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하신 논증이 타당하고 건전한지 따져보아야 하고, 제시하신 사고 실험이 논증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한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1) 타당성과 건전성 평가
아마도 작성자 님은 대략 이런 논증을 구성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제1: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이타적이지 않다.
전제2: 인간은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줄 뿐이다.
결론: 인간은 이타적이지 않다.
이렇게 재구성된 논증 자체는 술어논리로 바꾸더라도 형식적으로 타당할(valid)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전제들이 (적어도 저에게는) 썩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a)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이타적이지 않은가?: 이 전제에서는 '도와줄 만하다'라는 말이 굉장히 모호하게(vaguely)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정확히 어디까지가 도와줄 만한 사람이고, 정확히 어디부터가 도와줄 만하지 않은 사람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가령, 오빠에게는 자신의 동생이 '도와줄 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떤 오빠는 자신의 동생이 살아갈 수 있는 '상냥한 세계優しい世界'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오빠가 자신의 동생을 '도와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도와주었다고 해서, 이런 오빠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상식 선에서는, 그 누구도 동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런 오빠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임스 레이첼스의 『도덕철학의 기초』 제5장에 '심리적 이기주의'와 관련하여 실제로 이런 철학적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한번 참고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b) 인간은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줄 뿐인가?: 반증가능성(fasifiability) 자체가 차단된 단정적인 주장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작성자 님께서는 모든 도움의 사례들 혹은 모든 사랑의 사례들을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주었다'라고 해석해버리시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도와줄 만한 사람'이라는 범위가 모호하니, 이런 광범위한 해석이 무비판적으로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와줄 만하지 않은 사람'을 돕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서 꽤 많이 찾을 수 있고, 또 우리는 그런 경우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작성자님께서도 알 만한) 셜리 페넷이라는 어느 성녀(?)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까지도 용서하면서, 그 원수를 외톨이로 놓아 두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죠.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없어."라고 말하면서요.
따라서 작성자 님의 논증은 각각의 전제들이 실제로 참인지가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건전(sound)'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 사고 실험 평가
작성자 님이 제시하신 사고 실험이 작성자 님의 논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전제1: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이타적이지 않다.
라는 주장의 대우 명제는
전제1′: 이타적이라면 도와줄 만하지 않은 사람을 도와준다.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작성자님은
전제1″: 이타적이라면 자신과 똑닮은 클론을 도와준다.
라는 주장을 전제1′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이 (혹은 전제1′의 한 사례이기라도 한 듯이)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자신과 똑닮은 클론이 어째서 '도와줄 만하지 않은 사람'인지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x는 자신과 똑닮은 클론이다."라는 명제 자체는 "x는 도와줄 만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명제와 논리적 동치도 아니고, 두 명제 사이에 어떠한 의미론적 함축 관계가 직접 성립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즉, 설령 작성자님의 사고 실험을 받아들여서 "사람들은 자신과 똑닮은 클론을 돕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이 "사람들은 이기적이다."라는 결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 적어도, 어제 라프텔에 업로드 된 <코드기아스> 2기 13화의 성녀 셜리 페넷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저로서는, "인간은 태생부터 이기적인 존재"라는 작성자 님의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