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우선 (영미권 분석철학에서는) 행복 - 쾌락 - 웰빙이 모두 다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쾌락(pleasure)은 말씀하신 단어 중에서는 말초적인 쾌락에 가까운 의미로 쓰입니다.
행복(happiness)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i) 어떤 긍정적인 심리 상태 혹은 (ii) 사람이 추구할만한 가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혼동을 막기 위해 (i)의 경우를 행복이라 쓰고 (ii)의 경우를 웰빙[well - being]이라는 용어로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meaning of life)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이지요.
이 네 가지 용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릅니다.
쾌락은 말 그대로 '좋은 느낌'이 드는 상태이지만, 행복은 그보다 포괄적인 심리 상태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 어떠한 성취를 이룬 상태처럼 느낌의 질이 다를 수도 있고, 느낌보다는 시간적으로 더 긴 일종의 무드/기분[mood]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여기에 삶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행복/쾌락과는 구분됩니다. 우리가 의미 있는 일 (예를 들어, 남에게 헌신하는 도덕적 희생 등)이라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쾌락과 연관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웰빙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뭘 추구하는게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좋은 것인가?
(2)
이 모든 이론에서 철학자들끼리 합의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즉 웰빙이란 무엇일까요?) 누구는 말초적 쾌감이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걱정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자신의 욕망 (단순한 성욕뿐 아니라 성취욕 같은 것들도 포함해서)을 충족시키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누구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은 답을 알려주진 않을 듯합니다. 그저 가능한 후보군, 가능한 답들 (혹은 오답들)의 목록을 보여줄 뿐이겠죠. 사실 친구들한테 "그래서 좋은 삶이 뭔데?"라고 물어보면 돌아올 대답들의 목록과 동일할지도 모릅니다. 우정, 자녀, 권력, 헌신, 도덕적 봉사, 창조적 활동.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좋은 것'들을 알고 있죠. 다른 점이 있다면, 철학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이에 대해 말하려 하니, 질문자님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정도뿐일 듯합니다.
(3)
여러 책들을 고민해보았는데, 사실 무엇이 적합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같은 질문을 가질 때,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들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라 베이크웰 - <어떻게 살 것인가?>
; 거창한 제목이지만, 사실 몽테뉴라는 15세기? 유럽에 살던 한 사람의 일대기와 사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몽테뉴가 철학사적으로 그리 높게 평가 받지는 않습니다. 전문적인 철학 내용을 한 사람도 아니고, 했던 주장 역시 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언가 정해진 진리가 있다는 것에 회의적인, 회의주의자였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과 닮아있죠.
John Sellars - Hellenistic Philosophy
; 갑자기 영어 책을 추천드리려는 죄송스럽네요. 그래도 질문자님이 하셨던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고, 가장 다양한 답을 내렸던 시기가 헬레니즘 시기인만큼, 이 저서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에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생각을 좋아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좋은 것들로 하는 저글링과 같아서, 단 하나의 '좋음'이 아닌 여러 좋음들을 추구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저글링을 무너트리는 비극이 닥치더라도, '잘' 견뎌야 한다고.
(4)
질문과 연관된 삶의 의미에 대해선 이전에 질문 주신 분들과 답이 있었으니 이 역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5)
뭐랄까요. 철학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답을 주진 않을 겁니다. 차라리 답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력이 정말 좋다고? 사실 우리가 경험해보기 전까진 남이 아무리 말해도 잘 확신하지 못할겁니다. 철학자가 말하든, 친구가 말하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말해든 말이죠. 좋은 삶에 대한 어떠한 답도 사실 이와 같은 것 아닐까,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매우 진지하고 실존적인 고민이라서, 조금 개인적인 코멘트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쪼록 여러 선택지를 알게 되고, 그 중에서 본인이 납득 가능한 답을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