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질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군에 있고 9월 전역을 바라보고 있는 23살의 학생입니다. 저는 현재 서울에서 미술이 유명한 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느사람들과 다름없이 전역을 앞둔 저에게 고민이 있다면 당연히 미래에 대한 고민일 것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철학과를 갈지 경제학과를 갈지 고민을 하다 철학은 취미로 하자는 생각에 경제학을 제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이후에 개인적으로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예술학과의 미학 수업을 몇 개 들어보았고, 복수전공을 하기로 마음 먹은 채 군에 왔습니다. 전역을 3개월 앞둔 현재 여전히 저는 철학을 더 공부하고 싶고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와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어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몇가지 궁금한 점이 들어 이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1. 저는 소위 말하는 스카이가 아닐 뿐더러 철학전공도 아닙니다. 그런 제가 미학/ 철학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사, 박사학위를 땄을 때 출신 대학의 끼치는 영향이 클까요? 석사와 박사학위를 서울대와 다른 해외 대학에서 땄다고 하더라도 저의 출신 대학이 명문대가 아니어서 끼치는 영향이 더 클지 궁금합니다.

  2.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재능도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수라는 직업이 정말 그 직업이 가지는 이미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천재' '상위0.0001'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학문이 업이 됐을 때와 평소에 제가 방에서 철학 서적을 읽을 때의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3.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따기 이전까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제가 직업이 없었더라도 집안에서 저를 먹여살릴 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어야, 그정도 되는 사람들만이 대학원을 가는 게 맞는 것인지..궁금합니다.

  4. 저는 제가 스스로 철학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가면 칸트 철학/미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칸트의 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입문서라고 불리는 카울바흐의 임마누엘 칸트마저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서양철학사나 칸트의 2차 저작들, 플라톤을 비롯한 몇몇 철학자들의 서적을 읽은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0프로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라도, 이렇게 부족한 저라도 대학원 진학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마치 의대를 가려면 중학교 때 미적분을 다 떼야한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 선행이 완벽히 이루어져야한다라는 말들처럼 학부생 때 3대 비판서와 어려운 철학책들(ex, 존재와 시간, 논고, 차이와 반복)을 떼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대학원인 건가요?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집안에 돈도 없고 철학적 재능도 부족하며 철학을 하겠다는 열정마저도 불확실해보입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취직을 하고 철학은 취미로 하는 것이, 하지만 저는 철학을 계속 하고 싶고 여러분들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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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골적으로는 "출신 학부가 교수 임용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냐"라는 질문 같습니다. 글쎄요, 그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는 답할 수가 없습니다.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아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학문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학계는 작은 사회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출신 학부가 임용에 무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수 임용에는 연구 분야, 연구 업적 등 출신 학부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요인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유의 질문에 대해서는,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지막지한 것도 아니라는 뻔한 답변밖에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교수 임용 시장, 특히 철학 교수 임용 시장은 학부 학벌 운운하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그냥 처참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철학 연구자가 되려는 사람의 시점에서는 1번과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이 별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단 고등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일밖에는 선택지가 없을 테고, 학부에 입학한 후라면 이것을 가지고 고민해 봐야 달라지는 바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좋으면 하는 거고, 빨리 취업해서 먹고 사는 게 더 좋다면 안 하는 거죠.

2. 말씀대로 열정과 노력도 중요하고, 재능도 어느 정도는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엘리트 천재 상위 0.0001%만 철학자가 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진지하게 직업으로서의 철학에 발을 들인 사람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철학, 특히 칸트 같은 고전 철학의 경우에는 얼마나 시간을 들여서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관련 해석과 연구들을 잘 파악하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사했던 선생님들 모두 입을 모아 철학은 엉덩이 제일 오래 붙이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학문이라고 말씀하셨고, 제 경험상으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철학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끈기가 있고 성실하지 않으면 잘하기가 아주 힘든 학문 같습니다.

2번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의 글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기본적으로는 아주 많이라고 답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TA를 하시거나, 혹은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서 장학금을 받으시거나 할 수 있습니다.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더구나 박사의 경우에는 학교 밖에도 여러 장학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철학 공부에는 매우 돈이 많이 들지만, 부유한 집 자제들이 아니라도 철학 공부를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4. 본격적으로 철학을 전공해서 그쪽 용어에 익숙하신 게 아닌 이상 어렵다고 느끼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것은 경제학 비전공자가 수식으로 가득한 고급 경제학 이론들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런 책들을 고작 한 번 훑어보고서 이해가 잘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죠(속칭 "도사"들 중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학원은

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봅니다. 학부생 때 『존재와 시간』이나 『순수이성비판』을 떼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겁니다. 『존재와 시간』, 『논리철학논고』,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은 관련 전문 연구자들도 머리 싸매면서 읽는 책이고 매년 이 책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쏟아지는데, 그런 책들을 "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써놓고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결국 결정을 내리시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질문자께서 얼마나 철학을 좋아하느냐인 것 같네요. 좋아하는 학문이 인기도 많고 전망도 좋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본인의 관심과 현실적인 조건들을 잘 저울질하셔서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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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직히 절대 학생 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통폐합되고 철학과 역시 사라지고 있는 지금 한국의 시점에서, 미래의 정교수 임용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만약 철학에 업을 둘 생각이 있으시다면 차라리 철학적/학문적 역량과 언어적 역량을 키워서 잠재적 잡마켓을 해외까지 확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생산적이고 그럴듯해 보입니다. 적어도 한국의 정교수 자리보다야 글로벌 잡마켓이 적어도 기회의 측면에서는 더 낫겟죠. 게다가 해외에서 한국의 어느 학부 나왔는지 알게 뭡니까?

  2. 2번은 4번과 어느정도 연결된 것 같습니다.
    재능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경제학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수식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라면 곤란한 것처럼, 철학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복잡한 논변과 논의를 보면 머리가 아프고 책을 덮고 싶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곤란하겠죠. 이러한 포괄적 성향도 다 재능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면 "엘리트 천재 상위 0.0001"들만 할 수 있느냐? 적어도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만난 철학과 교수님들 중 "엘리트 천재 상위 0.0001"이라고 생각한 분은 한분도 없었습니다. 적절한 재능과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구나 하는 교수님들이 대다수겠지요.

사소한 구분이지만, 대학원을 가는 것과 철학을 업으로 삼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자가 후자를 위한 필수조건이겠지요.
대학원을 가는 것은 해당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만으로도 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원을 가는 시간과 비용, 에너지에 대한 기회비용을 고려해야겠지요.

학문을 업으로 삼는 것은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만으로는 곤란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문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학문적 공동체(학회,대학교,연구소)에 속한 일원으로서 좁게는 학문적 공동체를 위한, 넓게는 사회, 국가, (거창하게는) 인류를 위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작업을 생산해낸다는 것입니다. (그 댓가로 돈을 받는 것이구요). 예컨대 내가 칸트철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있다면 그저 칸트의 글들을 잘 읽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칸트철학에 대한 나의 새로운 해석 및 논의를 출판하여 다른 학자들 및 학문공동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칸트 철학에 대한 개설서를 써서 대중으로 하여금 칸트철학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거나, 칸트 철학의 의의를 뽑아내어 공동체/국가/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논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생산적 활동을 할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면 국가 및 기관이 왜 한갓 "철학 애호가"를 위해 임금과 재정을 지불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모르겠습니다.

답이 되셨길 바랍니다.

  1. 해외 유학을 염두에 두신다면 충분한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이 경우에도 장학금 제도 등이 있습니다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국내 대학원은 장학금제도가 비교적 잘 되어있다고 들었으나, 확실히 아는 바가 없어 넘어가겠습니다.

  2. 2번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원 진학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 님이 충분한 호기심과 의지가 있고, 철학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충분히 지원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가보고 아니면 다른 길로 유턴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따라서 학부 때 무슨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는 그리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봅니다. 많은 책을 읽었다면 대학원 때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있겠지만, 꼭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가 학부 때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봤거든요.

철학을 업으로 삼을 것을 전제하는 대학원 진학이 문제라면, 몇 권의 책을 읽었느냐보다는 자신이 철학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고유한 문제의식이나 주제가 있는지, 즉 2번에서 예시를 든 활동들을 할만한 철학적 주제의식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물론 이것을 학부 때 모두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주제의식이나 철학적 관심사는 대학원 내내, 심지어 학위논문을 쓰면서도 계속해서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든 대답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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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는 학자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글이기는 하나, 이 글의 서두에는 한 개인이 직업으로서 학자가 되려고 할 때의 어려움들이 솔직하게 개진되어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구절 몇 가지만 가져와보면 이렇습니다.

"즉 그러한 사강사가, 게다가 조교가 언젠가 정교수나 연구소 소장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그야말로 요행(Hasard)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연만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보통이 아닐 정도로 크게 지배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그 정도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직업을 나는 이 지상에서는 거의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당시에 나와 동년배인 사람들이 의심할 바 없이 더 많은 업적을 성취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매우 젊은 나이에 한 학과의 정교수로 임명된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절대적인 우연 덕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 이상률 번역, 직업으로서의 학문, 문예출판사, 15쪽)

"이와 같이 대학사회는 거친 우연에 맡겨져 있습니다. 젊은 학자들이 강사가 되는 것에 관해 조언을 구하러 올 때, 그들을 격려했다고 해서 〔우리들이〕 그 책임을 질 수는 거의 없습니다. 젊은 학자가 유태인이라면, 사람들은 그에게 당연히 ‘모든 희망을 버리라(lasciate ogni speranza)’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태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당신은 평범한 동료들이 해마다 당신을 앞질러 승진해나가는 것을 보고도 화내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서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면 말할 필요도 없이 그때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받습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단지 나의 천직을 위해서 살 뿐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내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그것을 참아내는 예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보았습니다." 같은 책, 19쪽.

"학문에 종사하는 자가, 이번에 나는 오래갈(dauern)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만족감을 실제로 인생에서 아마도 두 번 다시 없이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격한 전문화를 통해서뿐입니다.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며 가치 있는 업적은 항상 전문적인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가죽 눈가리개를 일단 끼고서 이 친필 원고의 이 구절에 대해서 이러한, 바로 이러한 판독(判讀)을 올바르게 하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학문을 멀리하십시오." 같은 책, 21쪽

  1.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권력관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2. 저는 이 질문이 3번과 연관되는 질문으로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막스 베버의 언급처럼, 열정과 노력만으로 커버가 되지 않고, 분명 운이 작용합니다. 그 운이란, 자신의 공부를 집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 그래서 별다른 불안과 걱정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지의 여부, 그 자신의 세계가 얼마만큼 문화-교육자본을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공부 과정에서의 이해를 더 쉽게 할 수 있을테니까요), 학위과정을 무사히 마치더라도 강의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 어렵사리 강의를 얻더라도, 강의 혹은 생존을 위한 벌이에 쫓겨야 하는지의 여부(이후의 연구활동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커리어를 쌓더라도 실제 교수로 채용되는지의 여부. 이 모든 것들에서 개인은 물론 있는 힘을 다해 목표를 향해 경주하겠지만, 각 개인이 원하시는 '교수가 되어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그 과정에서의 '운'이 작용합니다. 어느 직업세계에서나 그렇겠지만 이곳은 더 그러하다고,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매진했음에도 학위과정 이후에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정도의 벌이만을 얻는 경우도 있다는 경우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그러한 철학서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방대한 선행지식체계가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에 가서, 이미 그러한 체계 속에서 철학서들을 접하고 이해하며, 지식을 생산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배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직업세계로서의 철학에서 내가 어떻게 되든, 나는 뭘 해서든 먹고 살 수 있어, 친구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차를 몰고, 잘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공부하는 내 삶에, 점점 더 이해가 깊어지고 있는 내 삶에, 나는 만족해'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봐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불안은 인생을 좀먹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누가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곳으로 자꾸 시선이 가고, 다른 선택지들을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것들이 불안의 기능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항상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항상 곁에 있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면, 더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겠죠. 이 불안이 필요없는, 쓸데없는 불안이 아니라, 정당한 불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철학과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더더군다나 힘든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수가 되는 이들은 끝까지 공부를 놓지 않는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끝까지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는 게 바로 운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것이 재력이든, 불안에 짓눌리지 않고 공부를 감행할 수 있는 개인의 성격이든 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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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을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위의 훌륭하신 선생님들께서 해주셔서 저는 응원의 말씀만 남기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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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 후 복수전공을 염두에 두신다니 좀더 시간을 갖고 수업을 들어보시면서 천천히 결정을 내리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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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분들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현실적인 답변을 충실히 적어드린 듯합니다. 저는 다만 누군가가 저에게 직업으로서의 '철학'을 고민한다면, 제가 결정적이라 생각하는 질문을 두 개 적을까 합니다.

(a)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많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가?'
; 철학으로 석사 - 박사 - 학계에 어떠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사실 인생에 있어서 꽤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이는 인생의 방향을 어느정도 결정짓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분들이 말했듯, 이 과정은 불확실함과 (통계상 절반 정도는 되는) 확정된 실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열정과 호기심 등으로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실 수 있지만, 생각 외로 사람의 열정이란 휘발성이 강합니다. (특히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순간부터 정말 재미없고 - 하기 싫은 것들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재미와 열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를 왕왕 보았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어느정도 그랬고요.)

이 긴 시간 철학을 꾸준히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재능이란, 철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납득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내 논문을 고작 심사위원만이 읽고, 주변 친구들은 가정을 가지고 안정을 이루지만 나는 그러지 못 할 것 같고 등등...철학을 공부함으로서 겪게 될 고통이 있을 겁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서 이러한 고통을 '납득할 만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철학을 업으로 삼는 일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듯 합니다. 막말로, 철학보다는 삶이 중요하니깐요.

(b) 나는 논문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 (적어도 싫어하지 않는가?)
;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철학을 업으로 삼는 것의 결정적인 차이는 '논문'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학계나 외부에서 학자를 평가하는 것은, 학자가 읽은 책의 양도, 대출 목록도 아닌 그가 쓴 논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논문은 굉장히 형식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겁니다. 학계에서 논의되는 주제를 찾아야 하고, 그 주제의 쟁점에서 어떻게든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행 논문들도 읽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분야의 기초 지식도 가져야 하고. 예상외로 굉장히 고단한 '노동'에 가깝습니다.

이 노동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아야 철학을 업으로 삼기에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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