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김경만,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 제5장

서강대 사회학과 김경만 교수님의 저서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은 하버마스와 로티 사이의 논쟁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제5장에는 그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한 김경만 교수님 자신의 흥미로운 평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김경만 교수님은 마이클 폴라니의 '암묵지' 개념에 근거해서 하버마스를 비판하죠. 하버마스는 과학자 집단이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정당한 근거에 따라 판별해낸다고 가정하고, 또 그런 가정에 따라 과학자 집단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자신의 의사소통행위 이론을 위한 일종의 '모델'로 제시하지만, 정작 실제 과학자 집단에서 일어나는 토론은 결코 민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벨리코프스키의 사례를 통해 과학이 얼마나 '암묵지'에 크게 의존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벨리코프스키는 무려 '성서 해석'에 근거하여 새로운 천문학 이론을 만들어 내었고, 실제로 그 이론으로 천문 현상에 대한 혁신적인 예측에도 성공하지만, 과학자들은 벨리코프스키의 이론을 아예 '과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벨리코프스키가 수행한 예측의 성공 여부와 상관 없이, '성서 해석'에서 천문학 이론을 도출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과학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죠. (근본주의 기독교의 창조과학이 과연 '과학'인지에 대한 문제와도 연관된 주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명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는 과학 공동체가 혁신적인 과학적 주장을 정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서 확인하려는 시도에는 매우 인색하다는—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주장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폴라니는 자신이 만들어낸 물리학 이론을 포함해서 수많은 새로운 이론들이 '개연성이 없다'는 이유로 과학 사회로부터 충분한 검증을 받기도 전에 기각되었다고 주장한다. 폴라니가 논한 많은 사례 가운데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사례가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성서에 관한 새로운 해석에 입각해 천문학 이론을 만들어냈고, 이를 토대로 금성의 움직임에 대한 혁신적인 예측을 했다. 1950년에 과학자들은 다양한 천문 현상에 대한 벨리코프스키의 비정통적인 해석을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읽지도 않은 채 비난했고, 벨리코프스키의 책이 출판되지 못하도록 알력도 행사했다. 몇 년 후 우주 탐사를 통해 벨리코프스키의 예측이 부분적으로 옳았다는 사실이 판명됐을 때조차 과학자들은 이를 개연성 없는 주장이라고 무시했고 탄압했으며, 이 주장을 경험적 검증에 부치길 거부했다. 더 놀라운 것은 과학자들이 벨리코프스키의 연구를 그렇게 취급해 버린 것에 대한 어떤 정당화도 과학 공동체 외부의 집단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끼지 않았다. (김경만, 2015: 206-207)

중요한 점은, 과학자들이 이렇듯 벨리코프스키의 이론 자체를 과학이 아닌 것으로 기각하였다고 해서, 과학자 집단의 그 결정이 반드시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민주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버마스라면 과학자 집단의 행위가 이데올로기에 지배된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결정이라며 비난하였겠지만, 폴라니와 김경만 교수님은 과학자 집단에게 제기되는 그런 비난이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과학'이 아닌지는 과학자 집단이 수행하는 게임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폴라니와 김경만 교수님의 입장입니다.

즉, 애초에 자신들의 암묵적 규칙에 따라 게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향하여, "당신네들이 하는 게임은 아무 근거가 없다!"라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게임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는 과학자들의 문화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고, 그 게임에 참여하길 원하는 이상 그 문화에 따라야 한다는 요구는 당연하다는 것이죠. 가령, 체스 게임에 참여하길 원하면서도 "폰을 한 칸만 움직여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나는 세 칸 움직일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게임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태도일 뿐입니다. 폰을 한 칸 움직여야 한다는 체스의 규칙에 대해서는 체스 게임 바깥의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체스 게임에 참여하길 원하는 이상 그 규칙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규칙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체스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뿐입니다.

폴라니가 제시한 '새롭게 정의된' 합리성 기준에 따르면 지식에 관한 모든 주장을 이상적 담화 상황의 '무조건적 타당성'에 회부하라는 하버마스의 주장은 과학하길 그만두라는 권고나 다름 없다. 하버마스가 합의와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최선책으로 강조하는, 합리적이라 가정되는 담화의 규칙들은 과학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규칙일 뿐이다. 하버마스의 예상과 반대로 암묵적 지식의 작동은 과학 지식 성장의 장애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과학자들로 하여금 토론할 가치가 있는 지식 주장과 그렇지 않은 주장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과학 진보에 실제로 기여한다. 게다가 암묵적 지식에 토대를 두고 있는 과학의 '권위'는 부정적 방식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즉 암묵적 지식은 과학자들을—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리자면—'가능성의 공간'으로 인도해줌으로써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재의 다른 측면들도 탐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김경만, 2015: 212-213 인용자 강조)

저는 이러한 입장이 꽤나 설득력 있고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강올빼미>에 최근에 올라온 논쟁들을 보면서도 생각한 것이지만, 모든 논쟁들은 마지막에 이르면 결국 '문화'의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과학'인가, '과학'이 아닌가?" 혹은 "이것이 '철학'인가, '철학'이 아닌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는, 우리 자신이 어떤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것이죠. 그 문제는 논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기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를 보여줌으로써 갈라져야 하는 사안인 것 같습니다. 물론, 폴라니나 김경만 교수님의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는 있겠지만, 저는 (a) 과학자 집단을 비롯한 연구자 집단의 의사소통이 반드시 민주적이지만은 않다는 점, 그리고 (b) 그 비민주성이 때로는 비난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닐 뿐더러, (c) 종종 생산적인 연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는 점에 대해 현재로서는 상당 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

17개의 좋아요

현대 과학 사회가 미신이나 초자연 현상을 충분히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도 전에 곧바로 기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때 폴라니의 주장이 매우 유용하겠군요.

3개의 좋아요

논의가 이정도까지 왔다면, 비판과 비난이 구분되지도 않을테고, 누구를 비난하는게 정당하니 그렇지않니 왈가왈부하는 것도 무의미해 보이네요. 그럼에도 자신이 누구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YOUN 님이 암시하시는 암묵적 규범이 어떤 연구자 집단 공동체의 것인지는 좀 궁금하네요.

이라고 하실 때, 암묵적 규범이 아니라 오히려 명시적 기준—특히 논리학이라는 구체적 도구—을 강조하신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TheNewHegel의 "논증하라"나 "표준화" 요구를 단순히 커뮤니티의 암묵적 문화로 볼 게 아니라, 철학 전공자로서 논리적 엄밀함을 갖춘 명시적 규범으로 해석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YOUN 님이 폴라니의 암묵지를 끌어와 논쟁을 "문화의 문제"로 환원하셨지만, 정작 본인의 발언은 암묵적 합의보다는 명시적 기준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게다가 표준이란 일정한 기준을 포함하는데, 그 기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밝힐 수 없는 표준은 더 이상 기준으로서 쓸모를 다했다고 봅니다. @TheNewHegel 님의 "논증"과 "표준화"가 모호한 표현으로 남아 있다면, 그건 상대방과 스무고개를 하자는 거나 다름없어요. 모호한 규범으로 스무고개를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이 종종 생산적인 연구를 위해 필요할 수 있을까요? @YOUN 님이 암묵적 규범의 생산성을 옹호하신다면, 그 규범이 철학 토론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적어도 어떤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주셔야 설득력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논증은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증을 할줄 모르는 사람이 '암묵적 이해'를 갖춘 상황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3개의 좋아요

그리고 @YOUN 님의 글을 읽다 보니 한 가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점이 눈에 띄네요. 님이 폴라니의 암묵지를 끌어와 @TheNewHegel 님의 "논증"과 "표준화" 요구를 커뮤니티의 암묵적 규범으로 변호하신 것 같은데, 이건 폴라니의 의도와 좀 어긋나는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해석은 자유지만요.)

폴라니는 『암묵적 영역』에서 연구자들의 권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죠:

이어서 폴라니는 과학적 발견의 개인적 성격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폴라니가 말하는 암묵적 지식은 연구자 개인의 직관, 경험, 노하우 같은 걸 뜻해요. 과학자가 문제를 탐구하며 느끼는 "고독한 암시"나 "개인적 몰입"이 암묵적 지식의 핵심이지, 공동체의 암묵적 규범을 정당화하거나 통제 도구로 삼으려는 개념이 아닙니다. 폴라니는 탐구 공동체의 "상호 견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건 개인적 탐구가 공동체 내에서 조율되는 과정일 뿐, 모호한 규범을 강요하는 권위 구조를 옹호하는 게 아니죠.

그런데 @YOUN 님은 폴라니의 암묵지를 @TheNewHegel 님의 모호한 "논증"과 "표준화" 요구를 뒷받침하는 공동체 규범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시네요. 개인적으로 이건 폴라니의 의도를 넘어선 오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폴라니가 말한 암묵적 지식은 "명시적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개인적 통찰을 뜻하는데, @TheNewHegel 님이 "논증하라"를 구체화하지 않은 걸 개인적 직관으로 볼 순 없잖아요? 오히려 공개 토론에서 모호한 요구를 던지고 상대방이 그걸 맞추길 기대하는 건, 폴라니의 탐구 정신과도 어긋나는 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YOUN님이 말씀하셨듯 이제 서로 갈 길 가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Forte 님은 규칙에 대한 명시화를 요구하셨고 운영진은 그에 대한 계속되는 답변을 남겼는데 그 답변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느끼신다면,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은 아무 문제없이 규칙을 따르고 있다면, 둘 중 하나겠죠. 규칙이 애초에 불합리한 것이었던가, 아니면 질문자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거나. 전자라면 여타 커뮤니티가 그러하듯 그 커뮤니티는 존폐의 위기에 처할 것이고 (forte 님이 이것을 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후자라면 질문을 멈추고 무엇을 놓쳤나 생각해볼 때입니다.

18개의 좋아요

저라면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서강올빼미 이용자가 참여하고 있는 게임은 몇명 이용자가 참여하는 게임과 조금 또는 상당히 다르다."

어느 게임 규칙이 합리적인지 따지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느 게임에 다수가 참여하고 있는지 따지는 일이 쉽죠.

보통 과학자가 참여하는 게임이 사이비 과학자가 참여하는 게임보다 왜 '우월한지' 설명하기도 생각보다 어려운 듯해요. 이 문제는 제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과학을 신앙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하게 되니까요.

1개의 좋아요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별로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가려 했는데, @anon49593252 님께서 계속해서 저를 언급하며 문제 삼으시니 불가피하게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처음에 (강요가 아니라) 권고드린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표준적인 자료를 참조하기를 권한다.
(2) 논증하기를 권한다.

여기서 "표준화"나 "논증"이 무엇인지 되풀이해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에, 특히 논증을 왜 해야 하는지 정당화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셨기 때문에 저는 각각의 권유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을 드렸습니다.

(1') 학술 자료나 교양서를 참조하면서 논의하기를 권한다.
(2')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근거에 의해 지지되는 주장은 그렇지 않은 주장보다 더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anon49593252 님께서는 (1')과 (2')도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공허"하다고 비난하시며, 이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십니다. 솔직히 저는 무엇을 더 설명하기를 원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1')과 (2')를 이루는 "학술 자료", "교양서", "주장", "근거" 등의 낱말들은 어떤 대단한 설명이 필요한 전문 용어가 아니라 단순 일상어입니다.

혹시 @anon49593252 님께서는 "학술 자료나 교양서", "주장" "근거"가 무엇인지 일일이 정의하고, 또 왜 근거를 갖는 주장들이 그렇지 않은 주장보다 더 설득력을 지니는지를 정당화해달라고 요구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그런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¹ 이런 낱말들이나 믿음은 한국어 언어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낱말들과 믿음에 대해 정의 및 정당화를 요구하는 일은, 본문에서 예시로 거론된 체스에 비유하자면 "'폰'이 무엇이고 '칸'이 무엇인지 정의하라. 왜 폰을 한 칸만 움직여야 하는지 정당화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덧붙여, 서강올빼미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규칙이 있습니다.

개인이 제시한 주장이 아닌 특정 개인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비난하는 일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입니다. 토론이 과열되면서 표현들이 과격해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현재 @anon49593252 님께서 하고 계신 것처럼 한 명을 집중적으로 표적 삼아 "터무니없다", "권위적으로 강요한다", "게으르다", "우스꽝스럽다",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과격한 수사를 동원해 비난하는 일은 효율적인 의견 교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¹ "학술 자료나 교양서"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모든 학술지 및 책들의 목록을 일일이 열거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분야에 대한 좋은 논문이나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하신다면 제가 아는 한에서 기꺼이 추천드릴 수 있습니다.

12개의 좋아요

저는 @TheNewHegel 님의 윗글보다는 다음 글이 부드러운 권고로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님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참고한 학술 자료나 교양서가 있다면 그 자료를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러시면 다른 분들도 해당 주장에 대해 더 원활하게 논의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라는 권고는 굳이 하실 필요가 없는 듯합니다. 저도 해당 본문이 주장과 근거를 뚜렷이 보여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글을 찬찬히 읽어 보면 주장과 근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TheNewHegel 님이 권고하신 둘째 사항은 "학술 자료나 교양서를 근거로 삼아 주장을 펼쳐 달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서강올빼미서 다룰 법한 모든 주장이 꼭 그런 문헌을 근거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고요.

동의합니다.

1개의 좋아요

인레/누해 님의 트윗:

그래서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산모를 진료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동료 의사 커뮤니티에 전파했습니다. 시체를 진료하는 동안 ‘시체 입자’가 손을 통해 산모에게 전파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요.

그다음 트윗:

문제는 이 ‘시체 입자’ 이론이 비과학적이었다는 겁니다. 당시만 해도 세균의 존재가 입증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언동에 의사 커뮤니티는 그가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판단, 1865년 그는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감됩니다.

2개의 좋아요

처음에 제가 @TheNewHegel 님께 쓴 제언들로 돌아가 봅시다. 님은 두가지 권고를 제시했다고 주장합니다 :

(1) 표준적인 자료를 참조하기를 권한다.
(2) 논증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제가 물은건 두종류의 정보입니다.

(1) 각각의 단어들이 가진 내용
(2) 저러한 주장들의 정당성 자체

그리고 님은 여기에서도 (1)을 Ad Nauseam 하고, (2)에 대해서는 답을 거부하고 계시죠.

이 글을 쓰기 전, 저는 커뮤니티의 목적과 이용규칙에 대해 읽었고, 그럼에도 님은 커뮤니티의 목적을 들어 @chanchu1352 님께 규범적 진술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는 의문이 들죠. @TheNewHegel 님은 이 사이트의 운영진인데, 작성자들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목적과 이용규칙에 명시되어있지 않은 뭔가 암묵적 규범을 사유로 이용자들의 글을 비판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것들의 정당성, 글을 쓸때의 필요, 그것들 각각의 필요를 일반화했을때 도출되는 '표준화'라는 개념과 그것을 전제로한 논증방식에 대한 결함을 논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을 할때, 저의 원칙은 이랬습니다 :

(1) 논증은 구체화되며, 내용을 가진 명제 형식을 갖춰야하고, 그것들의 형식적 타당성과 의미적 건전성을 판정가능하다.
(2) 일관성 원칙 : 발화자는 내용이나 논리에 있어 비일관적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TheNewHegel 님이 "논증하라"라는 주장에 대한 일관성 원칙을 요구했습니다. 논증하라는 주장 역시 논증의 일부이니, 그것의 근거, 즉 정당한 이유을 보이라구요. 저는 여기서 이러한 원칙들이 커뮤니티의 목적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상식적이고, 학술적인 엄밀함의 차원에서 준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비일관적인 사람은 신뢰할 수 없고, 학술적인 차원에서 비일관성은 최훈 교수에 따르면 '악덕 중에 악덕'이니까요. 다만 자유 철학 포럼형 커뮤니티의 암묵적 규범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니 저는 추론을 하게 되죠.

(1) @TheNewHegel@YOUN 님이 커뮤니티를 앞세워 주장하는 논제들은 커뮤니티의 규칙의 일부이다.

그러면 저는 자비의 원칙을 전제해서 이 운영진분들의 발언들을 통해 암묵적 규범들을 유추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그리고 몇개는 그것들의 필수성을 논리적 근거를 들어 의문을 표했구요. 그리고 그렇게 님들의 일관성을 검토했을때, @YOUN 님은 자유 철학 포럼형 커뮤니티의 암묵적 규범에는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논리적 타당성과 일관성을 검토하는 작업을 유료로 가르치고 계시고, @TheNewHegel 님은 앞서 반복적으로 지적했지만 본인이 하신 어떤 주장에도 일관성을 보이고 계시지 않네요. 아니면 검토할 상황 자체를 거부하시거나, (@YOUN 님은 답변을 아직 안하셨으니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이제 결론을 쓰겠습니다.

1. 실용적 맥락과 표준화? 표준은 하나의 기준이고, 절차나 정의에서 구체적이고 규명되어야 합니다. 반면 실용적 맥락은 사람들의 일상적 필요 같은 상식적 차원에 머물러요. 둘을 섞는 건 상식적 규범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꼴이고, 철학적으로 일반화된 테제 위에 개인적 선호를 취사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실용성과 규범적 표준화를 구분하는 이유는, @chabulhwi 님도 몇번 지적하셨듯이 실용적 기준은 작성 목적에 따라 선택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TheNewHegel 님의 주장은 굉장히 규범적이었구요.

2. 개념의 모호성과 학문의 엄밀함: 학문적 엄밀함을 유지하려면 저처럼 개념 정의를 명확히 하고 논의의 일관성을 지켜야 합니다. 적어도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적인 토론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곳에서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러니 @TheNewHegel 님이 "실용적 맥락에서 충분하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남긴 건 그 의도와 어긋나죠.

3. 공공성과 규범의 문제: 다시 커뮤니티 목적을 살펴보죠.

직설적으로 제가 보기에 님들은 본인들 성향에 맞지 않는 글들을 폐쇄적인 토론 규범으로 단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교회는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하면서 "모두"의 정의를 교회 운영자가 정한다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죠. 누구를 위한 덫을 만드시나요? 차라리 건의를 하죠. 차라리 "일부 운영진에 의해 이유 없이 글이 삭제되거나 비판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독단적 규범을 밀고 가시든가, 로그인 제한과 회원만 글 열람 가능 등 제한을 두고 단톡방 같은 폐쇄적 공간에서 운영하시면 됩니다. @YOUN 님이 즐겨 쓰는 전남철학회 비유처럼, 폐쇄적 공동체면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아무도 밖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원칙을 이러한 공동체에 요구하지 않을겁니다.

근데 철학을 학부에서 배우거나, 고등교육기관에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글쓰기를 배운 사람들도 이해 못 하는 님들 공동체의 규범을, 개방된 모든 사용자에게 무비판적으로 요구하려면 그냥 폐쇄적으로 운영하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모두를 위한 자유로운 포럼"을 표방하고, 개방적이고 누구나 접근하고 이해하며 상호 견제 가능한 규범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요.

님들이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철학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는 철학에 관심을 갖고 사유를 다듬으려는 초심자들에게 님들의 독단적 규범을 무비판적으로 요구하는 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 근거 없는 비판에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감수성과 수용력을 님들이 다른 의견 가진 분들에게도 좀 가지면 좋지 않을까요? "논증하라"는 규범적 주장에도 논증이 필요하다는 게, 거짓말쟁이 역설만큼 어려운 문제였는지 몰랐습니다. 여하튼 헤겔주의자들이 많으니, 서로 열심히 변증해서 절대정신이라도 튀어나오는지 알아보죠. (@TheNewHegel 님은 Ad Nauseam 반복만 했네요. 절대정신은 만트라에 있나보네요.)

그리고 부연하자면,

4. 담론의 투명성과 공공성: 누군가 앞에서 맥락 없는 용어나 도식을 대화 도구로 쓰는 건 무례한 행동입니다. 최소한 "당신은 우리 논의 맥락을 모르니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해야죠. 담론에 참여 못 하는 사람에게 호응만 유도할 순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 논의가 뭔지 모르니까요. 설명 없이 호응을 강요하면, 의도적으로 편협하고 맹목적인 군중을 만드는 겁니다. 모두가 이해 못 하는 말을 모두에게 하고 싶다면, 의미를 가르쳐주거나 님들끼리 하세요.

아, 그리고 필요하면 님들의 비일관성과 내로남불이 어느수준까지 가는지 제가 하나씩 인용해서 검토해드릴께요. 아마 포럼을 보는 입문자들에게 논증과 토론이 무엇인지 아주 유익한 교본이 될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곁가지 논의가 섞이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ad hominem적인 표현이 많이 등장하네요. 적어도 이 분위기에서는 어떠한 대화도 논증과 토론이 아니게 될 것이고, 유익한 교본도 아닐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가 이렇게까지 오고 갈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적어도 논쟁 외부자 그리고 사이트 운영진이 아닌 제가 보기에 @TheNewHegel 님이나 @yhk9297 님 등이 요구하신 바가 이하 말씀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YOUN 님이 말씀하시는 암묵적 규범이 인용문의 '당연한 것'인 것으로 보이구요.

제가 보기에도 @Herb 님 말씀처럼 서로 갈 길 가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이 사이트는 분명 언급하신 대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표방하지만, 철학하는 모두가 들어와서 얘기를 하도록 만드는 강제력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 공간에 참여하는 순간 따르도록 되어 있는 모종의 문화적 규범을 따르기 싫다면, 이 공간에 참여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어떤 규범을 폭력적으로 강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부부터 지금 박사과정까지 철학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특히 서강대 철학과 출신도 아닌 제가 보기엔, 이 사이트가 찬동하도록 요구하는 문화적 규범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해 못 할 규범은 아닌 듯합니다. (이 규범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공하라는 요구가 항상 정당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14개의 좋아요

저도 한 마디 보태겠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서강대학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년 강의 준비를 위해 철학 교양 수업의 조교로 들어가기도, 수업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학부생들과의 대화도 꽤 많이 나누는 편이고, 철학 교양 수업을 가르쳐야하기 때문에 교양 수업의 실라부스를 만든다거나, expectation에 대해서 많이 논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생이지만, 그래도 비전공자들한테 요구할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자체도 1년 전까지만 해도 학부생이었고요.

제가 보기에 이 사이트에서 요구되는 사항들이 그렇게 기준이 높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학부 다닐 때 교수님들이 제게 요구했던 기준, 그리고 제가 학부 비전공생들한테 요구할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대학교에서 비전공자들한테 요구하는 기준보다 조금 더 관대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래서 이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철학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석사생이니깐요. 그래도 철학에 대해서 아주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석사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철학사 수석으로 들어갔거든요 (제 입시 때 철학사 지원자는 80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철학에서 요구되는 사항들이 어떤 건지도 아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해요.

권위에 기댄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런 norm에 대해서 말할 때는 권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Argument를 할 때에는 권위가 거의 필요가 없지만, 이런 practical한 dispute 가 생긴다면, 그리고 양쪽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권위가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애초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논쟁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물론 여기 박사분들도 많고 일개 석사생이 주름을 잡기에는 그렇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댓글을 답니다.

5개의 좋아요

(1) 각각의 단어들이 가진 내용
(2) 저러한 주장들의 정당성 자체

이런 요구를 하시니 똑같은 요구를 하겠습니다.

  1. 논증은 구체화되며, 내용을 가진 명제 형식을 갖춰야하고, 그것들의 형식적 타당성과 의미적 건전성을 판정가능하다.
    (2) 일관성 원칙 : 발화자는 내용이나 논리에 있어 비일관적이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구체화'는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명제 형식'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형식적 타당성'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의미적 건정성'은 무슨 뜻입니까?
일관성 원칙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논증의 구체화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논증이 내용을 가친 명제 형식을 갖춰야한다 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님의 요구가 황당한지 보이십니까?
어느 정도 상식적,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 구체적 설명을 요구하는 님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는군요.

8개의 좋아요

근데 철학을 학부에서 배우거나, 고등교육기관에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글쓰기를 배운 사람들도 이해 못 하는 님들 공동체의 규범을, 개방된 모든 사용자에게 무비판적으로 요구하려면 그냥 폐쇄적으로 운영하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모두를 위한 자유로운 포럼"을 표방하고, 개방적이고 누구나 접근하고 이해하며 상호 견제 가능한 규범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요.

서강올뺴미 규범이 '철학을 학부에서 배우거나, 고등교육기관에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글쓰기를 배운 사람도 이해 못하는' 그런 규범이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압축적인 서술 지향, 저는 대학에서 배웠는데, 님은 못 배우셨습니까?

주장과 근거, 처음 해당 주제를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배경이 포함되어 있으면 논의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무슨 주장을 하면 근거를 들어라, 저는 대학에서 배웠습니다.
어떤 토의에 관한 소논문을 쓸 때 적절한 배경도 같이 써라, 배웠습니다.

어느 부분이 '철학을 학부에서 배우거나, 고등교육기관에서 비판적 사고와 이성적 글쓰기를 배운 사람도 이해 못하는' 그런 규범인가요?

3개의 좋아요

@sophisten 님, 말씀 잘 읽었습니다. 논의가 곁가지로 흐르고 분위기가 다소 과열된 점은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제 표현 중 "Ad Nauseam" 같은 부분이 인신공격으로 보였다면, 그건 의도하지 않았어요. @TheNewHegel 님의 반복적인 답변 태도를 지적하려 한 거라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님께서 @TheNewHegel 님이나 @YOUN 님의 요구가 제 "당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신 점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논의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외관상 문제가 쉽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토론에서 어느정도 제가 보였으니, 조금만 상세히 읽어봐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건, 그리고 어느정도는 반복해서 지적하는 부분은 어느정도 내용에 대한 토론과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의견들이 왜 실용적 형식과 규칙의 필요성까지 이어지는가입니다.

제가 볼때 논의가 토론 규칙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지게 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TheNewHegel 님께서 내용에 대해 다룰 수 있는 것들 조차도 과도하게 토론 규범과 연결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령 "제 이름은 Forte입니다."라고 할때, "이름을 잘못 썼다"라는 코멘트를 듣는다면, 제가 되묻는 것은 철자나 형식적인 것에 관한 것인게 상식적이겠지요. 그런데도 그런 질문에 "이름을 잘못 썼다"를 반복하기만 한다면, 저는 그 사람의 의도가 토론규범과는 관련이 없다고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Dvorak 님, 제 요구가 황당하다고 하시니 저도 똑같이 물어보신 걸 구체적으로 답해볼게요. 님이 제 원칙의 정의와 정당성을 하나하나 묻는 건 오히려 좋은 기회네요. 제가 뭘 말하려는지 명확히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님이 "상식적 이해로 충분하다"고 하신 건 좀 이해가 안 가네요. 제가 @TheNewHegel 님께 구체성을 요구한 이유가 바로 그 "상식"이 모호해서였는데요.

1. '구체화'는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 정의: "구체화"는 논증이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제시돼서 논의 참여자들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걸 뜻해요. 예를 들어, "신은 사랑이다"보다 "신은 성경에서 계시된 사랑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식으로 구체적 진술을 말하는 거죠.
  • 정당성: 모호한 주장은 오해를 낳고 논쟁을 비생산적으로 만들어요. 철학적 토론에서 명확성은 기본이에요. Toulmin 같은 학자도 논증의 명료함을 강조했죠. 초심자가 이해하려면 더더욱 필요하고요.

2. '명제 형식'은 무슨 뜻입니까?

  • 정의: "명제 형식"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진술, 즉 논리학에서 명제를 말해요.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지만, "행복해져라"는 명령문이라 명제가 아니에요. 논증의 전제와 결론은 다 명제여야 해요.
  • 정당성: 명제가 아니면 논리적으로 평가할 수 없어요. Hurley의 『논리학 입문』 같은 교재에도 나오는 기본 원칙이에요. 참/거짓 판단이 안 되면 타당성도 건전성도 체크 못 하죠.

3. '형식적 타당성'은 무슨 뜻입니까?

  • 정의: "형식적 타당성"은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반드시 참인 논증 구조를 말해요. 내용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논리 형태로만 판단해요. "모든 A는 B다, x는 A다, 그러니 x는 B다"처럼요.
  • 정당성: 논리적 오류를 막고 신뢰성을 보장해요. Priest 같은 논리학자는 타당성을 논증의 핵심으로 봤죠. 타당하지 않으면 결론이 엉뚱해질 수 있어요.

4. '의미적 건전성'은 무슨 뜻입니까? (님이 '건정성'이라 오타 냈길래 '건전성'으로 봤어요)

  • 정의: "의미적 건전성"은 논증이 형식적으로 타당하고, 전제가 실제로 참이어서 결론도 참인 경우를 말해요. "모든 인간은 숨 쉰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니 소크라테스는 숨 쉰다"가 건전하죠.
  • 정당성: 타당성만으론 부족해요. 전제가 거짓이면 결론도 틀릴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모든 고양이는 새다"는 타당해도 거짓 전제라 건전하지 않아요. Hurley와 Watson도 건전성을 논증의 신뢰성 기준으로 봤어요.

5. '일관성 원칙'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 정의: "일관성 원칙"은 발화자의 진술이나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죽는다"면서 "어떤 인간은 안 죽는다"는 안 되죠.
  • 정당성: 모순되면 합리적 믿음이 안 돼요. Burgess 같은 철학자는 일관성을 이성의 기본으로 봤고, 상식적으로도 비일관적인 사람은 신뢰하기 힘들죠. 토론에서 모순은 혼란만 키워요.

6. '논증의 구체화'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 정당성: 구체화가 없으면 논증이 모호해서 논의가 엉키죠. "신을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에 "왜?"를 물으면 구체적 근거(예: "신은 논리 밖에 있다")가 필요해요. 이건 철학 토론의 기본이고, 초심자가 따라오려면 더 필수예요.

7. '논증이 내용을 가진 명제 형식을 갖춰야 한다'의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 정당성: 내용이 있어야 논의 대상이 되고, 명제 형식이어야 논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요. "행복이 좋다"는 내용은 있지만, 명제화된 "행복은 삶의 목표다"가 논증에 더 적합하죠. Beall과 Restall의 『논리학 기초』에도 나오는 원칙이에요.

마무리
님이 제 요구를 "황당하다"고 보신 건 이해해요. 근데 제가 @TheNewHegel 님께 "논증"과 "표준화"의 뜻과 정당성을 물은 건, 그게 모호해서였어요. 저는 위 용어를 상식적이라 생각했지만, 님이 구체적으로 물으니 답했죠. 반대로 @TheNewHegel 님은 "이미 설명했다"로 끝냈어요. 제 요구가 황당한 게 아니라, 모호한 규범을 강요하는 태도가 문제였다고 봅니다. 님 질문 덕에 제 입장이 더 명확해졌네요. 고맙습니다.

@minerva 님, 석사 과정과 조교 경험에서 나온 말씀 잘 읽었습니다. 철학사 수석으로 좋은 프로그램에 입학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님이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겪은 기준을 바탕으로 이 사이트의 규범이 관대하다고 느끼신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님 같은 분께는 이곳의 요구가 자연스러울 수 있겠지요.

다만 제가 문제 삼는 건 좀 다릅니다. 님이 다니는 학교나 수업에서 어떤 규칙이 있든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강의는 비공개이고, 토론문은 외부로 나가지 않으며, 저널 접근도 특정인에게만 허용되잖아요? 그런 폐쇄적 집단의 규범과 권위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요구할 게 없습니다. 님 교수님이나 학부생들에게 뭘 기대하든, 그건 그 집단 안에서 통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포럼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표방합니다. 그렇다면 암묵적 규범을 강요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님은 “이해 못 할 규범이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초심자 입장에서는 @TheNewHegel 님이 “논증하라”, “표준화”를 던지면서 구체적 설명 없이 반복하는 것이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Ad Nauseam”이라 한 것은 그 태도를 지적한 것이지, 님의 철학 실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권위가 필요하다”는 말씀도 흥미롭네요. 폐쇄적 집단에서야 권위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개방된 포럼에서 초심자에게까지 암묵적 규범을 권위로 밀어붙이면, 그것은 공공성과 어긋난다고 봅니다. 님 학부 기준이 관대하더라도, 여기서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왜 문제가 되냐?“라고 하셨다면, 투명하지 않은 규범이 모두에게 강요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님 학교나 학계의 권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님들끼리 잘 통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곳이 폐쇄적 집단이 아니라면, 규범을 명확히 해서 누구나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연구자라면, 자신의 논의를 public하게 전시할때 조차도 자기집단의 규범을 준용하겠다고 하는건 다소 무책임해보입니다.

@anon49593252 님이

님의 댓글을 보면, “구체적인 연구나 학술적 논의를 근거로 삼아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연구’나 ‘학술적 논의’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먼저 밝혀야 합니다.

위와 같은 요구를 하셨을때

@TheNewHegel 님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anon49593252 님께서 인용하신 게시글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지만, “학술적 논의”는 “학계 내에서 인정되는 학술 자료”, 즉 선행 연구를 뜻합니다. 그런데 전문적인 독자들을 겨냥하여 집필된 연구 자료를 학계 밖에 있는 비전공자로 하여금 읽고 소화해서 근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지나친 요구일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에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연구 자료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집필된 해설서, 입문서, 혹은 넓게는 강의 등을 전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anon49593252 님은 이 답에도 불만족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어떤 연구 자료?”, “어느 정도까지 전거로 삼아야 하는가?”, “전거를 들지 않으면 논의가 불가능한가?” 같은 질문들이 나오죠.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가 표준화의 개념을 불명확하게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개념을 근거로 논의의 틀을 정하려 한다면, 당연히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저도 똑같이 물어볼 수 있겠네요.

  • 정의: "구체화"는 논증이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제시돼서 논의 참여자들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걸 뜻해요. 예를 들어, "신은 사랑이다"보다 "신은 성경에서 계시된 사랑의 실체로 존재한다"는 식으로 구체적 진술을 말하는 거죠.

"논증이 모호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논의 참여자들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논증을 명확하게 제시하는게 가능한가?"

정의 : "일관성 원칙"은 발화자의 진술이나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의 지능적 한계를 인정했을 때, 발화자의 진술이나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당성 : 구체화가 없으면 논증이 모호해서 논의가 엉키죠.

"구체화가 없으면 논증은 모호하고 논의가 엉킬 수 밖에 없는가? 아니라면 구체화가 왜 필요한가?"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