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이 해커가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유명한 ‘그 해커’군요. 대단합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해커가 쓴 비트겐슈타인 연구 이외의 글들은 분석철학계에서 그다지 널리 읽히거나 수용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해커와 베이커의 언어철학 연구서인 Language, Sense and Nonsense : A Critical Investigation into Modern Theories of Language도 혹평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거든요. 해커의 심리철학 관련 연구도 그렇고요. 주류 학계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의 운명을 해커를 통해 단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들고 그래요.
여러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은 축소주의-회의주의-혹은 철학적 해소라는 경향은 철학의 발전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지만, 그 주장을 한 사람들은 쉽게 철학사에서 사라지는 듯합니다. 예컨대, 근대 철학을 추동한 흐름에는 (과학의 발전, 예수회와 모험가들을 통한 다문화적 정보의 유입, 인문주의의 부흥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로) 회의주의의 부상을 들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 흐름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거의 이름이 남지 않았고 이름이 남은 유일한 사람인 몽테뉴조차 철학과에서는 잘 다루지 않죠. 이는 부분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의 교정보다는 새로운 설명을 더 선호하는 경향 때문인 듯합니다.
다른 하나는 해커 본인의 특성입니다. 저 대작은 분명 스완송이긴하지만, 오늘날 철학책이라고 보기에는 좀 미묘하고 기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건 아무런 각주나 인용 표기가 없다는 점이지요. 해커는 그냥 아리스토텔레스가 쓰듯, 어떠한 철학적 이론을 "대상"으로 세워놓지 않고 글을 씁니다. 어떤 의미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이런 인용 하나 없을 만한 주제가 아닐텐데, 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어떤 의미에서 해커는 학계를 그냥 '무시'한다는 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뭐...아시다시피 비판 논문이라는 것도 학자의 심력을 쓰는 것인데 굳이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책을 상대할 이유는 없다 보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