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유의지에 대해서 나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이 논쟁이 꽤나 실망스럽습니다. 실망스러운 점이 여러 개가 있지만, 특히나 실망스러운 건 자유의지가 더 이상 자연종 (natural kind)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Deery - Naturally Free Action 같은 예외도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완전 마이너리티라고 하더라고요). 다시 말하면 자유의지의 개념은 우리가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의 정의에 대한 논쟁은 "우리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뜻할 때 어떤 의미로 쓰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논쟁이 됐고, 실험 철학 (experimental philosophy) 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비철학자들에게 "자유의지"의 의미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하고, 그 설문조사에 기반해서 자유의지의 정의를 주장하는 지경까지 왔지요.
물론 이 논쟁을 재밌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특히 moral expressivism 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감의 연결을 지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아하지요. 근데 morality 에 딱히 강한 생각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인 것을 알고 싶어하는 저에게는 참 안 좋은 소식입니다. 그냥 지금 작업하는 것만 빨리 끝내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새로운 주제에 작업을 하기 전에 이런 것들을 미리 확인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I don’t care about people’s intuitions about free will and moral responsibility, I’m interested in the truth about free will and moral responsibility. Experimental philosophy doesn’t tell me anything about that!’
실험철학적 방법론의 의의에 대한 위와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좀 오래된 글이기는 합니다만 다음 논문에서 교과서적인 답변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수학/공학 배경을 갖고 철학에 접근해서 그런지, 사회철학/윤리학보다는 우리의 생각과 독립적으로 사실인 무언가에 되게 관심이 많거든요. 예를 들어 <전자들은 서로 밀어낸다>라는 명제의 참 여부를 알기 위해 우리가 "전자를 어떻게 정의하기 나름이다" 라고 하면서 사람들한테 설문조사를 하고 다니지 않잖아요?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자연적인' 현상이고 우리는 이를 알기 위해 뭐 실험이라던가 아니면 논리를 써서 접근을 해야겠지요. 설문조사가 아니라요.
특히 자유의지는 저는 데카르트/스피노자/헤겔로 많이 접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헤겔은 자유의지가 자연종이라고 말할 것 같기 때문에... 데카르트 스피노자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것 같아요. 또, 제가 관심있는 현대 형이상학도 사회현상보다는 우리의 생각과 별개로 사실인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양상 명제도 우리가 생각해낸 개념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무언가, 특히 본질이라던가 성향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양상 명제들을 참으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명제 역시도 우리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고요. 이런 믿음들이 전부 거짓으로 완전히 증명이 된다면 저는 철학을 그만둘 의향도 있습니다. 물론 자연종에 대한 모든 것들이 거짓으로 증명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겠지만요.
자세히 읽어봐야겠지만, 지금 봤을 때 인용구는 자유의지가 자연종이라는 전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물체들은 자신의 부분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고 해봅시다. 이 질문은 그렇게 깊은 질문은 아닙니다. 왜냐면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렸기 때문이죠. "부분"이 self-reflexive하다고 정의를 하면 물체들은 자신의 부분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니겠지요. 그러니깐 저 질문의 답은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지요. "나는 사람들이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신경쓰지 않아! 실제로 물체들이 자신의 부분이 될 수 있는지를 신경쓴다고!" 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됩니다. 물체들이 자신의 부분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렸으니깐요.
자연종이라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전자들은 서로 밀어내는가?" 라고 하면 단순히 단어 사용에 대한 물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전자가 서로 밀어내는지에 관련된 것이지요. 이 경우에는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저 논문을 한 번 읽어보긴 해야겠습니다. 그냥 이 댓글은 논문을 읽기 전에 하는 'pre-reading exercise'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어차피 과학에서도 많은 것이 받아들여졌다가 안 된 사례들이 많아서 (e.g. 플로지스톤, 에테르) 그냥 자연종으로 안 여겨진 사례에 '자유의지'가 추가된 것 뿐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자유의지는 도덕적 책임 문제와 얽힌 것이 많아서 설문조사 같은 것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자유의지의 개념은 얼마간 젠더(gender)의 개념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양상 논리 쪽 분들이 필연적 명제로 과학적인 명제를 드는 것이 영 마음에 든 적이 없어서... "물은 H2O다." 같은 것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장하석 관련 글이 알려져 있죠.
저는 이것을 '철학적 퇴행'이라고까지 부를 생각은 없지만, 이게 실제 과학사적으로 기여했던 과학자들이 "물은 H2O다."가 본질적으로 참일까 생각할까 하면 글쎄다 싶기는 합니다.
이것은 얼마간 인상비평이기는 합니다만, 제가 받는 인상은 철학자들이 과학자들/공학자들보다 '본질'이나 '실재' 같은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과학사를 보면 철학자들이 생각한 대로 과학자들이 생각한 것 같지는 않아서...
이런 식으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될 것이라면, 왜 현실 삶과 별로 관련도 없는 것 같은 이 개념에 힘을 써야하는 지 별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똑같이 소모적이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와 같은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적 framework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더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자유의지가 자연종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에 대한 탐구가 '독립적으로 사실인 무언가'의 문제와 완전히 관계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 문제가 그렇게까지 여겨지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그렇습니다.
전자(electron)도 그래요. 아마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 같은 사람이라면 전자가 실재라기보다는 이론적 구성물이라고 하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자에 대한 탐구가 과학적 사실과 별 관련도 없는 탐구다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마찬가지로, 설사 자유의지가 실재가 아닌 구성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탐구가 '사실'의 문제와 완전히 관련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실망스러우실 것 까지야 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 댓글에서 H2O 관련 부분은 그냥 원래 글의 주제인 자유의지와는 별 상관없는 양상논리에 대한 잡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가 자연종이 아니라면 우리가 정의한대로 자유의지의 논쟁이 진행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깐 논쟁 자체가 우리의 정의에 기반하는거죠. 우리가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논쟁이 우리가 그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결정된다는거에요. 말 그대로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와 관련이 있는 거고,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우리의 정의의 선택 여부에 상관없이 사실인 것과는 다릅니다. 즉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은 아닌 "우리가 쓰는 '자유의지'의 개념 사용"에 관한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리고 '독립적으로 사실인 무언가'라고 하면 전 우리의 개념 사용과 별개로 사실인 것들을 알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전자는 그냥 예시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거에요. 예시에 태클을 거시면 크게 드릴 말씀이 없네요.
형이상학은 그저 사실에만 관심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세상의 구조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죠. 많은 명제들은 참이지만 세상의 구조를 잘 표현해주지 않습니다. Grue등이 예시로 있지요. 그러니깐 "자유의지에 대한 탐구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니깐 실망스러울 필요 없다"라고 하시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전 사실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와 같은 것, 즉 형이상학에 관심이 있거든요 (형이상학이 세상의 구조에 대한 탐구인지는 논쟁이 있지만 일단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자유의지에 대해 '자연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물론, 무엇이 자연종인지 아닌지 자체가 논쟁적일 수는 있기는 하지만, 자유의지를 '자연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에게는 다소 생소해서요. 맥락에 따라 못 부를 것도 없다고는 생각하긴 하는데,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이쪽 논쟁에서는 일반적인가요?
여담이지만, 예전에 제 선배님 중 한 분은 "포켓몬은 '자연종'인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보려고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자연종으로 학위를 받으신 다른 선배님은 이 주제가 꽤나 흥미로울 수 있다고 인정하셨고요. (아직 이 포켓몬 논문은 안 나온 것 같은데, 제가 훔쳐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