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R. Hanna라는 학자의 글들을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로버트 해나는 서강올빼미에도 소개된 적 있는, 칸트 연구와 관련하여 꽤나 유명한 학자입니다. (전문: REVIEW: On Sebastian Rödl’s “Self-Consciousness and Objectivity”, Or, The Refutation of Absolute Idealism – Critique)
세바스티안 뢰들의 최근 저서 Self-Consciousness and Objectivity: An Introduction to Absolute Idealism은 로버트 브랜덤의 A Spirit of Trust (2019), 이랏 킴히의 Thinking and Being (2018), 그리고 로버트 피핀의 Hegel’s Realm of Shadows (2018)처럼, 지난 2년 사이에 출간된 책들로, 마치 떨어진 장바구니에서 쏟아지는 오렌지처럼 등장한 또 하나의 일류 저서다. 이 책들은 모두 내가 “피츠버그/시카고 신헤겔주의에 약간의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곁들인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훌륭한 예로 꼽을 수 있다. 나아가 뢰들의 저서는 이 편리한 용어를 “피츠버그/시카고/라이프치히 신헤겔주의에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곁들인 철학”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역자 주: 브랜덤은 맥도웰과 함께 소위 "피츠버그 학파"의 대명사이다. 피핀과 킴히는 시카고 대학의 정교수이다. 세바스티안 뢰들은 현재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정교수이며, 지적으로 피츠버그 학파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Sebastian Rödl’s recent book, Self-Consciousness and Objectivity: An Introduction to Absolute Idealism , just like Robert Brandom’s A Spirit of Trust (Brandom 2019), Irad Kimhi’s Thinking and Being (Kimhi 2018) and Robert Pippin’s Hegel’s Realm of Shadows (Pippin 2018)—all of these books appearing within the last two years, like so many oranges tumbling out of a dropped shopping bag—is another first-rate example of what I have called “Pittsburgh/Chicago-neo-Hegelianism-with-a-serious-dash-of-neo-Aristotelianism” (see Hanna 2018). Rödl’s book, in turn, strongly encourages me to expand that handy label into “Pittsburgh/Chicago/Leipzig -neo-Hegelianism-with-a-serious-dash-of-neo-Aristotelianism”.
저 개인적으로는 약간 경멸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타이틀 ("피츠버그/시카고/라이프치히 신헤겔주의에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곁들인 철학") 하에 묶여진 4명 및 4권의 책에 대해, 해나는 이제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표현 방식과 수사학에서의 여러 피상적인 차이점들을 제외하면, 뢰들의 저서와 브랜덤, 킴히, 피핀의 저서는 기본적인 철학적 사유 면에서 거의 모든 점을 공유하고 있다. [...] 그리고 내 의견으로는, 이 네 권의 책은 근본적으로 모든 것에서 틀렸다.
Aside from various superficial differences in mode-of-presentation and rhetoric, Rödl’s book on the one hand, and Brandom’s, Kimhi’s, and Pippin’s books on the other, share pretty much all the same basic philosophical thoughts; [...]; and all four books are, in my opinion, wrong about basically everything.
물론 해나가 위의 4명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위의 4명은 다음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모든 형태의 절대적 관념론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그 이유는 절대적 관념론이 객관성, 현실, 진리를 자기의식, 판단, 개념으로 존재론적이고 설명적으로 환원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 중요하게 구분되는 사실들이나 인지적 요소들을 문자 그대로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한다. 그 결과,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초합리주의, 초개념주의, 필연주의, (자기 의식적으로 객관적인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기의식적인) 거대-정신주의 를 낳는다.
All forms of absolute idealism are false because they ontologically and explanatorily reduce objectivity, reality, and truth to self-consciousness, judgement, and concepts, by the literal identification of these otherwise importantly distinct facts or cognitive items, and thereby yield an ontological and epistemic hyper-rationalist, super-conceptualist, necessitarian, self-consciously objective and objectively self-conscious mega-mentalism.
해나에 따르면, 이 "거대 정신주의"는 다음과 같은 도식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실재(적인 것) = 이성(적인 것) = 개념(적인 것) = 필연(적인 것) = 스스로를 사유하는 사유 = 절대적 (자기)지식 = 하나의 단일한 (자기 의식적으로 객관적인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기의식적인) 거대 정신
The Real = The Rational = The Conceptual = The Necessary = Self-Thinking Thought = Absolute (Self-)Knowledge = The One and Only Self-Consciously Objective and Objectively Self-Conscious Mega-Mind.
여담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H. Dreyfus 가 맥도웰에게 제시한 비판, "모든 것이 온통 정신이라는 신화" (The Myth of the Pervasiveness of the Mental)을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해나와 드레이퍼스 모두 맥도웰이 말하는 개념주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참고로 해나 역시 주구장창 맥도웰의 개념주의를 비판해온 소위 비개념주의자입니다.
해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해나의 도발적인 분류를 보고 "피츠버그/시카고/라이프치히 신헤겔주의에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곁들인 철학"의 구성원들과 그 책들이 오히려 더 궁금해졌습니다. 브랜덤이나 뢰들의 "피츠버그-스러움"은 개인적으로 이미 친숙하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어서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만, Irad Kimhi의 책 "Thinking and Being" (2018)은 처음 들어보는데, 한 번 들춰봐야겠습니다. 피핀은 독일관념론에서는 워낙 유명하지만 그의 글을 아주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었는데 언젠가 한 번 진득히 읽어봐야겠네요. (개인적으로 피핀은 무색무취의 좀 지루한 글이라는 인상이 남아있어서 ...) 그건 그렇고 해나 옹... 점점 외골수 칸티안으로 가시는군요 ...
같이 읽으면 좋은 글:
- R. Hanna에 대하여:
- S. Rödl 및 라이프치히 대학의 지적 풍토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