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곳은 정말 철학 정보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만큼 많은 주제의 자료들이 모인 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할 만한 철학자 중에 Edith Stein에 대한 자료는 없더군요. 어느 글에서 그녀의 이름이 한번 언급된 정도였어요.
여기서는 에디트 슈타인의 철학/신학적 견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하지 않고(지금 제가 모르는 부분도 꽤 있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입니다. 다음에 준비가 되면 할게요), 간단히 소개글을 적고 싶어요. (그래서 '잡념'카테고리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 사실, 현대 이전의 여성철학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긴 했어요. 고대의 히파티아, 중세의 엘로이즈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라든지 근대의 마리 보나파르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그녀의 딸 메리 셸리 등...그러다 현대로 넘어와 언젠가 만난 이름이 바로 에디트 슈타인이었어요.
(참고로 제가 무척 높게 평가하는 비슷한 시대의 또다른 인물로 시몬 베유가 있습니다. 그녀의 책에서 맑시즘에 대한 가장 완벽한 비판 논리라고 생각되는 구절을 읽었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책도 없고 시간이 좀 지나서 그 구절을 잊어버리긴 했지만요...)
(3) 에디트 슈타인은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무신론자로 자라다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후설의 조교로 일합니다. 그녀의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이 하이데거였죠. 에디트는 후설, 셸러, 하이데거, 마리탱 같은 당시 지성계의 거인들과 토론을 하고 지적 교류를 한 또다른 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후 에디트는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유대인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후의 삶은 무척이나 극적입니다. 에디트 슈타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르멜 수도회의 수녀가 되었고, 나치에 의해 끌려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합니다. 이후 에디트 슈타인은 바티칸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지요.
지적인 면으로든, 외부적인 경험으로든 참 격정적이고 구도자적인 삶의 여정을 밟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이데거 같은 이들이 말과 책으로 이룬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에디트 슈타인은 말과 책, 그리고 삶 자체로 이루어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 에디트 슈타인은 "Zum Problem der Einfühlung (On the Problem of Empathy)"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이외에도 후설의 제자인만큼 현상학에 관한 저술도 꽤 있고요, 아퀴나스의 저서를 번역하기도 하고, 신학적 저서도 집필하였습니다. 일생동안 상당히 많은 양의 원고를 남겼는데요, "Edith Stein Gesamtausgabe" 가 총 27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상당수가 현재 품절상태인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에는 한글로 된 에디트 슈타인의 전기 정도에 해당하는 책이 수녀님들에 의해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에디트 슈타인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그녀의 다른 학문적 저작도 많이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트 슈타인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 아마도 현대에 철학적 인간학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것이겠죠 - 그리고, 형이상학과 다른 영역의 학문과의 관련을 탐구하는 등, 후설과 다른 방향의 현상학을 구축하려 하였고, 동시대의 여권 신장을 위하여 노력한 선구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하기까지 사랑을 실천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지요.
참고로 성인으로 바티칸에서 시성되기 위해서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1987년 두살먹은 아이가 알약을 과복용했는데, 아이의 가족이 에디트 슈타인에게 기도한 후 아이가 회복된 사건이 기적으로 인정받았지요. 에디트 슈타인 자신은 아마도 성인으로 인정받길 원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