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석사논문에 대한 단상

중대한 노력을 기울이시는데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소위 '악마의 대변인'에 빙의해서 몇 가지 이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그 좁은 철학계에서 생산되는 연구를 서로 읽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철학계가 '좁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연구자들의 관심 주제는 천차만별로 갈라질 수 밖에 없고, 학계의 구성원 수가 적다보니 내가 관심 갖는 주제가 다른 사람의 관심 주제와 맞아떨어질 확률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한국어 저작을 읽고 싶지 않아서 안 읽으려 하기보다는, 그 관심 주제에 대한 한국어 문헌이 희박한 경우가 더 흔한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본문에서 언급된 반선명성 또한 20년 가까이 꽤 핫한 주제로 알고 있습니다만, 인식론, 그것도 윌리엄슨 식의 인식론을 접한 덕분에 그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거나, 내지는 연구 주제 상 그 문헌을 읽을만한 유인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철학계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논문을 읽을만한 이유가 있는지, 과연 '그래도 한국어로 쓰였으니까!"라는 이유만 남았을 때 그게 충분히 강력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좀 마이너한 주제들, 예를 들어 세계를 통틀어 북미 5명, 유럽 3명, 남미 2명, 아프리카 3명, 아시아 4명 ... 정도쯤만 진지하게 연구하는 주제라고 한다면 그에 관한 한국어 문헌이 있을 확률은 희박할 것 같습니다.

(2)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학계 차원에서 특정 연구 주제를 범학계 차원에서 전념하게끔 권장한다', '한 교수 밑의 '연구팀'은 그 연구팀의 연구 주제에 집중한다' 같은 식으로 개별 연구 주제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걸 가지치는 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공계에서는 실천되고 있고, 또 몇몇 지역의 철학계에서는 제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죠.

하지만 적어도 제 개인적인 기호를 밝히자면, 저는 부정적입니다.

(3) 사실 좀더 현실적인 타개책은 학위논문 보다는 학술지 논문에, 그리고 글을 읽기보다는 발표의 장을 더 넓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학위논문은 '범 학계'를 노리고 쓰는 글이 아니고, 더욱이 문외한으로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글을 읽기보다는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발표를 듣는게 훨씬 낫죠.

이런 취지하에서 많은 대학 철학과에서 자체적으로 다양한 발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고, 또한 학회가 그런 이유 때문에 존재하죠. 또 국내에 역시 대학원생 학회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교류의 장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비용대비적으로 더 나은 방책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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