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니라서 말 얹기 조심스럽지만, 그런 '언어만이 다 다.'라는 이미지가 그 철학자로 하여금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적이라는 이미지를 줘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오해(사실 제 지식 수준이 그게 오해인지 아닌지 판별하기엔 미약해서 몹시 조심스럽지만)의 대표주자는 데리다입니다.
관련해서 이런 댓글을 단 적이 있었고, 또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에서 데리다를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언어가 먼저냐 사고가 먼저냐 를 두고 과도하게 언어의 편을 든다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사회과학의 많은 개념들처럼 언어가 사고의 중심이라는 언어 구심성 개념 역시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상대주의 이론에서 극단적인 형태를 띠었다. 자크 데리다 같은 예언자들의 글에는 “언어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텍스트는 자기 지시적이다.”, “언어는 권력이다.”,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잠언이 곳곳에 등장한다.(…) 극단적인 언급에 대한 최우수상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 롤랑 바르트에게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종으로나 개인으로나 언어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 (빈서판, 368)
그런데 제가 보기엔 데리다는 그런 언어-사고 선행 문제에 딱히 관여한 바가 없는데도 저런 문구만 끌고와서 비판하는 거는 좀 과도한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계몽>에서 핑커는 아예 데리다를 허무주의자라 부르더군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데리다를 '언어만이 우리의 전부다' 라고 또 다른 관념론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데리다 스스로나 데리다 연구자들이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가 알기론) 데리다 스스로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 서양철학 내부에 흐르던 그런 어떤것을 우위에 놓고 어떤것은 열위에 두는, 그런 이분법적인 움직임이니까요. 언젠가 읽겠지 하고 사둔 <입장들>을 펼쳤는데,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네요.
로고스 중심주의는 또한 근본적으로 관념론(idéalisme)입니다. 그것은 관념론의 모태입니다. 관념론은 로고스중심주의의 가장 직접적인 표상이자 그것이 항상 지배하는 힘입니다. 로고스 중심주의의 분해는 동시에 -더구나- 그 모든 변이체 속에서 관념론이나 정신주의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입장들, 77)
서강 올빼미에서도 관련 논의들이 좀 있는것 같네요.
현상학적 해석학에 대한 질문 - YOUN 님의 게시물 #11?
"언어와 사고는 별개이다" - YOUN 님의 게시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