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안 읽었지만) 소개글의 요지는 영혼(soul)이라는 (근대철학에서는 물질과 구분되는 것이었던) 존재를 실험심리학의 부상 등으로 보다 "과학적으로 엄밀히 다루려는 시도"에서 브렌타노/마허 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브렌타노는 영혼을 지향성[intention]으로 파악했고 이는 후설의 현상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편 영혼 자체를 소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는 미국 초창기 심리철학 ; 행동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흥미롭게도 지향성은 60년대 이후 미국 분석철학에서 의식 연구가 본격화된 뒤,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토픽이 되었다.)
(4)
재미있는 점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탐구가 이루어지는 이 "영혼"에 대한 학설은 비단 독일어권에 한정되는 경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나 니체가 "의지"를 말했다는 점도 짧게 말하고 넘어가자.)
시대적으로 이 때는 강령술과 메스머주의, spiritualism, 생체 전기 같은 영혼에 대한 (유사) 과학적인 시도들이 넘치던 시대였다.
이에 대한 프랑스적인 반응으로는 멘 드 비랑에서 시작해서 베르그송으로 이어지는 "생" 철학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기묘한 유심론이라 할 수도 있다.)
또 화이트헤드의 "돌출적인" 과정 철학 역시 이 같은 흐름의 하나처럼 보인다.
(5)
사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의 토대가 되는 실험심리학적 연구 외에도, 당대 독일 학계에는 흥미로운 지적 흐름이 넘쳤다.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인문학의 영역을 확고하게 하면서도, 헤겔적 형이상학에 호소하지 않으려했던 딜타이의 해석학/카시러 같은 신칸트주의적 흐름.
맑스로 시작해서 베버 등과 연관된 사회과학의 흐름.
"영혼"에 대해서라면, 미국의 경우 William James도 언급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그는 영국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의 회장을 지내고, ASPR의 창설에 관여하죠. 그의 저서 중에 "Essays in Psychical Research"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가정이지만, 당시 영국 SPR이 수많은 영국과 대륙의 학자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그렇게 큰 영향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집단적인 영향력을 유럽 지성계에 행사한 것 같아요. 이후 베르그손도 SPR회장으로 취임하죠...
분석철학의 역사가 이제 좀 되다보니, 분석철학이 태동했던 시기에 대한 철학사적 조망이 굉장히 다채롭게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독단적" 대륙철학을 극복한 분석철학이라는 나이브한 내러티브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의 여러 분석철학사적 작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초기분석철학의 언어철학적 전통과 대륙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몇가지 흥미로운 책들을 소개해보자면,
Kant and the Foundations of Analytic Philosophy
이 책의 저자 Robert Hanna는 고전적 분석철학 전통에 빠삭한 소위 "분석적 칸트" 연구자인데요. 저자는 칸트의 철학(특히 분석-종합 구별)이 거부되기 시작한 프레게부터 콰인까지의 초기 분석철학사를 다루면서, 이들이 칸트의 철학적 논변을 제대로 평가하고 "반박 refute"하지 못한채, 그저 "거부 reject"했을 뿐이다라고 도발적인(?) 주장을 합니다. 칸트에 대한 연구서로서도 매우 탁월할 뿐만 아니라 프레게, 러셀, 카르납, 콰인 등이 가졌던 칸트에 대한 오해와 이러한 오해에 기초했기 때문에 이들의 분석철학적 입장이 빠져들었던 내재적 문제들 역시 추적합니다.
사실 요즘은 대륙철학/분석철학의 차이만큼이나, 분석철학 내부에서도 서로 매우 이질적인 조류들이 나오고 있다보니 과거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적 차이의 기원이 다시금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예컨대 역시 분석철학자인 Peter Unger가 <Empty Ideas: A Critique of Analytic Philosophy (2014)>라는 저서를 통해 분석철학적 조류들의 emptiness를 비판했을 때, 이에 대한 Timothy Williamson이 서평에서 보여준 날선 반응이 뭔가 과거 대륙/분석철학의 분기에 대한 모종의 데자뷰를 불러일으켜 저한테는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한 대목만 소개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구체적 현실에 대한 Unger의 촛점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한 가지 이유는, 논리학과 수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단순히 추상적 대상들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학과 수학은 자연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체적 현실 자체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유용한 것이다. 논리학과 수학은 "만약 구체적 현실이 이러이러한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면, 이것은 또한 다른 이 조건 역시 만족시킨다"라는 형태의, 필연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진리들을 제공해준다. 왜 분석철학이 [논리학 및 수학과] 같은 것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인가? 이 [필연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진리들은 Unger의 기준에 의하면 그저 "구체적으로 공허"할 뿐이다.
Unger’s focus on concrete reality doesn’t solve the problem. One reason is that logic and mathematics don’t only inform us about some realm of abstract objects. They are also useful because they can be applied to concrete reality itself, as in natural science. They give us necessary but far from obvious truths of the form ‘If concrete reality satisfies these conditions, then it satisfies this other condition’. Why assume that analytic philosophy isn’t doing the same? Yet such truths are “concretely empty” by Unger’s standard.
Mandala님이 종종 형이상학과 사변과학을 가르는 것을 봤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철학자 박홍규는 과학에 기초한 존재론만이 진짜 존재론이라고 주장하면서 플라톤과 베르그송만이 서양철학사에서 유이한 진짜 존재론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이정우,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 2015.)
여기서는 존재론이 과학적 성과에 대한 설명을 한다고 봐서 존재론을 메타과학이라고 정의합니다.
(2) 기본적으로 형이상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되는 학문인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의 철학이든 생물학의 철학이든, 경험-실험 가능한 데이터를 넘어서서는 결국 "귀추적" 추론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고, 이 영역이 형이상학/혹은 철학과 뭐 그리 차이가 있나...싶거든요.
(때로는 실험 도구 혹은 방법의 발전이 어떤 영역 X를 철학에서 과학으로 바꾸는거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