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아키라는 도대체 뭔가?

(1) 아사다 아키라는 도대체 뭔가? 26살에 『구조와 힘』1이라는 저서를 발표해서 1980년대 소위 ‘뉴아카데미즘’을 이끈 일본 현대 사상계의 스타 중 하나이긴 한데,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가령, 가라타니 고진은 확실히 뛰어난 인물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본업인 서브컬쳐 비평은 다소 식상하긴 해도,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보여준 철학적 면모로 보았을 때는 꽤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런데 아사다는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

(2) 사사키 아쓰시가 쓴 『현대 일본 사상』이라는 책으로 아사다를 접했을 때는 아사다가 도올이나 강신주처럼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성공한 인물인 줄 알았다. 사사키는 아사다가 현대철학을 일종의 ‘처세술’과 뒤섞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조와 힘』을 직접 읽으니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만도 힘들 것 같다. 이 책은 확실히 독특하다. ‘쉽게 읽는 ……’ 정도로 과소평가 될 수 있을 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주 새롭고 혁신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내가 벌써 40년 가까이 되는 시간 차이를 두고서 ‘한때 최신이었던’ 철학적 사조에 대해 논의하는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현란한 문체에 비해 주장하는 내용 자체는 다소 뻔하다.

(3) 그런데 어쩌면 내용보다도 그 ‘문체’가 아사다의 독특함인지도 모르겠다. 『구조와 힘』은 대학원에서 통용될 만한 학술 서적이라기에는 너무 현란한 방식으로 온갖 철학적 사조를 다 엮어버리고 있다. 글을 쓰는 스타일만 보면, 성실한 대학원생이 쓴 글이라기보다는, 거의 데리다나 들뢰즈 같은 프랑스 철학자가 자기 철학을 직접 쓴 글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엄청나게 대담하다. 하지만 『구조와 힘』은 왠지 모르게 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기도 하다. 자유자재로 대담하게 현대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데도, 결국 매 장마다 그 철학자들의 주장이 그림과 도식으로 정형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전체 결론은 레비스트로스식의 소위 ‘구조주의적’ 사유를 들뢰즈식의 ‘힘’에 대한 사유로 극복해야 한다는 뻔한 주장인데도, 그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철학자들을 묶어서 개념화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독창적이고, 그렇게 묶인 방식이 큰 틀에서는 다시 교과서적 요약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기도 해서, 과연 이 책을 뻔하다고 해야 할 지 독창적이라고 해야 할 지, 깔끔하다고 해야 할 지 난삽하다고 해야 할 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4) 이런 특이한 책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문화’나 ‘분위기’라는 게 참 부러울 뿐이다. 아사다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대학원생이 ‘감히(!)’ 수많은 철학자들을 자기 방식대로 차용하여 과감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그렇게 쓰인 글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그렇게 출판된 책이 폭넓은 독자층에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이런 문화나 분위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재능이나 역량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작품이나 천재적인 인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사실 그만큼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글들을 잘 읽어주는 학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에 이런 학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아, 한남유충이 한남충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한 ‘충격적일 만큼 참신한(?)’ 연구가 KCI에 등재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으려나?

  1. 국내에는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이정우 옮김, 새길, 1995)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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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발굴해서 끌올해 봅니다! 여러 감상이 교차합니다만, 본 댓글에서는 이 글과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생각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구조와 힘』은 고사하고 아사다의 글을 읽어보지 못해서 헛소리를 할까봐 두렵습니다만, 서강올빼미에서 소개해주신 내용만으로 헤아려보건대 아사다의 작업은 '각론보다는 총론을 우선시'하는 방향을 띠고 있다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 이해가 옳다면, 저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문화’나 ‘분위기’"가 반드시 긍정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부정적인 태도를 띠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고리타분하게도) "각론이 허술한 총론의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철학사'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소한 전통적으로는 주석에서 시작해서 주석에서 끝나야 마땅한 분야에서?" 라는 점 같습니다. 이를테면 말씀해주신 들뢰즈 같은 경우에도, 제가 이해하는게 맞다면 최소한 커리어 전반기에는 흄부터 시작해서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각론'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철학사적 작업을 차근차근 개진해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충실한 각론(혹은 그에 대한 훈련)이 없이도 이후의 "대담"한 총론적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물론 이건 일반론일 뿐이고, 어쩌면 『구조와 힘』은 '각론의 허술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숙한 작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각론보다는 현란한 총론이 먼저!'라는 규범이 학계에 정착되는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규범이 모든 방면에서 부적절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언급해주신 것처럼 대중들을 겨냥한다면 얘기가 달라질테고, 또 어찌보자면 크립켄슈타인도 '철학사로서의 각론이 허술한 총론(?)'으로 취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방면에서의 이점은 '철학사로서의 총론'에게 기대하는 바람직함과는 유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무식쟁이의 사변이자 음모론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만, 아사다의 성공을 "한낱 대학생원이 내놓은 도발적인 저작에 학계 전체가 주목을 한 사건"이라는 내러티브로 이해하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래 링크의 인용문에서 소개해주신, 아사다가 이미 18세일 때부터 학계 중진한테 주목을 받았다는 일화를 읽고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이 글을 읽고 "아사다 아키라는 '한낱 대학원생'이기도 했겠지만, 그 이상으로 일찍부터 학계 주요인물들에게 낭만주의적 천재관에 부합하는 인물로 비쳤던게 아닐까?"하는 음모론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사에 이런 경우는 왕왕 있죠.) 만약 이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구조와 힘』은 "한낱 대학원생"의 성공담이라기보다는 19세기 유럽에서부터 내려온 보다 전통적인 헤게모니의 산물로 이해하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글들을 잘 읽어주는 학계

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전에 나눴던 다른 댓글에서도 짧게 생각을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각론'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것이 '서로의 총론'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거명하기는 그렇지만,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조금씩이나마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저는 ('남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만큼은) 희망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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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사다의 책이 나오고 유행했을 당시가 일본의 소위 ‘버블 경제’ 시절이니까요. 경제적으로 일본이 강해진 만큼, 그에 걸맞는 문화적 성취를 내세우기 위해 일본 내부에서 아사다를 밀어주기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또 『현대일본사상』이라는 책에서는 아사다가 유명세를 얻은 이유 중 하나로 신문 인터뷰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저한테 지금 책이 없다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신문에서 케이소 쇼보 출판사의 명칭 표기에 오타를 내서, 사죄의 의미로 신간 『구조와 힘』의 저자였던 아사다에 대한 전면 인터뷰 기사를 냈는데, 그게 화제가 되어서 아사다가 젊은 일본 사상가로 부각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아사다가 당대에 얻은 명성에는 학술적인 성취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외적 요인들이 있다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도올이나 강신주 같은 분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것과도 비슷하겠죠.)

다만, 아사다에서 시작해서 하스미, 가라티니, 나카자와, 아즈마, 사사키 등에 이르는 80-00년대 흐름이 있는 걸 보면, 아사다의 의의가 아주 작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해요. 한 세대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꾸준히 읽히는 작품인 만큼, 적어도 일본 현대사상 연구에서는 아사다의 책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충분히 고전이라 불러도 좋은 글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여요.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이 지금 보기에는 조금 오래되었고 빈틈도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꽤나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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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비사가 있었군요 ...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하스미, 고진, 아즈마 등의 경우에는 철학 말고 비평계에서도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요. (나무위키에 그 항목들이 제각기 있을 정도니까요!) 한국 문화계에서 그에 상응하는 위치의 인물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철학자들의 비중이 적은 것 같다는 점 (혹은 제가 멋대로 느끼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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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밀히 말하면, 하스미 시게히코, 가라타니 고진, 아즈마 히로키는 모두 "철학과" 출신이 아닙니다. 시게히코는 불문과 출신이고, 프랑스에서 석박사는 롤랑 바르트로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진은 영문학과 경제학 학사에 대학원은 따로 안 나왔죠. 아즈마 히로키도 석박사 모두 "문화 연구"라는 꽤 모호한 분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이들의 활동 무대는 학술지와 일본 내 학계 혹은 국제 학계가 아니라, 출판사-문예지 중심의 비평계였습니다. 고진의 시작도 군조 신인 문학상 비평 부분에서 '나쓰메 소세키론'으로 시작했죠. (참고로 군조 신인 문학상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등단한 문학상입니다.)

(2) 어떤 의미에서, 한국에서 이들과 같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은 <문학과 사회><문학동네><창비> 등에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비평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님의 원 글에서도 나오듯, 하스미 시게히코 (1936-) 연배라면 박이문(1930-2017)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요근래 타계하신 이어령씨 (1934-2022), 김우창(1937-), 백낙청(1938-)도 이 연배죠.
이 다음 연배라면, 4.19 이후 <창비>와 <문학과 사회>(문학과 지성사)를 만든 그룹이겠죠. 이 연배는 가라타니 고진(1941)과 같은 연배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김현(1942-1990), 김치수(1940-2014) 같은 서울대-문학과 지성사 라인이라던가 염무웅(1941-) 같은 창비 라인도 있습니다. (특히 김현씨는 당시 프랑스 대륙 철학을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르네 지라르,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등등에 대한 책들을 내셨었죠.)

이제 아즈마 히로키(1971-) 세대라면, 국내에서는 신형철(1976-)이 있을 겁니다. 이 둘은 윗 세대가 적극적으로 수입하던 프랑스제 대륙 철학 이론들이, 본토에서 점점 인기가 사라지고 있던 시기에 등장했었죠. (물론 둘이 취한 방법은 꽤 다릅니다.)
(신형철씨의 평론집은 항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곤 합니다.)

(3) 사실 지금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핫한 신유물론을 적극적으로 수입-재해석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비평계(와 인문 연구 단체라는 여러 재야 단체들)이죠. 대표적으로 <문학동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아영 평론가 (1990-)이 있습니다.

(쓰다보니 정보글인데 말투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ㅎㅎ..죄송합니다.)

(4) 이왕 TMI를 난발하는 것이니 더 써보자면,
80년대 광주 5.18를 기점으로 한국 사상계는 크게 달라집니다. 5.18 이후 국가의 검열로 인해, 비평계-학계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어떠한 형태의 정치적인 글도 내놓지 못하게 되었죠. (저항의 정도도 꽤 달랐지만, 그건 뭐...)(아마 지식인 중에서 옥살이도 하시고, 단행본도 충실히 쓰신 분은 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었던 신영복(1941-2016) 정도 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대신 이제 지하에서 마르크스주의 서적들을 독학한 '운동권' 사람들이 나오고, 그나마 국가 검열에서 자유로웠던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포괄)쪽 인사들이 여러 사상서들을 내기 시작하죠.
(이때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굉장히 독창적이고, 뒤틀린(?) "한국" 사상들이 나옵니다. 정약용-실학 열풍과, 안중근, 풍류도-동학-무속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에 대한 관심까지, 다 이 시기의 산물처럼 저는 느껴집니다.
이때에 나온 마서들이라면, 유동식씨(1922-2022)의 <풍류신학으로의 여로>(1986)도 있습니다. [참고로 유동식 교수님은 연대 신학과 교수님으로, 60년대에는 신학 서적으로, 70년대에는 한국 종교에 관한 여러 책들을 쓰셨습니다. (물론 신학과인만큼, 비교종교학적으로 엄밀한가는......차치하죠.], <오적> 필화 사건으로 유명한 시인인 김지하씨(1941-2022)가 동학과 <환단고기>, 화엄불교 등등에 영향을 받아서 주장한 '생명 사상'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분으로는 '한실림' 운동도 하시고 이것저것 많이 하셨던 장일순(1928-1994)도 있습니다.])

아마 이 때를 기점으로,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지식인의 지위에서 (광의의) 철학과-문학가들이 탈락하는 계기인 것 같습니다. 이 이후로, 정치적 논쟁을 주도하는 것은 언제나 '정치논객'들이었죠. 진중권(1963-)씨도 있고, 고종석(1959-)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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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하스미를 위시한 흐름 및 전통은 애초부터 한국으로 치면 이어령, 김우창, 백낙청으로부터 이어지는 그 비평계 전통에 상응하는 것이었군요!

(박이문은 그 학문여정에서 드러나듯 독특하고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말씀해주신 '오피니언 리더의 교체' 역시 그 자체로 흥미로운, 어쩌면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한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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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웠습니당!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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