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발굴해서 끌올해 봅니다! 여러 감상이 교차합니다만, 본 댓글에서는 이 글과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생각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구조와 힘』은 고사하고 아사다의 글을 읽어보지 못해서 헛소리를 할까봐 두렵습니다만, 서강올빼미에서 소개해주신 내용만으로 헤아려보건대 아사다의 작업은 '각론보다는 총론을 우선시'하는 방향을 띠고 있다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 이해가 옳다면, 저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문화’나 ‘분위기’"가 반드시 긍정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부정적인 태도를 띠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고리타분하게도) "각론이 허술한 총론의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철학사'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소한 전통적으로는 주석에서 시작해서 주석에서 끝나야 마땅한 분야에서?" 라는 점 같습니다. 이를테면 말씀해주신 들뢰즈 같은 경우에도, 제가 이해하는게 맞다면 최소한 커리어 전반기에는 흄부터 시작해서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각론'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철학사적 작업을 차근차근 개진해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충실한 각론(혹은 그에 대한 훈련)이 없이도 이후의 "대담"한 총론적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물론 이건 일반론일 뿐이고, 어쩌면 『구조와 힘』은 '각론의 허술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숙한 작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각론보다는 현란한 총론이 먼저!'라는 규범이 학계에 정착되는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런 규범이 모든 방면에서 부적절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언급해주신 것처럼 대중들을 겨냥한다면 얘기가 달라질테고, 또 어찌보자면 크립켄슈타인도 '철학사로서의 각론이 허술한 총론(?)'으로 취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방면에서의 이점은 '철학사로서의 총론'에게 기대하는 바람직함과는 유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무식쟁이의 사변이자 음모론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듭니다만, 아사다의 성공을 "한낱 대학생원이 내놓은 도발적인 저작에 학계 전체가 주목을 한 사건"이라는 내러티브로 이해하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래 링크의 인용문에서 소개해주신, 아사다가 이미 18세일 때부터 학계 중진한테 주목을 받았다는 일화를 읽고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이 글을 읽고 "아사다 아키라는 '한낱 대학원생'이기도 했겠지만, 그 이상으로 일찍부터 학계 주요인물들에게 낭만주의적 천재관에 부합하는 인물로 비쳤던게 아닐까?"하는 음모론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사에 이런 경우는 왕왕 있죠.) 만약 이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구조와 힘』은 "한낱 대학원생"의 성공담이라기보다는 19세기 유럽에서부터 내려온 보다 전통적인 헤게모니의 산물로 이해하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글들을 잘 읽어주는 학계
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전에 나눴던 다른 댓글에서도 짧게 생각을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각론'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것이 '서로의 총론'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거명하기는 그렇지만,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조금씩이나마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저는 ('남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만큼은) 희망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