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학계 잡마켓, 그것도 인문대쪽 잡마켓을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선 영미권이든 한국이든 잡마켓 특성상 기존 분들이 은퇴하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매년 인원 수라던가. 각 자리가 요구하는 자격이라던가 그러한 것들이 달라지니깐요.
주변에서 보면, 이런 것까지 설계하고 전공을 고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제가 흥미 없는 공부는 못하는 (....) 편인지라 그 노력이면 차라리 다시 법대를 가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하하.
(2) @yhk9297 님의 조사가 맞을 수도 있지만, 제가 겪은 경험(...)과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약간의 오류가 있지 않나, 라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도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직위를 많이 생겼지만, 이게 영미권의 "테뉴어 트랙 교수"와 비슷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교수는 드문 편입니다. 보통 영미권에서는 XX 교수라고 하면, XX에서 대학에 기부를 많이 하였고 그 결과 생긴 "테뉴어 자리"를 가리킬 때가 많지요.
만약 한국에서는 XX 교수라고 하면, 단기적인 국가 프로젝트의 사업금으로 생긴 자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프로젝트 기간이 사라지면 끝나는 자리이지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영미권 탑스쿨에서 박사를 받으시고 바로 "테뉴어 비스무리한" 자리로 금의환향 하시는 케이스는 한번도 보지 못하긴 했습니다 (...) 다들 시간강사로 시작하시고 운이 좋으신 몇 분들이 결국 '교수' 직함이 있는 지위를 가시고, 그보다 운이 좋아야 '안정적인 교수'가 되지요. (특히 한국 대학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이 가진 위치가 참 좁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하하.)
(3) 정리하자면, 딱히 한국이라고 영미권보다 잡마켓이 낫다고 말하긴 좀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TheNewHegel 님이 지적하듯, 한국 대학의 현상황은 굉장히 처참한 편입니다. 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대학 정원 감소, 그로 인한 학과 통폐합이 예전에는 경고였다면 이제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라고 할까요? 설사 @yhk9297 님이 지금 하신 조사가 정확하다하더라도, 한국에서의 상황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요소는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4) 그리고 이제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한국에서의 잡마켓과 영미권에서의 잡마켓에서 사람을 뽑는 기준이 꽤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옛날이야 뭐,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서 박사 받으면 다 임용되거나 전임 강사 자리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생각 외로 "객관적인 기준"과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교수는 연구자가 아니니깐요. 냉정하게 보자면, 교수는 대학에 이익을 주면 좋고 이익을 못 주더라도 최소한 손해는 안 낼 정도의 수익을 내야 하는 직업인이지요 하하.)
(4-1) "객관적인 기준"의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논문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어찌보면 불합리할 수도 있고 어찌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는 갭이 있습니다.
영미권 탑스쿨 나오셔서, 영미권 탑 저널에 매번 논문이 실리시는 뛰어난 분이 있었지만, 국내 임용에서 다른 분한테 밀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보았더니, 논문 양에서 밀렸다는 군요. 아니, 그 분 1년에 5편 가까이 내는 분 아니었나? 거의 미친 생산성이었는데. 알고보니, 영어 논문은 1.5던가 가중치를 두지만, 경쟁자분이 국내 논문 수가 훨씬 많아서 밀렸다고 하더군요.
(4-2) 말했다시피, 교수 임용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는 어디까지나 한 요소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뛰어난 연구 성과가 없더라도, 대중들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분야를 연구해서 대중 인지도가 높거나, 국가 프로젝트을 따기 좋은 연계 분야 (문화 컨텐츠로의 전용, 아니면 한국 철학도 있겠지요.)에 있거나, 혹은 점차 한국 대학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는 여러 유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다거나 (생각보다 한국 캠퍼스에서느 이제 중국 혹은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이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하죠.) 등등.
이제 이러한 것들이 교수 임용에서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본 가장 탁월한 금의환향 케이스도 이런 경우(처럼) 보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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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잡마켓이라 하니 두 가지 말이 생각납니다.
모 강사님이 말하시길 "어찌되었든 먹고 사니 너무 걱정 말라." (= 잘먹고 잘 살고 안정적이진 않을테지만, 여하튼 시간강사 두 세개 뛰면 1년에 한국 중산층 평균 수익인 300만원 정도 번다.)
모 교수님이 말하시길 "만약 아프리카 가나에서 날 채용하려고 한다? 그럴 때 군말 없이 거기 가서 먹고 살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박사에 안 가는 걸 추천합니다."
(괜히 요즘 국내 대학에서 탑스쿨 나오신 영미권 백인분들이 계신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