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적 연구와 해석적 연구의 종합을 이루는 하나의 사례

<스피노자의 형이상학>(김은주, 2024, 민음사.)를 보다가 서론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영미권 연구자들의 연구는(필자 첨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논리적 분석에 치우쳐 때로는 텍스트 이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개념의 힘을 거세하며 화석화하는 논의도 적지 않다. (17쪽)

저자는 대륙권의 스피노자 해석인 역량론이 본질주의에 경도되어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영미권의 해석인 합리론과의 연합 방안을 들고 왔습니다. 이를 위해 영미권 문헌을 살피던 중 영미권 문헌의 문제를 말하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자 마르샬 게루(Martial Gueroult)의 스피노자 연구(1968, 1974)를 지속적으로 참조하면서 영미권 문헌의 내용을 판별하고 걔조해가면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논의를 고찰할 때 나에게 한결같이 균형추 역할을 한 것은 게루의 해석이었다. 게루의 해석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영미권 연구자들이 어떤 점을 어느 만큼 자의적으로 재구성했는지를 비춰 보는 척도의 역할을 했다.(17쪽)

이는 철학사 연구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연구전통의 성과들을 종합하는 방식의 모델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연구전통에서 나온 성과들은 방식 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저자는 1)방식은 채택하지 않고 2)내용만을 받아들이며 3)서로 다른 두 내용 간의 긴장은 한 쪽에 우위를 줘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후 분석적 연구와 해석적 연구를 종합하려는 시도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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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개념의 힘을 거세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또 화석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 분이 어떤 영미권 철학자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 잘 모르겠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2차저작을 많이 읽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얼추 생각나는 사람은 델라로카 정도인데, 델라로카도 영미권에서 스피노자를 super hero로 만든다고 욕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하거든요. 아니면 컬리도 그쪽으로 둘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컬리의 해석도 멜라메드에 의해 사실상 사장된 해석이나 다름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미권 스피노자 학계에서 봐왔던 것은, 일부 학자들은 가끔 스피노자를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완벽하게 만드려는 시도 때문에 원본과 동떨어진 해석을 하지만, 그런 해석들은 정확히 그 이유들로 비판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분이 영미권 철학자들이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려면, 제 생각엔 영미권 철학자에서 제대로 원본을 본다고 평가받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야하는데, 어떤 영미권 스피노자 학자를 염두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Thesocial 님이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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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 로카가 맞습니다. 저자는 영미권의 대표적 스피노자 연구자로 델라 로카를 꼽고 주로 델라 로카에 대해 비판합니다.

위의 "개념의 힘을 거세하고 화석화시킨다"는 말도 델라 로카의 해석을 겨냥한 것 같습니다.

특히 실체 일원론에 대한 명쾌한 해명 외에는 충분 이유율을 통한 그의 논증이 종종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소 기계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그치고 이 정당화 과정을 통해 우리 깨달음을 심화하거나 확장하지는 못한다는 아쉬음을 남기기도 한다.(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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