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재반론을 쓸 때, 이우창 교수님이 제 글을 볼 지 반신반의 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리고 보람있게도 이에 대한 상세한 답변 및 반론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제 답변을 써 보았습니다. 역시 경어는 생략하겠습니다. 모든 블록 인용은 이우창 교수님의 글입니다.
논쟁의 히스토리 (지난 글에 이어서)
- 이우창 교수에 대한 나의 재반론:
이우창 교수에 대한 재반론 - 이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재반론:
이우창 교수에 대한 재반론 - TheNewHegel 님의 게시물 #11
핵심은 <철학사-1=지성사 대 철학사-2>의 구별은 적어도 지성사적 접근법 및 그것이 학계에 끼친 영향에 관한 설명으로는 틀렸다는 것이다. 반론자는 한편으로 자신이 지성사학계의 연구성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시인하면서도(힐쉬베르거나 코플스톤을 언급하는 걸 보면 지성사를 모르는 건 분명해보인다), 동시에 지성사가 철학사-1과 동일한 것으로서 거시적인 시공간의 대상을 탐구하는 분야라고 (용감하게) 단언한다. 나 역시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단언한 적이 많이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므로, 이러한 인간적인 모순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대신 지성사적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로 곧바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먼저 사소한 지점부터. 나는 힐쉬베르거, 코플스톤을 지성사가라고 한 적이 없다. 단지 힐쉬베르거와 코플스톤이 (실제로 이우창 교수의 페북 댓글에 등장하는 것처럼) 대중들에게는 “철학사”의 대명사로 인지되고 있고, 서강올빼미의 회원들 모두가 철학과 대학원생은 아니기에 내가 어떤 층위를 겨냥하고 있는지 대중적으로 대략적인 단서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그 뒤에 나는 F. Beiser의 예시를 들면서도 "지성사에서 바이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는 모른다"라고 부연했다. 즉 나는 이들을 "철학사-1"의 층위에 포함시킨 것은 맞지만, 이들이 지성사가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나의 의도는 넓은 분류에서, 지성사 및 이우창 교수가 사용하는 "철학사"를 "철학사-1"의 층위에 포함시키겠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나의 이전 글을 잘 살펴보면 “철학사-2”와 “철학사-3”에 대해서는 볼드체로 “명시적 정의”를 제시한 반면, “철학사-1”에 대해서는 이런 명시적 정의를 제시하지 않는 트릭을 사용했다. 나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내가 “철학사-1”에 대한 명시적 정의를 제시하고 이를 “지성사”와 하나의 층위로 묶는 순간, (지성사 학계에서 지성사를 혹은 “철학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나의 무지로 인해) 이우창 교수는 나의 “철학사-1” 이해가 볼품 없다고 클레임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재반론에서 이러한 클레임을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나는 사실 이우창 교수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과감한 주장을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1”을 명시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주장했던 바는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1’과 지성사를 어떻게 이해하든, 그가 다루고 있는 층위는 “철학사-2”를 포착하지 못한다”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역사학과나 철학과에서의) 로크 연구를 팔로우하고 있지 않으며, 애초에 논쟁은 “로크 연구”를 타겟한 것이 아니고 “17-18세기 서양 근대 철학”을 타겟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관심분야인 칸트 및 18세기 독일철학을 예시로 논의를 전개하겠다고 했다. 애초에 칸트 및 18세기 독일철학에 대해서 이우창 교수가 자신의 지성사적 주장을 관철시킬 자신이 없으면, (a fortiori) “17-18세기 서양 근대 철학”에 대한 일반론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도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동시에, 직전 포스팅에서 내가 언급한 몇 편의 입문자용 논문집을 다시 떠올려보자. 반론자는 그 논문집들이 철학사-1, 즉 거시적인 철학사에 해당할 뿐 철학사-2, 즉 개별 철학자에 대한 연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내가 언급한 지성사가 철학사-1에만 해당한다는 결론으로 비약한다. 해당 논문집이 개별 철학자가 아닌 그 시대 철학사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주제를 다루는 것은 사실이다. 정확히 말해, 반론자의 해당 지적에서 오로지 그 대목만이 사실이다.
먼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짚어보자. <케임브리지 18세기 철학사>의 편집인 크누드 하콘센의 첫 주저는, 도널드 윈치의 <애덤 스미스의 정치학>Adam Smith's Politics과 함께, 흄과 애덤 스미스를 맥락주의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의 문을 연 <입법자의 과학: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의 자연법학> (The Science of A Legislator: The Natural Jurisprudence of David Hume and Adam Smith, 1981)이다. <옥스포드 핸드북 17세기 영국철학사편>의 편집인 피터 앤스티는, 지난 포스팅의 추기에도 언급했지만, 곳곳에서 로크 텍스트의 역사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존 로크와 자연철학>을 출간했다. 제임스 해리스는, <교차 3호>에서 내가 서평을 쓴 기고한 바도 있듯, 흄에 대한 지성사적 전기를 출간했으며, 이는 폴 러셀(Paul Russell)과 같은 흄 철학 전공자가 (특히 <논고> 등의 해석을 놓고) 대놓고 반감을 드러낸 바와 같이 흄 자신의 작업에 대한 철학사적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 저자들의 사례에서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별 같은 게 정말 유의미한가?
물론 반론자는 '철학사-1에 해당하는 작업을 한다고 해서 철학사-2에 해당하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미리 유보적인 진술을 덧붙인 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주장하는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별이 실제로 위에 언급된 연구자들에게 정말로 유의미하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적어도 위 셋에 국한한다면, (물론 반론자는 이들의 작업/커리어를 검토하지 않고 쓴 것 같지만) 이는 당연하다. 그들은, 혹은 좀 더 넓혀서 지성사적/맥락주의적 접근법을 채택하는 철학사가들은 대체로 그런 구별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우창 교수는 “철학사-1”과 “철학사-2”에 대한 나의 구별이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며, 또 다시 로크 연구자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로크에 대한 “철학사-1”연구자들이 동시에 “철학사-2”연구자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이전 글에서 “철학사-1,2,3”의 구분이 개별 철학자가 아니라 작업물에 귀속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우창 교수는 이 언급의 제한적 함축을 제대로 고려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언급은 “철학사-1” 저작물을 읽는 것만으로는 “철학사-2”에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로크연구자들이 실제로 “철학사-2”연구자라고 하더라도 (전술했다시피, 나는 로크 연구자들을 평가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므로 평가를 유보한다), 그리고 이우창 교수가 이들의 “철학사-1” 저작들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부터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2”의 논의에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별이 유의미한지에 대해 내가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6번에서 다시 다루겠다.)
다른 한편으로, 이우창 교수는 “철학사-1”과 “철학사-2”에 대한 나의 구별을 무력화하기 위해, 내가 제시한 칸트 연구의 예시를 태클해야만 했다. 이에 대한 이우창 교수의 핸들링은 매우 단순하고 희망적이다.
요약하자. 지성사적 접근법을 받아들인 철학사 연구자들에게 반론자가 전제한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그런 경계선을 무너트리면서 맥락의 식별/복원과 텍스트 해석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맥락과 텍스트 양자를 다시 해석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지성사적 접근법의 확장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어권 초기 근대 철학사 연구에서 지성사 혹은 맥락주의적 접근법이 어느 정도로 지배적인 지위를 점유했는지는 (아마 당사자들조차도) 잘 모르는 문제겠으나, 이들이 철학사 연구를 갱신 혹은 '전문화'하는 흐름을 주도하는 동력 중 일부를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반론자가 속한 칸트 철학사 연구에는 아직 이런 흐름이 본격화되지 않았을 수 있다 (바이저의 경우는 조금 애매한 케이스고, 내가 들어본 저작은 Reider Maliks, Kant's Politics in Context [2014] 정도인데 그게 칸트 정치철학사 연구 내에서 어느 정도로 성공적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가 자신의 다소 낡은 틀에 나의 서술을, 혹은 이미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맥락주의적' 영어권 초기 근대 철학사 연구를 무리해서 끼워맞추는 걸 정당화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어떤' 철학사 연구에는 이미 지성사적 접근법이 상당히 들어가 있고, 반대로 또 다른 철학사 연구에는 아직 그러한 접근법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게--아마 지성사적 접근법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겐 그러한 영역이 기회의 땅이겠지만--현재로서는 가장 무난한 상황진단이 아닐까 싶다.
이우창 교수의 답변은 (나의 반론에 대한 유의미한 답변이라면) 지성사적 연구가 결국 칸트연구에도 침투할 것이기에, 지성사적 연구방법이 17-18세기 서양근대철학 연구를 모두 아우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이러한 희망회로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히려 다음과 같은 나의 희망회로는 어떠한가? 칸트연구에서 "철학사-1"과 "철학사-2" 사이에 간극이 크듯이, 이러한 움직임이 로크 연구에도 침투하여 로크 연구에서도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간극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우창 교수가 가지는 희망회로의 근원은 아마도, 지성사적 접근방법은 매우 혁신적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이 업데이트 되는 반면, 칸트 연구를 비롯한 철학과의 다른 철학사 연구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에 얽매인 고인 물이기에, 지성사적 혁신이 고여버린 칸트 연구에 침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건 완전히 틀린 그림이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17-18세기 서양 근대철학에 대한 철학사 연구에서 칸트 연구만큼 새로운 변화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분야도 드물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우창 교수의 기대와 달리) "철학사-1"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사-3"이나 "철학"의 층위로부터 영향받은 결과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이것을 스트로슨의 영향을 통해 암시적으로 서술했다. 여기에 더해 J. McDowell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칸트연구에서의 (현재 진행 중인) 변화는 "철학사-1"이나 지성사의 층위만을 고수하는 태도로는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영역이다. 편의상 "역사적"과 "철학적"을 양 극단적 지향성으로 놓고 볼 때, 최근 칸트연구의 변화는 "철학적"의 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물론 "철학사-2"는 "역사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성사의 자리는 여기에서 오히려 제한적이다. (헤겔 연구에서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헤겔 연구는 "철학사-2" 수준에서 가히 폭발적인 수준의 팽창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헤겔의 대논리학에 대해 "철학사-1" 내지 지성사 수준에서 해석을 한다면 그 한계는 명확하다.)
나는 이우창 교수가 제시하는 예시들의 비대칭성에서 하나의 특징을 발견한다. 그의 예시들과 서술들은 대개 초기 근대철학 (홉스, 로크,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에 한정되며 이마저도 정치사상 (political thought)의 연관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근대철학에서 나타나는 ("자연철학" 과 같은 모호하고 큰 개념들 말고) 인식론이나 언어철학, 심리철학, 이론철학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전혀 태클하고 있지 않다. 또한 17-18세기 근대철학을 운운하면서 칸트와 18세기 독일철학을 전혀 터치하고 있지 않은 것도 의아스럽다.
의미심장하게도 이우창 교수가 건드리지 않는 철학자들과 그 논의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텍스트들과 그 논의들은 특히나 "philosophically dense"하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홉스나 로크, 루소의 (특히 정치-)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것과 칸트, 데카르트, 흄의 (특히 이론-)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것을 비교해볼 때, 후자가 전자에 비해 압도적인 "philosophical engagement" 를 요구한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전자가 후자에 비해서 철학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philosophical engagement"란 "철학적" 이슈들에 대한 적절한 훈련을 받지 않은 경우 애초에 접근에 제한이 생기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철학적" 밀도 때문에 가령 칸트에 대해서는 (다른 근대철학자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철학사-2" 수준의 연구들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우창 교수가 "철학사-2" 수준에 대한 개입 없이도 로크 연구를 따라가고 있다고 주장한다거나, 심지어 이 분야에서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분 자체가 허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애초에 이우창 교수가 철학적으로 밀도 놓은 영역들을 애써 회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라. "철학사-1"과 "철학사-2"의 구분이 없다거나, 후자가 전자로 환원가능하다면, 유수의 철학과에서 서양근대철학을 담당하는 주요 교수들 전부는 이미 지성사가로 대체되었어야 한다. 이우창 교수는 철학과에 종사하는 이들이 동시에 지성사 연구를 산출하고 있다고 강조하는데, 이것은 "철학사-2" 수준이 동시에 "역사적" 엄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이지, "철학사-2" = 철학사-1"의 증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오해만 정정하자. 반론자에게 나의 직전 포스팅이 마치 철학 전공자들을 한데 묶어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 같다. 나의 부족한 글솜씨에서 비롯된 결과겠지만, 이는 내 의도와 거리가 멀다. 단지 이제는 그대로 통용될 수 없을만큼 잘못된 낡은 인식의 지도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유통되고 있으며, 그것이 특히 젊은 연구자/학생들의 지적인 성장 가능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려가 나의 주요한 동기다. 지성사적 접근법은 당연하게도 만능이 아니며 제한적인 효용을 지닌 도구에 불과하다. 다만 그러한 도구를 통해 (철학사를 포함한) 많은 영역의 연구자가 나름의 혁신을 시도하고 또 성과를 보여왔는데, 아직 한국어권 학술장에는 이것이 극히 제한적으로만 들어와 있는만큼, 혹시라도 그와 성향이 잘 맞을 분들이 거리낌없이 이 도구를 휘둘러볼 수 있는 지적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것에 적극 동의한다. 이전 글에서 넌지시 썼는데, 나 역시 이우창 교수의 이러한 적극적 홍보에 힘입어 지성사의 혁신을 접한 독자이다. 그러나 내가 지성사에 대한 공부를 (공부했다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중단한 이유는,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당연히 이우창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지성사 저작들(스키너, 포콕, 혼트, 턱 등)과 해외 연구 시리즈들 (ideas in context, 옥스포드 핸드북 시리즈 등)을 간략하게나 살펴보았는데,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스미스 등에 대한 지성사의 매혹적인 해석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칸트 및 18세기 독일철학 등에서 지성사에서 논의되는 층위와 (내가 몸 담고 있는) "철학사-2"에서의 층위 사이의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을 오히려 확인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철학사-1" 수준의 논의는 분명 도움이 되고 참조해야할 의무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철학사-2" 수준의 논문을 생산할 수 없다. 나는 계속해서 동일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지성사 내지) "철학사-1"과 "철학사-2" 사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을 설득하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철학 전공자들이게는 오히려 직관적으로 참인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