관주의적 태도를 (그 태도를 말하거나/보고하지 않은 채) 표현하는 언어적 장치에 적합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비인지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두번째 이유가 있다. 비인지주의자들은 비인지주의적 심적 상태가 도덕적 판단이 무엇이며, 도덕적 용어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에 중심이라 여긴다. 판단은 이러한 비인지주의적 심적 상태이고, 도덕적 용어의 의미는 그러한 상태를 표현할 때 적절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관점에 기존 주관주의와 달라지는 지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비인지주의는 태도를 자기에게 귀속시키는 것(self-ascribing)과 태도를 표현하는 것을 구분함으로서, 큰 차이를 가져왔다. 그들은 옛 주관주의가 아닌 정확한 이유는, 그들이 도덕적 판단이 (도덕적 판단으로 표현되는) 태도라는 주관적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적 상태를 단지 표현하는 것과 심적 상태를 말하는 것/자기 귀속하는 것의 차이를 보다 자세히 다루어야 한다. 운 좋게도, 우리에게 몇 가지 참조점이 있다. 비인지주의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의 모델로 다양한 다른 형태의 발화를 제시한다. 하나의 모델은 "오호!"/"우우!." 등의 표현적 단어로 이들은 긍정/부정의 의미를 표현한다. 이들 단어의 의미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이것들이 관례쩍으로 표현하는 태도를 지목할 수 밖에 없으며, 이들 단어가 이러한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관례적 장치라 말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중요한 점은 이들 용어들이 이들 태도를 자기 귀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화자가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나는 허용한다.", "나는 그걸 싫어한다." 등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호/우우" 예시의 모델은 이모티비즘이 표현과 자기 귀속을 구분할 때 마음 속에 생각하는 바와 일치한다.
표현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인지적 판단에도 (이와 동일한 구분인) 보고(report)/그에 대해 말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 차이가 비인지주의자들이 기술적 주관주의를 왜 잘못되었다 여기는지 설명하는데 요긴하다. 단순 평서문이 믿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내 차는 가게에 있다"를 진심으로 주장한다면, 발화자는 자신의 차가 가게이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셈이다. 진지하지 않게 주장하는 것일지라도, "내 차는 가게에 있다."는 표현이 같은 믿음을 표현하는 지점이 있다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청자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서도) 동일한 믿음을 화자에게 귀속시킬 어느 정도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이런 방식으로 믿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하지만 믿음을 표현한다고 할 때, 이는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조적으로, "나는 내 차가 가게에 있다고 믿어."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만약 너가 "내 차는 가게에 있다." 말한다면, 나는 너가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도, 너가 한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난 그저 너의 차가 가게에 없다는 것만 부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럴 수 있는 것은, 너가 말한 것이 너의 심적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차-가게-이 둘의 위치에 관한 몇 가지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영역일지라도, 우리는 표현주의자들이 원하는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심적 상태를 표현하지만, 그에 대해 말하지 않은 문장을.
이 모델을 도덕적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표현주의/비인지주의적 설명에 도입해보자. 우리는 도덕적 문장이 (이를 통해) 표현되는 비인지적 심적 상태를 보여주며, 이는 "X는 G다."라는 문장이 'X는 G다.'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과 동일한 형식이다. 진심으로 말했을 때는, 이들 문장은 직접적으로 이들 심적 상태를 표현할 것이다. 진심으로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이들 문장은 이들 심적 상태를 약화된 형태로 표현한다. (이들 문장에 대한 반어적이지 않은 사용은, 청자로 하여금 화자가 이러한 심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믿을 이유를 주기 때문이다.) 이는 "감사합니다."라는 발화가 (진심으로 말했을 경우)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과 동일하다.
나아가, 우리는 "X는 G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표현하는 심적 상태가 "X는 G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되는 심적 상태에 동의하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둘은 모순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너는 X는 G라 믿지 않는다."가 표현하는 심적 상태가 "X는 G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표현하는 심적 상태어ㅏ 다르길 바란다. 대신 우리는 이 문장이 "나는 X는 G라 믿는다"와 대조되길 원하며, 이 문장은 X가 G라는 걸 "믿거나"/수용하는 심적 상태에 대해 말하지만
(8-3) 도덕적 불일치(disagree)
내가 "내 집은 회색이야."라고 말할 때, 너가 "그건 회색이 아니야."라고 말하면, 우리는 불일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가 "거짓말은 언제나 나쁜거야."라고 할 때, 내가 "항상 나쁜건 아니지."라고 답하면, 이것 역시 불일치이다. 비-상대주의 기술주의자(desriptivists)은 두 경우 모두 왜 참인지에 대한 쉬운 설명을 가지고 있다. 각 사례에서 내가 주장하는(assert) 무언가는 특정한 속성을 가지고, 너의 주장에는 그 속성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것에 동일한 속성이 있으면서도/없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주장이 모두 참일 수는 없다. 우리 주장이 가진 내용이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으므로, 너가 부정한 것을 내가 주장한다면 우리는 불일치하는 것이다. 단순 주관주의 상대주의자들은 이 설명을 다듬지 않고는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다른 두 사람 입에서 나온 동일한 도덕적 술부가 두 가지 다른 속성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일치처럼 보이는 사례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한 발화의 내용은 대립되지 않는 셈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행동이 "옳다" 말하고, 다른 사람이 "틀리다" 말했다 해보자. 만약 "옳다"는 용어가 각자의 입에서 다른 속성을 가리킨다면, 어느 주장도 다른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비인지주의자들은 (최소한 기술적 상대주의 주관주의와 비교해서) 이 문제가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할만한 요소라 여긴다. 기술적 주관주의를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만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기술적 주관주의는 평서문의 도덕적 문장을 (실제 혹은 가능한) 태도에 대한 주장(claims)으로 취급하지만, 태도에 대한 문장은 (그 문장으로 드러나는) 태도에서 자신들의 논리적 속성을 이어받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이전 장에서 이미 언급했다. 만약 내가 내 두 주장이 논리적으로 대립된다 말해도, 이 주장 자체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8-4) 기본적인 생각의 체계적인 확장 (프레게 - 게치 문제)
(8-4-1) 규정주의와 명령 논리(Imperative logic)
(8-4-2) 표현주의
프레게-게치 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은 보다 엄격한 발전된 표현주의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이는 (8-2)의 것보다 야심차다. 엄격한 표현주의는 모든 도덕적 문장의 의미론을 특히 그 문장의 표현을 적합하게 만드는 특정한 심적 상태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모든 (혼합 이론이 아닌) 비인지주의자들은 도덕적 주장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야만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모두가 해야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강점을 가진다. 또한 (문장처럼) 믿음 역시 다른 믿음과 논리적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문장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그러하듯) 문장들의 의미가 말이 되게 설명할 새로운 전략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우선 특정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심적 상태에 대한 해석을 발전시킨다. 이는 심적 상태가 다른 문장과의 논리적 관계를 어떻게 대신할 수 있는 설명한다. 예컨대, 그 해석은 "거짓말은 잘못되었다"라는 믿음과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라는 믿음이 결합될 경우,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나쁘다."라는 믿음을 수반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8-4-3) 혼합 이론
최근, 도덕적 문장과 문장이 표현하는 태도에 관한 혼합 이론이 어느정도 명성을 얻었다. 혼합 이론으로 가는 요인 중 하나는 프레게-게치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혼합 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도덕적 문장이 원래의 재현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의미론적이든 화용론적이든) 추가적인 비인지적 내용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의미론의 재현적인 부분은 혼합 이론가로 하여금,
(8-5) 비인지주의와 열린 질문 논증
비인지주의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열린 질문 논증'에 그럴듯한 명료한 진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무어가 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상기해보자.
이제 비인지주의가 맞다 가정해보자.
(8-6) 자연주의
(8-7) 비인지주의을 옹호하는 이유인 도덕/동기 판단 내재주의
비인지주의는 발화자/평가자 주관주의로 이어지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내재주의를 설명하는 입장에 서 있다. 표준적인 표현주의 비인지주의 관점에 따르면, 어떤 행동이 옳다 믿는 마음 상태는, 그저 그 행동에 대한 어떤 긍정-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이 틀리다 믿는 마음 상태는, 그저 그 행동에 대한 어떤 부정-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 따르면) 어떤 행동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그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된다는 점은 당연하다. 또 어떤 행동이 틀리다 믿는 사람이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동기부여된다는 점도 놀랍지 않다. 판단 내재주의(Judgement internalism)은 이런 단순한 주장에서 벗어난다. 만약
(8-8) 행위자 내재주의, 유사 실재론 그리고 도덕적으로 부끄러운(reprehensible) 판단
(8-8-1) 유사 실재론, 진리 축소주의 그리고 승인(endorsement)
(8-9) 주관주의에 제기된 양상적 반론에 답하기
6장은 단순 주관주의에 대한 여러 반론을 살펴보았는데, 이 반론들은 주관주의의 후계자 역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우리는 방금 어떻게 비인지주의자들이 (단순 주관주의자들은 해결하기 힘들었던)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판단을 허용하는 문제를 피하는지 보았다. 이번 절에서는 비인지주의가 어떻게 단순 주관주의에 대한 양상적 반론에 답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8-10) 도덕 인식론
(8-10-1) 설명에 대한 부담을 회피하기
3장에서 모든 메타윤리학적 이론은 어느정도는 도덕 인식론과 합치되어여 한다는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또한 도덕 이론이 증거에 비해 과소결정(under-determination ; 주어진 증거가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기가 부족한 경우/보통 과학철학에서 쓰인다)된 것처럼 보이는 점은, 주제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되게 한다. 초창기 비인지주의 관점은 도덕이 우리에게 말하는 구분되는 도덕적 주제들/내용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자신들의 장점으로 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 이론은 도덕적 대화가 재현할 구분되는 대상(subject matter), 도덕적 주장을 참으로 만드는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것이 보다 최근의 유사 실재론을 따르는 여러 비인지주의와 익숙한 사람들이 놀라는 지점이다. 하지만 (비인지주의의) 초기 지지자들은 자신들 관점이 가진 장점이, 기실 이러한 도덕 인식론에 대한 요구를 제거한다는 점이라 보았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카르납은 말했다.
가치에 대한 문장은, 사실 잘못된 문법적 형태로 주어진 명령일뿐,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영향은 우리의 바람(wishs)에 따른 것이거나 아닌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증명되거나 증명되지 않을 것 자체가 없다. (카르납)
에이어는 살짝 더 수용적이었을 뿐이다.
(8-10-2) 유사 실재론에 제안하는 합의
오늘날 유사실재론 비인지주의자들은, 이 현상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드린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의 성공적이라면, 초창기 비인지주의자들이 묻어두려 했던 현상이 유사 실재론을 진지하게 받아드릴 근거라 주장할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깊게 탐사할 여력은 없지만,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8-10-3) 작지만 중요한 우회로 ; 도덕을 넘어 확장되는 비인지주의
나는 도덕적 판단에 대한 비인지주의가 다른 규범적 판단들(예컨대, 정당화[justification]과 보증[warrent]에 대한 판단)로 확장되어 가는 경향성을 강조해야 한다 여긴다. 이들 판단들은
(8-10-4) 다시 원래 주제로 ; 도덕 인식론적 현상학
(8-11) 간략한 정리
우리가 보았듯, 비인지주의는 최소 사실주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주장을 부정하는데에서 시작한다. (i) 도덕적 사고는 (세상을 재현하는 믿음과 같은) 인지적 상태처럼 세상을 재현한다. (ii) 평서문의 도덕적 문장은 (틀릴 수도 있지만) 세상에 있는 사실이라 알려진(purported) 것을 재현한다. 일반적인 문장이 표현한다고 여겨지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사실을 말이다. 이는 즉각적으로 도덕적 사고가 무엇인지, 도덕적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