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다른 사상가의 생각은 궁금하진 않지만, 제 생각은 궁금하신건가요? 말씀드렸지만 전 이 분야로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스피노자가 저보다 훨씬 이쪽으로 고민을 많이 하였죠. 그래서 저의 생각은 궁금하지 않고 스피노자의 생각이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반대를 말씀하시니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이쪽으로 많이 파보지 않아서 해드릴 말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저보다 월등히 똑똑한 사람이 이쪽으로 영향력 있는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 연구를 @codegeass 님께 알려드린 것 뿐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 대화가 @codegeass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되길 바란다면, 제가 말한 것들을 찾아보고 같이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추천한 저작을 다른 사상가의 생각이라는 이유로 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 저희가 쌍방적인 소통을 한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우선, 말씀하시는 참된 진심에 대해서 제가 이해했을까요. 예컨대, 생일날에 어떤 사람도 연락이 오지 않아 슬퍼한다고 했을때. 슬퍼한다는 진심의 참거짓 여부는 두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거겠죠.
첫째, 친구가 인터넷 문제로 보냈던 메세지가 잘 보내지지 않았다면 거짓 ->거짓된 진심
둘째, 정말로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참. ->참된 진심
이라고 주장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 이런 부분을 관찰하시고 포착했다는 것이 저로써는 배울점 같습니다.
즐거운 토론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저명한 철학도는 아니고 관심만 있는 인간이지만, 이렇게 얘기나누는게 기뻐서 댓을 달아봅니다.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된 진심'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참된'은 진심을 수식하는 관형사입니다.
'참된'은 '진심'의 의미에 종속하고 있습니다.
맥락에 따라 '참되다'라는 뜻은 '사건의 진위가 그런 마음을 갖을만한 사실이다.'라고 말합니다.
말씀하신 참된 진심은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사건의 진위가 그런 마음을 갖을만한 사실이다'+'참된 마음'
거짓된 진심은 다음과 같죠.
'사건의 진위가 그런 마음을 갖지 못할 사실이다'+'참된 마음'
보시면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진심이라는 단어를 관형사가 파괴하고 있습니다.
둘이 연결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참된의 사용은 진심의 의미를 보존하는 한해서 사용해야 하므로, 언어적으로 잘못된 사용입니다.
제시하신 단어는 이상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용어를 변경하는게 좋습니다.
'사건의 진위가 그런 마음을 갖을만한 사실이다'+'내 판단에 한해서 느껴지는 마음'
그리고 그 양자의 어긋남이나 결합함에 대해 표현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차라리 참된 진심이라는 잘못된 언어가 아닌, 문장으로 쓰는게 나아보입니다.
다음 문제는 '참된 마음'이라는 단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할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먼저,
진심의 뜻은 마음의 거짓유무에 관해 말해지는 단어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현실에 대한 피드백반응으로 일어나고, 그것을 소유한 주관에 의해 반드시 참으로 확인되는 것들입니다. 단, 타인이 겉으로 드러낸 표현을 통해 유추했을때, 그것이 진짜인가 거짓인가에 대해 발생했던 언어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이라는 의미는 밝혀진 현실을 이유로 진심이 아니게될 이유가 없습니다. '참된 진심' '거짓된 진심' 이라는 단어는 현실의 진위가 나의 감정또한 거짓과 참으로 나눌 수 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합니다.
A:(세상 행복해하며) 나 이번에 이 게임을 다 깨게 되어서 기뻐.
B:뭔 소리야 한 스테이지 더 있는데?
코드기어스님의 '참된 진심론'에 따르면 A는 진심을 갖지 못한 것이고, 진심에 대해 거짓말을 한것이 됩니다. 게임을 다 깨야만 그 진심은 진짜가 되는건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A의 기쁨은 갑자기 기쁘지 않았던 것이 되어야만 말이 되는 것이라는 이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합
따라서 '참된 진심'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기대가 꺾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기대가 꺾이지 않았다' 정도로 묘사될만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노동님께서 참된진심이라는 단어를 제거하고 새로운 문제로 작성해주셨는데,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될 사건의 참 거짓을 알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코드기어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당연히 내게 벌어진 일에 의해서였다.
진위와 벌어진 일 사이의 차이가 없을때, 마땅히 그 감정으로 말해진다.
진위와 벌어진 일 사이의 차이가 둘을 헤친다면,
진위는 내가 마땅히 기뻐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마땅히 슬퍼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양은 만만치 않게 많다.
기쁘지 못한 일에 기뻐했었군.
기뻐야할 일에 기뻐하지 못했었군.
이런 현상을 표현할 다른 언어들과 정의가 있을겁니다.
여기선 그런 마음이면 안돼. 같은 말씀을 하시는거라면 뭐 진위가 그렇다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문장을 좀 착오가 일어날 수 있게 쓴 것 같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참된 진심이라는 개념은 받아들이면 그런 원리원칙에 의해 자명한 자신의 진심을 억지로 거짓과 참이라고 판단해야하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A는 분명 기뻐했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의 진심은 기쁨.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참된 진심론'에 따르면 자신의 진심은 거짓이라는 것이죠. 분명 기뻐했음에도 참된 진심론에
따르면 난 가식을 부린게 됩니다.
참된 진심이라는 개념과 표현이 문제가 없다고 하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참된 진심론의 문제는 '참된 진심'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중에 진위를 따지고 봤더니 이땐 기뻐하면 안됐네.' 정도의 정보로
거짓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좀 처럼 동의되지 않구요. 참, 거짓이 아닌 다른 경우의 문제가 아닐는지.
A가 스스로 게임을 깼다고 착각한 것으로 기뻐하는 진심은 사건의 진위로써 참되거나 거짓되거나
할 수 있는 판단의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서강올빼미의 개설 목적은 철학 토론의 표준화입니다. 철학 토론의 표준화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장 내에서의 정보 교환 및 의사소통이 자의적인 용어 사용 등으로 인해 실패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 표준화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아니라 학문적인 선행 연구들 속에서 출현한 용어들과 논증들을 참조점으로 삼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표준화의 준거점이 제도권 학계 내에서의 연구들인 이유는, 이들이 신빙성 있는 방식으로 생산된 자료들이기 때문입니다(즉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yhk9297 님을 비롯하여 많은 회원분들이 @codegeass 님의 글에 대한 답글로 거듭거듭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이나 스피노자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헌들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헌들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철학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표준화해야만 불필요한 오류로 인한 의사소통의 실패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필요한 오류"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개념/용어사용의 모호성이 있는데, 이 역시 많은 회원분들께서 @codegeass 님의 글에 대한 답글로 지적해주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글도 그렇고 지금까지 작성하신 글들로 미루어봤을 때 @codegeass 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철학 내부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표준화하는 일에 별로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서강올빼미의 회원분들께서 거듭 추천해주신 문헌들을 찾아 읽을지 말지, 그것들을 학문적 참조점으로 삼아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개념적, 논증적으로 날카롭게 다듬을지 말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codegeass 님 자신의 자유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만, 만일 "학계 내에서 표준적인 방식으로 정립된 철학적 생각들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고 이들과는 독립된 나만의 생각을 마음껏 향유하고 나누고 싶다"가 @codegeass 님께서 추구하시는 바라면, 이러한 목표는 저희 커뮤니티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