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대한 본질론

@chanchu1352 님의 단상과는 별개로 후술되어있는 비판들 보며 글 남깁니다.

1. 표준화라는 말 뒤에 숨지 마세요.

이 커뮤니티의 성립 목적인 철학 토론의 표준화를 검토할때, ‘표준화’라는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입니다. 표준화가 단순한 형식적 가이드라인을 의미하는 건지, 특정한 논증 방식과 개념적 틀을 강제하는 건지, 아니면 토론 문화 자체를 정리하려는 시도인지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님은 이 ‘표준화’를 근거로 삼아 논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일반적인 용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정립하고 싶은지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막연한 권고가 아니라, 님이 원하는 논증 방식이 어떤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논증해 주세요.

2. 권고의 형식을 빌려 규범을 강제하려면, 그 근거를 명확히 하세요.

님의 댓글을 보면, “구체적인 연구나 학술적 논의를 근거로 삼아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연구’나 ‘학술적 논의’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먼저 밝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적 논의에서 ‘학술적’이라는 말은 학계에서 출판된 논문이나 철학사적 전통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보다는 논증의 정합성과 타당성을 강조하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님은 단순히 “자기 생각에만 의존하지 말고 학술적 논의를 근거로 삼으라”는 일반적 규범을 제시할 뿐, 그것이 논의의 어떤 측면에서 필수적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상대방이 자신의 논의 방식을 정당화해야 하는 부담을 지우면서도, 정작 자신이 부과하려는 규범의 정당성은 검토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게 정말 생산적인 태도인가요?

3. ‘논증을 요구한다’는 태도가 면책권이 될 수 없습니다.

님의 비판 방식이 철학적 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님은 상대방이 다루는 개념들(예: 본질, 교부)을 더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의 입장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 전제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1. “본질 개념은 수없이 다양하게 정의되고 논의되어 왔다.” →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본질은 해명하기 어려운 기초적 개념이 아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킷 파인의 본질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이, 본질 개념이 기초적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나요? 오히려,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본질 개념이 철학적으로 기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2. “정확히 어떤 교부를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 님의 논점이 정당하려면, 논의의 문맥상 특정 교부를 지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달라지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먼저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님은 그저 “여러 교부가 있다”는 일반적 사실만을 들어, 특정 교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즉, 님이 요구하는 ‘논증’이 실제로 논의를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해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결론: 논증을 요구할 거면, 본인도 논증하세요.

개인적으로 철학적 논의에서 논증화와 명제형식을 구체화하고, 의미를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요구 자체가 논거 없이 행사되면 단순한 권위적 태도일 뿐입니다.

님이 진정으로 ‘철학적 토론의 표준화’를 원한다면, 그 표준이 무엇인지, 왜 그런 방식이 필요하며, 그것이 철학적 논의를 어떻게 개선하는지 먼저 논증하세요. 단순히 “논증하라”는 요구만 던지는 것은 철학적 태도가 아니라, 토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수사적 기법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논증을 요구할 거면 본인도 제대로 논증하세요. 아직 사유를 전개하는 과정이 미숙한 분들에게도 아무런 맥락없이 교정을 요구하는 글을 쓰시기 전에, 본인이 제시하려는 규범이 얼마나 강한 입증부담을 견뎌내야하는지 숙고해보시길 바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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