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아니라 평소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그저 관심 수준일 뿐 여러분들 처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철학에 관심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철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는데요. 4학년이 되어서 분석철학과 논리학을 접하게 되면서 철학을 하고싶다는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습니다(다만 철학과 학생들과는 달리 철학에 관련된 베이스는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존주의에 관심이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분석철학, 논리학처럼 재미있는 학문을 놓치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되어 혹시나 실존주의, 분석철학, 논리학이 서로 관련있는 분야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 이렇게 질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철학이 전공이 아니어서 분야를 잘 몰라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 하나하나 정말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1) 실존철학-분석철학을 무엇으로 보시느냐에 따라 답이 갈릴듯합니다.
논리학이야 꽤 엄밀한 구분이 있는 철학의 세부 분야지만, 위 둘은 그렇지 않아보입니다.
보통 실존 철학이라하면, 실존 -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목숨과 구분되는지) "삶"에 관한 철학적 탐구이자, 이를 탐구했던 20세기 초반 학자들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분석철학 역시 프레게-러셀에서 시작된 논리학적 도구로 자연 언어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다른 철학적 문제들도 다루려는 경향이라는 좁은 정의에서부터, 이러한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후대에 성립된 범-영미권의 철학적 전통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까지도 가능해보입니다. (넓은 의미에는 이제 과학적 방법론까지 쓰는 자연주의라던가 대륙철학의 방법론인 현상학을 수용한 흐름, 아니면 범-영미권의 엄격한 논증 방식을 대륙철학자들의 논저에 도입하는 철학사적 연구 등등의 보더라인 케이스들도 있겠죠.)
(2)
아마 논리학과 (어떤 의미에서든) 실존 철학이 같이 연구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겁니다.
한편 "삶"을 연구하는 실존 철학을 분석철학적 경향성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꽤 있습니다. 삶의 의미라던가, 선택 이론, 행위 철학 등등 모두 따지고보면 일종의 실존 철학이라 할 수 있겠죠.
다만 이 분야의 저서를 읽어보면, 음. 생각하시는 실존 철학 문헌이 가진 심미적-문학적 감동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실존 철학자들을 분석철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영미권에서 꽤 있죠. 하이데거에 대해서라면 @YOUN 님의 게시글이, 니체에 관해서라면 @sophisten 님의 게시글이 도움이 되실겁니다.
이렇게 빨리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철학에대해 실질적으로 배우기 시작한게(대학 수업) 얼마 되지 않아 글이 엄밀하지 못함에도 이렇게 의견을 달아주신 점에 감사드리며, 덕분에 세부적으로 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실존주의에서 나타나는 문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공감을 하지 못해서 실존에 대한 주제에 대해 분석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을 댓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가 기저에 관심을 가진 부분을 더 세밀하게 끌어낼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주신점 감사합니다.
실존 철학을 좋아하신다면 사라 베이크웰의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을 한번 읽어보세요. 20세기 초반 실존 철학자들의 생애와 그들의 주장을 굉장히 문학적으로 잘 엮은 논픽션입니다.
또한 영미권에서 실존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데이비드 베너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추천드립니다. 과격한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있고 영미권 스타일이 어떻게 이 주제에 쓰이는지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실존에 대한 여러 견해 중 하나일뿐 진리가 아니니 경도되실 필요는 없습니다.)
글쎼요, 저도 실존주의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실존주의에서 논리학에 반기를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영원히,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논리학이고, 그것이 실존주의자들에게는 달갑지 않겠죠.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논리학자들은 우리가 한 상황에 처해있는 현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결국에 논리학도 현존재 (혹은 논리학자)들이 해야하는 것이지만, 본인들이 현존재로써 논리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며, 각자의 상황로부터 독립된 진리를 쫓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실존주의가 논리학 자체에 반기에 들지 않을까 싶네요.
영어도 괜찮으시다면, Barrett - The Irrational Man도 추천드립니다. 책이 두 파트로 나눠져있는데, 첫번째는 전체적인 실존주의에 대해서 다루고, 두번째 파트는 Mandala님이 언급하신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를 한 명씩 다룹니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논리학을 언급하시니, 이 책의 이런 부분도 생각납니다 (물론 예전에 읽은 거라 정확하진 않을겁니다). 걸리버 여행기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철학 박사 과정을 못 딴 이유가 논리학을 F받아서고, 논리학에 앙심을 품고 걸리버 여행기에서 논리학자들을 조롱하면서 썼던 것이 도형에 집착한 사람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 주민들은 한 쪽 눈이 자신의 머리를 향하게 돌아가있으며 (데카르트 코기토겠죠?), 모든 음식들을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서 먹었죠. 그래서 걸리버 여행기는 이런 식의 논리적이고 기하학적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부분은 좀 정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여요. "논리학과 실존철학이 같이 연구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라는 @Mandala 님의 이야기나, "실존주의에서 논리학에 반기를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는 @yhk9297 님의 이야기는, 단지 두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이유 때문에, 두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을 현실에서 찾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 분야에 대해 저마다 오해가 쌓여 있다는 거죠. 실존철학과 논리학 자체가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지는 않아요. (특히, 논리학은 추론의 형식에 대한 학문일 뿐이라, 논리학을 한다고 해서 특정한 철학적 입장을 옹호하거나 거부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실존철학과 논리학이 서로 상반된다고 이야기하면, 20세기 실존철학의 거인 중 한 명인 야스퍼스가 저승에서 듣고 놀라서 펄쩍 뛸 거고, 형식논리학의 진리표 개념을 정립한 인물인 비트겐슈타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걸요? 야스퍼스는 (비록 형식논리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실존적 진리가 소통 가능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합리적 기준과 논리적 타당성을 만족해야 한다고 엄청나게 강조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일반적인 의미의 실존철학자는 아니지만) '논리학의 문제'와 '죄의 문제'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았을 정도로, 자신의 논리적 탐구에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고요.
여기에 덧붙여 분석철학과 실존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YOUN님 말씀처럼 논리학과 실존주의의 관계가 배척될 필요가 없듯이 분석철학과 실존주의가 배척될 이유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논리학, 논리 실증주의, 분석철학, 영미철학 이 넷을 짬뽕시켜 잘못 이해하다보니, 분석철학과 실존철학의 거리가 아주 먼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석철학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실존주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실존주의의 간판급으로 여겨지는 하이데거와 니체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Julian Young이 있습니다. 작업의 번역본으로는, 올빼미에 제가 요약문을 올리기도 했던, < 신의 죽음과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실존주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볼만한, 비전공자도 읽을 난이도의 좋은 책입니다.
그렇다면 실존적 진리는 어려운 수학 증명과도 같은 위치에 있겠네요. 이성만으로 도달할 수 있진 않지만, 이성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깐요. 예를 들어, Munkres의 말을 빌리자면, Urysohn's Lemma는 수학과 학생들이 위상수학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이 레마의 증명을 스스로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하니깐요.
이런 스탠스가 실존주의 안에서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네요. 되게 신기한 주장이기도 하고요 (실존주의 안에서 말이에요). 정정 감사합니다.
윤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관심있는 쪽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저도 실존적인 주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개척된 분야는 아니지만, 몇몇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Analytic Existentialism이라는 테마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번역서로 출간된 책의 저자 데이빗 베네이타(David Benatar)가 있고, 많이 알려진 철학자는 아니지만 베리슬라브 마루쉬치(Berislave Marušić)라는 철학자가 Analytic Existentialism이라는 논문집을 편집 중에 있습니다.
분석적 전통의 철학자들도 실존적 주제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이 없진 않습니다.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이나 리처드 테일러(Richard Taylor) 같은 철학자들의 글은 철학입문 수업에서도 많이 쓰이구요.따지고보면 한 때 유명했던 셸리 케이건의 <죽음>도 굳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과거에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사르트르에 대해 쓴 책도 있는 것 같네요. (단토가 분석철학자일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그리고, 저는 분석철학이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버나드 윌리엄스의 말을 빌리자면, 분석철학은 논증과 구분, 그리고 적당히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추구하는 철학하기의 한 방식이지, 그것만의 독특한 주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존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보는 것도 독서계의 없던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저도 언젠가 야스퍼스를 촘촘히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성들여 써주진 글 감사합니다. 분석철학이라는게 스타일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같습니다. 추천해주신 데이빗 베네이타라는 분과 Analytic Existentialism에 대해 알아보면 뭔가 또 재미있는 내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추천해주신 다양한 분들의 글 또한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글 하나에 다양한 분들이 글을 써주신다는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다시한번 조언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최성호 교수님의 삶의 의미에 대한 저작 역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본 저작에 직접적으로 논리학이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존 연구 분야가 논리학과 직접적으로 유관한 분석 형이상학이셨던 분이니만큼, 본 저작에도 그런 기풍이 어느 정도는 녹아 있지 않을까 짐작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