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기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생각도 해보며 철학에 대해 알아보자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제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지금 제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어떻게해야 행복해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복을 위해선 말초적인 쾌락과 장기적인 쾌락. 이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말초적인 쾌락은 게임, 음란물, 과식, 소비 등등이 있겠죠. 하지만 이것들은 결코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이런것들은 하면 할수록 쾌락을 주기 위해 필요한 역치가 높아질테고,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 되려 인생을 기화시키는 독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기적인 쾌락을 인생의 행복으로 여기자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고 저는 번식, 자기발전 이렇게 2가지를 꼽았습니다.
먼저 번식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하며 아이가 커가는것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거라고 생각해요. 이 방법은 죽기전까지 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질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연애, 결혼은 포기했기때문에 이 방법으론 결코 행복해질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건 자기발전이지요.
이걸 쟁취하기 위해서는 공부, 운동 등을 해야합니다. 평생 성장할수 있는거지요.
여기서 저는 모순을 느꼈습니다.
자격증이란 결국 좋은 회사를 가기위해, 좋은 회사 취업은 결국 돈을 위해 쟁취하는것이고
운동은 이성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소비는 결코 행복의 주체가 될수없고, 이성과의 만남은 진작에 포기했기에 자기발전의 이유또한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사자격증만 따고 그저그런 회사에 취업해도 별문제는 없기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 행복해질수있는걸까요?
그냥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고싶지는 않습니다.
우선 (영미권 분석철학에서는) 행복 - 쾌락 - 웰빙이 모두 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쾌락(pleasure)은 말씀하신 단어 중에서는 말초적인 쾌락에 가까운 의미로 쓰입니다.
행복(happiness)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i) 어떤 긍정적인 심리 상태 혹은 (ii) 사람이 추구할만한 가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혼동을 막기 위해 (i)의 경우를 행복이라 쓰고 (ii)의 경우를 웰빙[well - being]이라는 용어로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meaning of life)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이지요.
이 네 가지 용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릅니다.
쾌락은 말 그대로 '좋은 느낌'이 드는 상태이지만, 행복은 그보다 포괄적인 심리 상태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 어떠한 성취를 이룬 상태처럼 느낌의 질이 다를 수도 있고, 느낌보다는 시간적으로 더 긴 일종의 무드/기분[mood]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여기에 삶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행복/쾌락과는 구분됩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일 (예를 들어, 남에게 헌신하는 도덕적 희생 등)이라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쾌락과 연관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웰빙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뭘 추구하는게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좋은 것인가?
(2)
이 모든 이론에서 철학자들끼리 합의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즉 웰빙이란 무엇일까요?) 누구는 말초적 쾌감이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걱정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자신의 욕망 (단순한 성욕뿐 아니라 성취욕 같은 것들도 포함해서)을 충족시키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누구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은 답을 알려주진 않을 듯합니다. 그저 가능한 후보군, 가능한 답들 (혹은 오답들)의 목록을 보여줄 뿐이겠죠. 사실 친구들한테 "그래서 좋은 삶이 뭔데?"라고 물어보면 돌아올 대답들의 목록과 동일할지도 모릅니다. 우정, 자녀, 권력, 헌신, 도덕적 봉사, 창조적 활동.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좋은 것'들을 알고 있죠. 다른 점이 있다면, 철학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이에 대해 말하려 하니, 질문자님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정도뿐일 듯합니다.
(3)
여러 책들을 고민해보았는데, 사실 무엇이 적합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같은 질문을 가질 때,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라 베이크웰 - <어떻게 살 것인가?>
; 거창한 제목이지만, 사실 몽테뉴라는 15세기? 유럽에 살던 한 사람의 일대기와 사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몽테뉴가 철학사적으로 그리 높게 평가 받지는 않습니다. 전문적인 철학 내용을 한 사람도 아니고, 했던 주장 역시 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언가 정해진 진리가 있다는 것에 회의적인, 회의주의자였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과 닮아있죠.
John Sellars - Hellenistic Philosophy
; 갑자기 영어 책을 추천드리려는 죄송스럽네요. 그래도 질문자님이 하셨던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고, 가장 다양한 답을 내렸던 시기가 헬레니즘 시기인만큼, 이 저서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에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생각을 좋아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좋은 것들로 하는 저글링과 같아서, 단 하나의 '좋음'이 아닌 여러 좋음들을 추구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저글링을 무너트리는 비극이 닥치더라도, '잘' 견뎌야 한다고.
(4)
질문과 연관된 삶의 의미에 대해선 이전에 질문 주신 분들과 답이 있었으니 이 역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5)
뭐랄까요. 철학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답을 주진 않을 겁니다. 차라리 답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력이 정말 좋다고? 사실 우리가 경험해보기 전까진 남이 아무리 말해도 잘 확신하지 못할겁니다. 철학자가 말하든, 친구가 말하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말해든 말이죠. 좋은 삶에 대한 어떠한 답도 사실 이와 같은 것 아닐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매우 진지하고 실존적인 고민이라서, 조금 개인적인 코멘트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쪼록 여러 선택지를 알게 되고, 그 중에서 본인이 납득 가능한 답을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예전에도 올빼미에서 몇 번 이야기되었던 주제네요. 저는 철학이 행복의 문제나 그밖의 여러 가지 인생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는 철학 공부가 삶에 큰 즐거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 철학을 통해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을 고민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종교나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 고민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아래에 이와 관련된 올빼미의 이전 글들이 있습니다.
내 삶이 행복해지려면 나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타인들과 사회가 도와줘야 합니다. 운이 좋기도 해야 합니다.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것들을 마치 기업가가 수익성 높은 투자 종목들을 요모 조모 따져보는 태도같은 태도로 따져볼 수록 그만큼 더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의미/가치 있는 삶을 목표로 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의미/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보다 '약간'이나마 내 자신에게 더 달려있습니다.
철학에 대해서는 과문하지만 제 생각을 남겨봅니다.
행복은 어떤 조건을 성취했을 때 필요충분적으로 얻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요소들은 철학이 아니라 경험과학(가령, 심리학)의 영역에서 많이 연구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보다는 ‘주관적 삶의 질(subjective well-being, SWB)'이 그쪽 계열에서 쓰는 더 학문적인 용어가 되겠습니다. SEP에도 관련 항목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행복에 관한 학문적인 연구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신 것이라면, 연구 결과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우선 자기개발을 위한 공부가 자격증 공부밖에 없다는 숨은 전제가 있네요. 그렇지 않고서 7에서 곧장 11이 도출되지 않지요. 근데 이것이 의문스럽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자격증은 하나도 없거든요. 초등학교 때 땄던 컴퓨터 자격증과 한자 자격증, 수능 끝나고 땄던 장농면허 정도 빼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자격증 공부나 시험 공부보다 제가 하고 있는 지금 공부는 돈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고 소비를 통해 말초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험공부보다는 훨씬 더 큰 행복을 느껴오고 있기 때문에 이 짓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8번도 의심스럽습니다. 저도 운동 참 안 했습니다만, 지금은 후회 속에서 운동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저는 허리에 디스크 두 개가 없어지고 있는데요. 허리가 삐었을 때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공부는 누워서 밖에 못하는데 너무 불편하고 힘들더라구요. 운동을 해서 몸을 예쁘게 만들면 우리 색시가 절 더 이뻐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이 서른에서 조금 더 지나치자 신체의 무료 사용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됐는데요. 운동은 정말 반드시 해야합니다... 이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기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더라구요.
또 <국가> 3권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이 말씀하시듯, 운동도 결국에는 혼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식이요법을 위해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는데요. 그들의 몸이 예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고통 때문에 중요한 일, 그러니까 혼을 돌보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요.
또 10번에도 딴지를 좀 걸게요. 이성과의 만남이 번식과 관계되는 일이라는 숨은 전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이성과의 만남이 반드시 잉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또 그 만남이 항상 성적 쾌락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는 기쁨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좋은 사람에는 이성이 있을 수 있지요. 그리고 또 좋은 이성 친구가 주는, 좋은 동성 친우가 주는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꼭 그것이 성적인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제가 남성이라, 여성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조건은 제가 결코 겪을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세계관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저에게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준 적이 많지요.
종합적으로 하나 말씀드리면, 자기개발을 너무 좁게, 관습적인 의미로만 이해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기개발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보지만, 이들이 보는 자기개발은 정치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던가 돈을 많이 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플라톤의 <국가>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