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제 논문을 읽으셨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대답드리자면,
(1) 원-문자란 무엇인가?
'원-문자(archi-écriture)'는 '문자/목소리'라는 이분법을 비판하기 위해 데리다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순수한 '목소리'와 순수하지 않은 '문자'로 나누려는 입장에 반대하여, 데리다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원-문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원-문자 개념에서 핵심은, "모든 것은 언어다."라거나 "모든 것은 텍스트다."와 같은 주장이 아닙니다. 이런 단언은 역설적이게도 데리다가 비판하는 형이상학에 (특별히, 이 경우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또 다시 개입하게 됩니다. 실재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전통적 형이상학처럼) '긍정적'인 형태로든 (부정신학처럼) '부정적'인 형태로든, 어떠한 종류의 단언도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 데리다의 핵심 강조점입니다. 즉, '원-문자'란 세상을 '문자/목소리', '기표/기의', '언어/실재'와 같이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일 뿐, "언어가 실재보다 우선한다."와 같은 또 다른 형이상학적 명제를 함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2)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용어는 "특정 학문이나 전통"에 얽매이는 용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 '해석학'은 유럽권 철학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령, 데리다는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해체주의'를 제시하였지만, 오늘날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그롱댕이나 카푸토 같은 학자들에 의해 다시 일종의 '해석학'으로 분류되고는 합니다. 하버마스 역시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비판 이론'의 진영에서 자신의 논의를 제시하였지만, 오늘날 비판 이론은 라폰트 같은 학자들에 의해 다시 일종의 '해석학'으로 분류되고는 합니다. 그래서 "해석학이라는 학문적 전통"을 엄격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약간 오해하시고 계신 것 같지만, 저는 이런 시도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해석학이라는 학문적 전통"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식도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하이데거와 가다머로부터 촉발된 논쟁의 흐름을 '해석학'이라고 편의상 부르는 것일 뿐, 해석학만이 지니는 특별한 전통, 방법, 관점은 딱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3) 내재적 비판이란 무엇인가?
저는 "모든 것이 해석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예외로 전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예외로 상정한 채 해석학을 전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가 강조하는 논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해석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은 저에게 있어 해석학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premise)'가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도출되는 '결론(conclusion)'입니다. 즉, 전통적 형이상학은 많은 경우 (a) 사실과 해석은 서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입장1과 (b) 어떤 해석을 사실을 담고 있다는 입장2를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두 입장이 양립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다른 외재적 기준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형이상학이 지닌 자기 모순을 폭로하는 방식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내재적 비판'입니다. 그리고 이 내재적 비판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바로 '사실/해석'이라는 엄격한 이분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이나 '사실이 아닌 해석' 따위가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것은 사실이다."라는 주장과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이 같은 동전의 양면이 되는 것이죠.
철학사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내재적 비판을 가장 철저하게 수행한 최초의 인물이 헤겔이라고 저는 봅니다. 가령, 헤겔은 칸트가 현상과 사물 자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동시에, 그 둘을 다시 일치시키려 하는 자기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하죠.
"모든 이원론적 체계에서, 그리고 특별히 칸트의 체계에서, 근본적 결함은 독립적이어서 결합 불가능(unvereinbar) 하다고 이전에 선언된 것을 결합하는(vereinen) 비일관성에서 드러난다. 결합된 것이 단순히 참이라고 선언되었는데도, 이제 대신 두 계기가, 곧 이들의 독립적으로 분열된 존재가 이들의 진리여야 했던 결합 속에서는 부정된 두 계기가, 이들이 오직 분열 속에서 존재하는 한에서는 진리와 현실성을 획득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철학함은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각각의 개별적 결정이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선언된다는 단순한 인식을 결여한다. 그래서 결함은 두 사유를 화해시키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G. W. F. Hegel, Encyclopedia of Philosophical Sciences in Basic Outline, Part 1: Science of Logic, §60, 원저자 강조)
헤겔이 '현상/사물 자체'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도출해내는 결론도 '매개된 직접성(mediated immediacy)' 개념에 근거한 객관적 관념론이죠. "세계는 개념에 매개되어 있다."라는 주장과 "세계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다."라는 주장이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 헤겔의 강조점입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 경험의 변증법 끝에서 도출되는 '결론'이죠. 저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형이상학을 내재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그 결론으로 '사실/해석'의 이분법이 해체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헤겔의 논의 방식을 따를 경우, 해석학이 형이상학에 대한 내재적 비판만으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