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창 교수에 대한 재반론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주저함의 원인으로는

  1. 논쟁의 당사자가 서강올빼미에서 활동하지 않으며,
  2. 따라서 당사자가 이 글을 볼 지도 의문이고,
  3. 딱히 내용이 "철학적"인 것 같지도 않아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1. (제 의견이 맞으면 맞는대로, 틀리면 틀리는대로) 생산적 논의의 재생산을 위해서,
  2. 누군가 반론을 하지 않으면 철학 전공자들이 "철학사 교육, 혹은 연구성과 공유"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모지리 학생들로 낙인찍힐까 안타까워서,

[...] 내 포스팅을 지성사 대 철학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9세기 이래의 철학사적 도식이 아직도 유효한 근대철학사적 해석으로 유통된다거나...하고 주장했던 철학전공자들은 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정작 17-18세기 철학사 필드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연구성과를 쏟아낸 사람들은 철학과의 철학교수들인데, 어째서 여러 학생들은 마치 내 포스팅에서 이런 이야기를 철학 분과 바깥의 지성사 연구자들이 맨 처음 꺼낸 것마냥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국 대학 철학과에서의 철학사 교육, 혹은 연구성과 공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진행되고 있기는 한가?)? 어쩌면 이것은 단지 대중도서와 교과서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게 아닐까?
지도가 없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지만, 지도가 없는 줄도 모르는 상태보다는 분명 희망적일 것이다.
<이우창의 재반론 중>

  1.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너무 평화로운 올빼미의 일상에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였습니다.

이하에서는 가독성과 분량을 위해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논쟁의 히스토리:

  1. 이우창 교수 개인 SNS 글에 대한 @YOUN 의 비판적 코멘트:
    근대에 대한 상투어 비판하기/변명하기(1)
  2. 1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반론:
    근대에 대한 상투어 비판하기/변명하기(1) - Raccoon 님의 게시물 #11
  3. 1에 호의적인 입장에서, 2에 대한 나의 비판적 코멘트:
    근대에 대한 상투어 비판하기/변명하기(1) - Herb 님의 게시물 #12
  4. 3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포괄적 재반론:
    Redirecting...

이전 비판(3번)에서 나의 요지는 크게 2가지였다.

테제 A: Youn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반론(2번)은 relevant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Youn의 의견(1번)이 전혀 반박되지 않았다.

테제 B: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를 바라보는 진단이 너무 단순하다. "철학사"에서의 연구성과는 지성사적 연구성과에 의해 (당연히 반박가능하지만) 그리 "간단히" 반박되는 문제가 아니다.

테제 A에 대해서 이우창 교수는 나의 코멘트를 언급하며

(*추가로 들어온 비판적인 언급 중엔 <서강올빼미> 포스팅에 붙은 댓글도 있다. 공들인 댓글 작성자에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하이데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정도를 제외하고 나는 그 댓글의 논지 상당수가 내 의도를 오해하고 있으며--이는 물론 내 잘못이다--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라고 쓰고 있고 실제로 이어나가고 있지 않으니 이 글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테제 B이다. 그리고 이우창 교수 역시 이 테제 B에 대해서 포괄적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하에서 "이우창 교수가 철학과에서의 연구가 생산되는 구조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테제 B에서 지적한) '단순한 진단'에 빠졌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 이전에 몇가지 사항이 지적되어야 하는데 ...

  1. (나의 결론에 따르면) 이우창 교수가 철학과에서의 사정에 밝지 못하듯, 나는 역사학과나 지성사 연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지 못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성사에 대한 흥미를 이우창 교수의 저술이나 블로그 글, 지성사에 대한 활발한 대중적 홍보로 인해 접하게 되었고 한때 흥미를 가지고 팔로우 좀 해보려 했으나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하 나의 글은 거의 철학과 내부사정에 대한 글이므로, 나의 무지가 논변의 결격사유가 되지 못할 것이다.
  2. 17-18세기 서양 근대철학의 분류에 한정할 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칸트와 18세기 독일철학이므로, 나는 로크에 대한 (역사학과나 철학과에서의) 연구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하며 딱히 팔로우하고 있지도 않다. 반면 칸트와 18세기 독일철학에 대해서는 꾸준히 팔로우하고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우창 교수의 추정

(비록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식의 태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해당 논평자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묘사는 그냥 해당 논평자가 17-18세기 철학사 학계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오독이 아닐까 싶다
<이우창 교수의 재반론 중>

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당사항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하에서 예시를 들 때 로크에 대한 연구 대신 칸트에 대한 연구를 주로 들겠다. 애초에 이 논쟁은 로크연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서양 근대철학 연구 일반을 겨냥한 것이니, 만약 칸트연구의 예시가 이우창 교수의 서술에 대한 반례로서 기능한다면, 나의 주장은 뒷받침된다. (거꾸로 칸트 연구 동향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부족한 이해가 내 글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된다면, 애초에 "17-18세기 철학사 학계의 상황을 모르"는 것이 누구인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1. 이하의 논변은 모두 "철학사 (history of philosophy; Philosophiegeschichte)"라는 개념을 두고 전개된다. 나는 이전 글에서 이것을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설명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우창 교수의 오해는 전적으로 이 "철학사"라는 말이 철학과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참고로 이하에서 제시할 "철학사" 개념의 분류는 이우창 교수의 반론에 대한 나의 ad hoc 대응이 아니라,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올빼미 뒤져보면 과거에 내가 쓴 뻘글을 찾을 수도 있다.

이제 "철학사"라는 말이 담고 있는 광범위함과 모호성을 다루어 보자.

현대 분석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W.V.O Quine은 한 때 철학자를 두 부류로 분류했다;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과 "철학사"에 관심있는 사람. 비록 콰인의 이 구분은 "철학사"를 하는 사람들을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약간 낮추는 문맥에서 많이 인용되지만, 아무튼 분석철학 vs 대륙철학 등의 거친 이분법과 마찬가지로 "philosophy" 와 "history of philosophy"의 구분은 현재에도 (특히 연구자들이 자신의 작업물이나 관심사를 명시할 때) 계속 사용된다. "philosophy"는 주로 특정한 "주제"와 "논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업물들에 붙여진다. 예를 들어 심신문제 라거나("philosophy" of mind), 의미와 언어에 대한 문제 ("philosophy" of language), 과학에서의 이슈들에 대한 철학적 논의 ("philosophy" of science) 등등이 그렇다. 반면 "history of philosophy"라는 타이틀은 주로 역사 속에 등장하는 특정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연구에 부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평생 칸트"만" 연구한 학자의 작업들 역시 "history of philosophy"에 속한다. 가끔 보면 전공영역 소개에서 "history of early analytic philosophy"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20세기 초반 분석철학에 대한 거대서사 같은 것을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프레게나 비트겐슈타인 같이 초기분석철학에서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사상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프레게나 비트겐슈타인은 현대 분석철학의 초석을 이룬 철학자들이므로 가령 "philosophy" of language를 다루는 학자들에 의해서 역시 다루어진다. 차이가 있다면 "philosophy" of language는 프레게/비트겐슈타인의 특정 "주제"와 "논변"을 중심으로 다루는 반면, "history of early analytic philosophy에서는 프레게/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주석적/해석학적" 접근이 주로 다루어진다. 전자는 주로 philosophical/systematic 등의 형용사와, 후자는 historical/exegetical/hermeneutic 과 같은 형용사가 붙는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분류는 개별 "연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작업물"에 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연구자가 "philosophical"한 작업과 "historIcal"한 작업을 모두 할 수 있다.)

앞서, 칸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history of philosophy"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좀 더 부연을 필요로 한다. 가령 칸트를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 그룹은 "칸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다루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적으로 "철학적" 의의가 있는 "주제"와 "논변"을 발굴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실제로 칸트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따위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특정한 해석이 "역사적으로"가 아닌 "철학적으로" 흥미로운지만을 따진다. 따라서 이들은 "history of philosophy"를 하면서도 그 중에서는 "historical"보다는 "philosophical/systematic"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나는 이들의 작업을 "철학사-3"으로 부르기로 한다.

철학사-3: "history of philosophy" 속에서의 어떤 철학자를, "historically"보다는 "philosophically/systematically"다루는 작업물.

철학사-3의 대표적인 예시는 그 자신 분석철학에서 수많은 "philosophical" 작업들을 남긴 유명한 분석철학자 P. Strawson의 칸트 연구서 ("The Bounds of Sense")가 있다. (여담이지만 스트로슨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치던 60-70년대에는 분석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2가지 필수과목이 있었는데, 하나는 논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칸트의 이론/도덕철학이었다. 스트로슨은 여기서 칸트의 이론철학 강의를 맡았고, 이러한 풍토에서 공부한 분석철학자들은 후에 "philosophy" 수준에서도 얕게나마 칸트를 다루게 된다.)

그러나 "철학사-3"말고도 "history of philosophy" 수준에서 칸트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철학사-3"과 달리 "historical" 측면과 "philosophical" 측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흔히 "칸트 연구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historical"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의 해석이 "실제로 칸트가 의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들은 "philosophical/systematic"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해석이 현대철학적으로도 매우 생산적인 의의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작업을 "철학사-2"라고 부르자.

철학사-2: "history of philosophy" 속에서의 어떤 철학자를, "historically" 그리고 "philosophically/systematically" 모두 다루는 작업물.

대표적인 이로는 칸트연구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H. Allison, 혹은 최근에 활발한 작업물들을 보여준 (올빼미에도 소개된) R. Hanna와 같은 이들이 있다. 우리는 "철학사가-2"가 "철학사가-3"의 작업물을 보고 내릴 일반적일 평가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건 칸트 철학의 역사적 측면을 모두 무시한 '재구성'일 뿐이야". (실제로 스트로슨의 저작에 대한 대부분 칸트연구자들의 평가가 여기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이우창 교수가 사용하고 있는 "철학사" 내지 "철학사가"의 의미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우창 교수가 사용하고 있는 "철학사가"의 의미를 "철학사-1"로 부르기로 한다. 눈치챘겠지만, "철학사-1"을 말할 때의 "철학사"라는 것은, "철학사-2"나 "철학사-3"이 속한 "철학사"보다 훨씬 더 거시적이고 방대한 영역을 다룬다. 이들은 개별 철학자들에 집중하기 보다는, 예컨대 "17-18세기 서양 근대철학"과 같이 방대한 시공간적 영역을 연구할 수 있다. (물론 한 철학자에서 시작해서 그 주변의 시공간적 맥락을 다루는 연구도 당연히 가능하다.) 고전적인 예시로는 힐쉬베르거나 코플스톤의 철학사 저작들을 들 수 있겠고, 최근에 영향력있는 작업들로는 독일 근대철학 연구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F. Beiser을 꼽을 수 있다. (지성사에서 바이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는 모른다.)
철학사-1은 특히 현대로 올 수록 (이우창 교수가 강조하듯) 지성사와 거의 동일한 층위에 놓여 있고 지성사 작업들과 구분하는 것이 딱히 무의미할 수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철학사-1", "철학사-2", "철학사-3" 에 대한 구분에는 임의성이 들어간다. 또한 가령 "철학사-2"와 "철학사-3" 등이 두부 자르듯 딱떨어지게 대립되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에 상응하는 구분들이 이미 여러 연구자들 스스로의 지적 커리어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고, 철학 전공자들이라면 이러한 구분이 그리 자의적이지 않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구분은 "철학자"가 아닌 "작업물"에 귀속된다.)

이 지루한 구분들을 열거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우창 교수는 자신의 반론에서 지성사와 "철학사"를 대립시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서지사항을 제시한다.

21세기에 출간되어 지금도 널리 인용되고 있는 17-18세기 유럽철학사 입문자용 논문집 몇 개만 들어보자. 2006년 <케임브리지 18세기 철학사> (The Cambridge History of Eighteenth-Century Philosophy), 2013년 OUP에서 출간된 <옥스포드 핸드북 17세기 영국철학편> (The Oxford Handbook of British Philosop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및 <옥스포드 핸드북 18세기 영국철학편> (The Oxford Handbook of British Philosophy in the Eighteenth Century), 2014년 출간된 <루틀리지 컴패니언 18세기 철학편> (The Routledge Companion to Eighteenth Century Phi`losophy)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Knud Haakonssen, James Harris, Aaron Garrett, Peter Anstey 등 해당 편집인들이 지성사학계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거나, 그에 준하게 지성사적 접근법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철학연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해당 논문집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우리는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철학과에서 철학교수직을 취득한 이들이 철학자들철학적 주제에 대해 지성사가들이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접근법에 기초하여 철학사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미 지난 수십 년 간 그러한 성과가 축적되어 '전통적인' 철학사 서사를 대체하는 철학사적 해석이 세워졌고 또 그러한 변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우창 교수의 재반론 중>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우창 교수가 말하는 "철학사"는 오직 "철학사-1"에 한정된다. 이우창 교수가 제시하는 책들에 실리 논문들 역시 "철학사-1" 고유의 타겟과 층위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철학사-2"와 "철학사-3"의 수준에서는 책 한권으로 "17세기" 혹은 "18세기" 전체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철학사가-1"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이 "철학사-1"의 층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한이 중요한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철학과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애초에 "철학사-3"은 "역사성"을 신경쓰지 않으니 논외로 치고) "철학사-2" 수준의 논문들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철학사-1" 수준의 논문들은 논변의 직접적 근거로 불충분하다. 물론 저자가 18세기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보여주는 인용으로서 철학사-1이 인용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철학사-2" 수준에서의 "both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철학사-1"은 "철학사-2"에 쓰이기에는 (좋게 말하면) 너무 거시적이고, (중립적으로는) 역사적일 뿐 비-철학적이며, (나쁘게 말하면) 철학적으로 피상적이다. (물론 "철학사가-1"은 "철학사-2"를 두고 거꾸로 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감정적 평가가 아니라 논문생산을 위한 실질적 평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다음에 있다. 칸트 연구 예시를 들어보자. 최근까지도 18세기 독일 "철학사-1"에서의 클리셰 중 하나는 "언어철학"이 하만과 헤르더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 배경으로는 로크, 흄의 언어관, 루소의 언어관, 라이프니츠의 의미론 등이 인정된다.) 반면 칸트는 실제로 당대에 사상적으로 헤르더의 대척점에 있었던 인물이고, 따라서 적어도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한 1780년대 즈음에는 언어철학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다. (참고로 179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최근 특히 1990년대 이후 칸트에 대한 "철학사-2" 연구들은 칸트의 선험철학이 애초에 의미론적이고 언어철학적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올빼미에 소개된 R. Hanna가 있다: 대단히 독창적이고, 매우 대담한데, 약간 의아스러운 칸트 해석: 로버트 한나의 『칸트와 분석철학의 토대』에 대한 단상. 엄밀히 말하면 언어철학적 해석은 위에서 언급한 스트로슨의 60년대 저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스트로슨은 분명 "역사성"을 무시한 "철학사-3" 수준에서 내놓은 해석이었는데 이것이 결국 "철학사-2" 수준의 역사적 해석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들은 여타 "철학사-2"와 마찬가지로 소위 "언어철학적 칸트"가 ("철학사-3"에서처럼 "philosophical" 재구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historical"한 칸트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들은 "언어철학적 칸트"가 실제 칸트의 역사적/주석적 본모습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에 "칸트의 언어철학"이나 "칸트의 언어관"이라는 주제로 점점 더 많은 논문들이 출판되고 있다.

만약 이 "철학사-2"의 언어철학적 칸트 해석이 맞다면, "철학사-1"에서의 서술은 수정되어야 한다. 헤르더와 칸트는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자 언어철학을 전개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 "철학사-2"의 주장에 대해, 기존의 "철학사-1"이 반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 대답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이다. "최근 지성사 연구 팔로우 좀 해라"라는 방식의 반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사-1"은 기존의 "철학사-2"에서의 칸트 해석을 상당 부분 참조한 것이고, 따라서 칸트에 대한 "철학사-2" 자체가 급진적으로 갱신되어 버리면 양쪽의 교집합이 사라져 버린다. 기존의 "철학사-1"이 새로운 "철학사-2"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강조했듯, 반박은 언제나 가능하다), 새로운 "철학사-2"를 팔로우하고 여기서의 새로운 철학적 논변들에 깊이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존의 "철학사-1"이 반론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 말고는 없다.

나는 이전 댓글에서 이렇게 썼다:

핵심은, 부분과 전체 사이의 해석학적 순환처럼, 지성사적 맥락과 철학적 텍스트 해석이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우창 교수는 하이데거가 지성사연구의 성과를 놓치고 있기 때문에 "틀린" 해석을 한다고 보고 있지만, 사실은 로크의 텍스트에 대한 이우창 교수와 하이데거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지성사적/철학사적 설명도 달라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크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성사가들이 철학자들보다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우창 교수가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죠), 마찬가지로 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설명을 이우창 교수의 지성사적 설명을 토대로 "간단히" 반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다 생산적인 것은 서로가 "상대적" 우위를 가진 부분을 토대로 서로의 해석을 비교해보면서 논쟁을 하고 서로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나의 작업을 너가 모르고 있다"가 아니라요.

로크의 텍스트, 칸트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철학사-1"이 "철학사-2"보다 절대적 우위를 가질 수 없다. "철학사-1" 수준에서 이우창 교수의 견해와 하이데거의 견해는 대립한다. 철학적 논의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이데거에게 최근의 "철학사-1"을 팔로우 해라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철학사-2" 수준에서 이우창 교수의 로크 이해와 하이데거의 로크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 (높은 확률로, 이우창 교수는 로크에 대한 "철학사-2" 수준의 팔로우가 안되어 있을 것이다.) 이우창 교수는 이 "철학사-2"의 층위를 간과한 채, 어떤 "단일한 철학사의 층위"가 있다는 듯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사-1" (혹은 그와 구분되기 어려운 지성사)가 "철학사-2"를 "간단히"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참고로 위의 모든 내용은 해외 철학 학술장에서의 상황과 경험을 기준으로 쓴 것이니, 한국 철학계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걱정은 해당사항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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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요, 다소 복잡한 주제네요. 사실 저는 기본적인 논점에 있어서는 Herb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특히,

라는 부분에서요. 다만, 저는 이우창 교수님의 글을 좀 더 관대한 의미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철학사-1로 철학사-2를 반박할 수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철학사-1이 (철학사-3과는 무관하다고 해도) 철학사-2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중요하게 참고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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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철학사-3 이하는 건드릴 요량이 안되는 아마추어로서 구체적인 기여를 할 역량은 전혀 되지 못합니다만, 말씀해주신 내용에 대해서 부족한 질문을 드릴 수 있을까 싶어서 이렇게 댓글을 달아봅니다.

제가 의문을 갖게된 부분은 "철학자가 실제로 의도한 것" 을 따짐에 있어서 철학사-2가 어떤 방법론을 따르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실제 칸트 학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오히려 마음 놓고 막나가는 사례를 꾸며보겠습니다. 이를테면 아래 질문은 꽤 그럴듯한 철학사적 질문인 것 같은데요.

칸트는 왜 하필이면 "Transzendental"이라는 표현을 썼는가?

아마 실제로도 이 주제를 두고서도 문헌이 산더미쯤 쌓여있지 않을까 .. 짐작을 해보는데요. 갑자기 새로이 아래와 같은 발견이 이뤄졌다고 질러보겠습니다.

사실 18세기말 쾨니히스베르크에서 "Transzendental"이라는 감자칩이 인기가 대폭발해서 품귀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당시 신문기사를 발견함으로써 알려졌고, 칸트 자신의 일기에서 또한 "히힝, Transzendental 마시쩡. 지금 쓰는 책에도 이 말 써먹어야지"이라는 대목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아마도 철학사-1, 넓게는 "역사적/주석적/해석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여러 논의들을 충분히 뒤엎을만한 힘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을가 짐작해봅니다. 반면에 철학사-3에선 이런 발견은 그냥 술안주거리로 남겠지만요.

제가 의문이 드는 부분은 과연 역사적인 면모와 철학적인 면모 양자를 동시에 따지고자 하는 철학사-2에서는 해당 사고 실험에서 어떤 태도를 취한다고 봐야할지인데요.

저는 적어도 "실제 칸트가 의도했던 바"라는 역사적 질문을 따지는 경우에 한해서라면 위 트란첸덴탈 감자칩 문헌 발견이 기존의 모든 철학적 논변을 뒤엎을만한 증거가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마도 철학사-1에 호의적인 생각이 드는데요.

저의 이처럼 철학사-1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가

같은 대목에서 말씀해주시는 바와 충돌하는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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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우창 교수가 말씀하신 이것을 주장했다면, 저는 이것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해하기로 이우창 교수는 "철학사-2"의 층위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로 인해 자꾸 잘못된 프레임으로 지성사-철학사 관계를 몰고가는 것을 보입니다.

우선 나는 모든 철학 연구가 지성사 연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당연하지만 의도적으로 맥락을 무시한 독해가 종종 매우 생산적인 산출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내가 좀 더 비판적인 접근이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지점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로크의 예를 든다면, 로크에 대한 비맥락적인 독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로부터 로크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는 식의 서술을 끌어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물론 철학논문에서 그런 글쓰기가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알고 있고 또 해당 장르 내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적어도 그 바깥에서는 말이다. [...]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나는 철학전공자들, 적어도 과거의 철학텍스트를 다루는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자명하게 사용하는 개념/범주의 역사성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 것이 좀 더 생산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를 위한 경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우창의 반론 중>

당연하지만 직전 두 개의 포스팅을 쓰던 시점의 내가 철학사에 대해 읽은 연구들은 대부분 이렇게 지성사와 철학사의 교집합에 있는 연구자들이 생산한 것들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포스팅이 철학사 연구자들을 공격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읽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철학에 관해 읽고 공부한 논문들이 바로 저런 지성사적 철학사가들이 쓴 것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한번쯤 질문할 필요가 있는 사항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내 포스팅을 지성사 대 철학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9세기 이래의 철학사적 도식이 아직도 유효한 근대철학사적 해석으로 유통된다거나...하고 주장했던 철학전공자들은 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정작 17-18세기 철학사 필드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연구성과를 쏟아낸 사람들은 철학과의 철학교수들인데, 어째서 여러 학생들은 마치 내 포스팅에서 이런 이야기를 철학 분과 바깥의 지성사 연구자들이 맨 처음 꺼낸 것마냥 생각하게 되었을까? 한국 대학 철학과에서의 철학사 교육, 혹은 연구성과 공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진행되고 있기는 한가?)? 어쩌면 이것은 단지 대중도서와 교과서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게 아닐까?
<이우창의 재반론 중>

이우창 교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철학"이나 "철학사-3"은 어차피 "역사성"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니 논외로 치자 (물론 나는 이것이 철학과에서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철학텍스트를 다루는 연구자"들이라면 "역사성"을 의식해야 하고, 이러한 면에서 "철학사-1"과 지성사는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즉 이우창 교수의 사고회로에서 "철학사-2"의 층위는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고려하고 있었다면, "철학사-1"에 해당할 뿐인 서지사항을 용감하게 줄줄 나열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겠죠.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와 "지성사"의 관계를 진단할 때 그의 진단이 "너무 단순하다"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는 "철학사" (1,2,3 을 막론하고) 가 지성사로부터 배울 점이 있고 지성사를 필요할 경우 중요하게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건 그렇고, Youn님의 "관대한" 해석에서 Youn님의 평소 인격을 엿보고 갑니다 :star_st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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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일단

"철학사-2"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전문 역사학자들이 아니기에, 어떤 특정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의식한다고 보는 것은 별로 그럴듯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both historical and philosophical"을 추구하는 "철학사-2"의 지향이 특정한 "방법론"이 선취되야만 가능한 그러한 종류의 작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칸트에 대한 자신의 "philosophical" 해석이 기존의 "historical" 설명/근거에 호환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게 되면 그것이 곧 "both historical and philosophical"을 달성하게 됩니다. 만약 자신의 "philosophical" 해석이 기존의 "historical" 설명/근거와 충돌하게 된다면, 이 때는 왜 기존의 "historical" 설명이 불충분한지 혹은 왜 나의 새로운 해석이 더 "historical"한지 논변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는 기존의 "철학사-1" 내지 지성사의 연구성과와 대결해야는 것이 요구되겠죠.

일단 순수이성비판에는 "transzendental"에 대한 명시적 정의가 나와 있기 때문에, wildbunny님이 제시한 극단적 예시가 저로서는 unintelligible하긴 합니다. 이건 단순히 제가 칸트를 좀 아는 입장에서 wildbunny님의 사고실험에 딴지를 걸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철학사-1"이나 "철학사-2" 수준에서 상당한 연구들이 누적되어 있기에, 어떤 새로운 발견으로 기존의 연구들을 "annihilate" 시킨다는 것이 그럴듯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D. Davidson이 말하는 "극단적으로 다른 개념적 도식의 불가능성" 같은 거랄까요.)

다만 wildbunny님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본다면 아마도 해당 사고실험은, "철학사-1"수준에서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발견은 실제로도 왕왕 이루어지니깐요), 그 자체로 "철학사-2"의 연구들을 뒤집을 힘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을 "철학사-2" 연구자들이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철학사-2" 연구자들 역시 "historical"을 중요시하니, 칸트의 독특한 감자칩 취향은 "철학사-1" 뿐만 아니라 "철학사-2"에게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 "철학사-2" 역시 해당 자료 혹은 이에 대한 "철학사-1"의 해석을 보고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거나 고수할 수 있겠죠.

사고실험의 취지를 "더" 살려봅시다. 감자칩 문서가 발견된지 50년이 지났고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으며 "철학사-1" 연구자들과 "철학사-2" 연구자들 역시 이에 대한 활발한 교류를 마쳤다고 합시다. 그리고 어느 날 "철학사-1"에 속하는 연구자 A가 (50년 전에 발견된) 감자칩 문서에 대한 획기적으로 새로운 지성사적 해석을 출판했다고 합시다. 연구자 A의 새로운 해석("철학사-1")으로 인해 기존의 "철학사-2"가 입장을 바꾸어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는 이유는, "historical"로 환원되지 않는 "philosophical" 논변에서 연구자 A의 해석이 호환가능한지 여전히 따져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자 A가 이미 이것을 다 따져보았다면, A의 작업은 이미 "철학사-1"을 넘어서 "철학사-2" 수준을 포함한 것입니다.)

오해가 있을까 다시 정리하자면, 저는 "철학사-1"과 "철학사-2"가 상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가 후자를 반박할 수 있고, 후자가 전자를 반박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어느 한 층위에서의 새로운 연구가 다른 층위에서의 연구를 그 자체로 간단히 반박하는 소위 스모킹 건이나 knock down argument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관계를 "단순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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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 우문현답 감사합니다! :gr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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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우창 교수님 블로그를 챙겨보지만 철학에 대한 언급에서 느끼곤 하는 뭔지 모를 불편함에 대해 해명해주는 글 같습니다. 명확히 포착을 못했어서 내가 잘못 고수하고 있나 생각도 했었는데 확실히 서로가 한데 엮이는 중간지대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이런 일은 지성사뿐 아니라 지식사회학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부르디외의 지식사회학에서 다른 사회이론가들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의 생애를 분석해 하비투스를 도출해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비투스(habitus)는 구조가 체화된 지적 습관을 뜻하는데, 사회 속 행위자는 이를 가지고 특수한 사회적 장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가령 미셸 푸코는 동성애자로서 프랑스에서 억압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억압을 포착하고 그에 저항하는 하비투스를 갖추게 됐다고 보고 이것이 그가 자신의 사상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자원이 됐다고 봅니다.

여기서 부르디외는 특유의 성찰성에 대한 추구로 이런 배경을 알면 이론가 자신이 사용하는 분석범주에 대해 성찰할 수 있고 사회적 장에서 유포된 특유의 일루지오(ilusio)를 걷어내 마침내 진실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분석에서 그 대상이 되는 이론가의 이론이 기여하는 바와 소통이 되지 않은 채로 이 이론이 배제되기에 중간지대가 없이 끝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상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고 전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환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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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지성사에 대해서는 얄팍한 지식만 갖고 있습니다만, 지성사가 맥락이나 아비투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반대로 텍스트"만"을 강조해서도 안되고요. 아주 거칠게 말해서 언어맥락과 텍스트연구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로 인해서 이우창 교수는 "철학사-1"과 지성사가 이미 "both historical and philosophical"을 달성하고 있고 따라서 "철학사-2"의 층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철학과에서 "철학사-2" 층위의 발흥은 꽤나 최근에 이루어진 일 같습니다. 그전까지는 소위 대륙철학(="철학사-1")과 분석철학(="철학" 혹은 "철학사-3") 사이의 대립이 워낙 명확해서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미권의 연구자들이 여러가지 배경에서 대륙철학을 수용하고 이를 활발하게 연구하는 과정에서 영미권 특유의 "philosophical" 전통에 대륙권의 축적된 "historical" 연구가 수용되었고 이를 통해 "철학사-2"의 층위가 현재는 "철학사"에서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 거죠. 이러한 배경을 본다면 "철학"이나 "철학사-3" 역시 "철학사-2"에 무관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철학"이나 "철학사-3"에서의 논변, 주제, 논쟁들이 "역사적" 수준과 호환가능한 한에서 "철학사-2"의 연구에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스트로슨의 예시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 전 @Thesocial 님이 소개해주신 김은주 교수의 서술이 이러한 과정을 잘 대변할 것 같습니다.

즉 과거의 철학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은 심지어 "철학사-3"이나 "철학"의 층위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영역은 당연하게도 "철학사-1"에 머무르는 태도로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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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사회학도 정확히 같은 층위입니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그린비, 2021)에서 부르디외는 하이데거가 철학장에서 어떤 이론적 자원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합니다. 그리고 어떤 하비투스에 따라 사용되고 있는지도 분석하지요. 그러니 사회적 행위자성과 그 내용이 불가분하다는 점은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충분히 표현을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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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면 제가 단편적으로만 이해했군요.

그러면 @Thesocial 님은 부르디외의 기획 역시 사회적 행위자성과 내용을 모두 고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되는 이론가의 이론이 기여하는 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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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 님의 재반론에 대한 이우창 교수님의 답변이 게시되었네요! 스스로 철학사-2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으로서 유익한 논쟁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논점들을 제시하고 생각할 거리들을 시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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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조금 더 부가설명을 드리자면 부르디외는 상징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사회장 속 행위자들 간의 투쟁 끝에 나온 상징적 자원을 비춥니다. 이는 장에 자리잡아 장에 새로 유입되는 행위자들에게 상징폭력으로 작용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처럼 작용합니다. 이는 다시 행위자들에게 일루지오로 변화됩니다. 이를 통해 구조가 재생산됩니다.

여기서 부르디외는 이론의 해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특정한 견해를 고수하게 됩니다. 하비투스와 이론적 자원이라는 두 팩터를 통해서 그렇습니다. 이는 맥락적 특정임과 동시에 텍스트의 엄밀한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장 바깥과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잘 찾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는 상징폭력을 통해서 경계를 유지하면서 부과되므로 경계의 확장은 온전히 행위자의 몫으로 남는데 여기서 다른 이론적 자원을 찾는 데 있어서 마땅히 학술장 안에서 가용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개인의 하비투스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지대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무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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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감사합니다. 이우창 교수님의 답변에 대한 제 두번째 재반론을 게시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읽어주세요!
이우창 교수에 대한 재반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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