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철학 박사 이후 job market이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UCL에서 철학 학부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진로 중에 철학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 학위를 목표로 하는 것도 고려중인데, 얘기를 들어보니 영미권은 철학 박사 학위를 따도 대학에 취직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라, (대학원 마친 분들이) 다들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지 않더군요. 한국 대학에 취직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지 아니면 상황이 좀 다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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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북미 교수 임용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도 철학과 하나도 관련없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으니요. 예전에 꽤 순위 높은 대학에서 헤겔 형이상학으로 박사를 따신 분이 시간 강사 몇 년 하시다가 환경 컨설턴트로 취직한 것도 봤습니다. 아주 암울한 현실이죠.

저도 직접 임용시장에 뛰어든 적이 (아직) 없기 때문에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학 잡 마켓은 미국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제가 구글링한 바로는, "좋다"고 하는 미국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따고 한국에서 교수를 안 하고 계신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놓친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대학들은 박사 졸업생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한국인이 있었는지 추적할 수 없습니다 (예: MIT)). 물론 쉽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철학 박사를 딴 뒤 환경 컨설턴트가 되지 않을까 걱정해도 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하지만 구글링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 찾으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임용을 경험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듣기로 한국 쪽 사정은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나은 게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탑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끝내 자리를 얻지 못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고, 영미권과 달리 한국은 애초에 풀이 작은 데다가 인구절벽으로 인한 철학과 통폐합(의 가속화) 등으로 그나마 있던 자리마저 더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임용시장은 더더욱 열악해지리라 전망합니다.

Ps. "좋다고 하는 미국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따고 한국에서 교수를 안 하고 계신 분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인데, 정보를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하네요. PGR 랭킹 상위권에 있는 대학들의 Placement Record를 찾아보신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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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R 안에서 15-20위 안에 있는 대학들을 찾아본 후, 그 대학들의 Placement Record에서 한국인 이름들을 다 찾아봤습니다 (예: Gildong Hong 이란 사람이 Placement 페이지에 보인다면, "홍길동 철학" 등으로 찾아봤습니다). 제가 찾은 바로는, 순위가 높은 학교에서 공개한 한국인 이름 중에 한국 대학에서 교수로 안 계신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다시피, 한국인 이름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MIT 같은 경우는 한국인 박사 한 분이 계시고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시지만, MIT에서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Brown 같은 경우는 페이지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똑같은 이름이 중복으로 나온다거나 하는 등의 unreliable한 데이타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맥상 PGR기준 탑스쿨 진학 후, 한국 대학 교수로 임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디엠으로라도 그런 분들에 대한 걸 알 수 있을까요? 제가 placement에서 찾은 이름들은 거의 다 한국 대학 홈페이지 교수진에서 찾을 수 있었거든요.

+) 제가 관심 없는 대학 몇 군데든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예: NYU, UC Berkeley, 등). 그렇기 때문에 몇 분 놓쳤을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제 생각에 질문이 조금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애초에 학계이든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지간에 학위 혹은 자격증 등을 딴다고 하여 교수직 같은 양질의 일자리 취직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지역 범위를 넓히면 독/프/영어권 유명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온 분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러니 결국은 실력이 중요합니다.
물론 영미권의 소위 "탑스쿨"이라는 곳을 가면 실력 증진을 하기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야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그곳에서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취직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위험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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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구할 수 있는 데이터로 얼추 계산해보면 탑스쿨 박사의 한국 대학 교수 임용 비율이 70-80프로 정도됩니다. 언뜻 보면 높은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대학교 합격률이 70프로면 들어가는 게 보장이겠다시피 하니깐요. 하지만 힘들게 박사 딴 사람들 사이에서 70프로면 절대 높은 숫자가 아니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30프로는 임용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니깐요.

이게 항상 중요한 것 같습니다. 꼭 크립키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히 업적을 남기고 인정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한국 학계는 잘 모르지만요).

관련없을 수 있겠지만, 전 주변에 항상 하는 말이 이겁니다. 전 그렇게 열심히 할 자신도 없고 인정 받을 자신도 없어서 랭킹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요. 실력이야 가지면 좋겠지만, 가질 수 있는 게 학벌밖에 없을 거 같아서 집착을 많이 합니다. 고등학교 땐 학벌 상관없이 대학원 잘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랭킹 안 보고 정했는데, 이제 그 정도의 자신감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교수님들과 얘기할 때 벽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여기 있는 모두들 미래에 다 같이 임용돼 있으면 좋겠네요.

(1) 사실 학계 잡마켓, 그것도 인문대쪽 잡마켓을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선 영미권이든 한국이든 잡마켓 특성상 기존 분들이 은퇴하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매년 인원 수라던가. 각 자리가 요구하는 자격이라던가 그러한 것들이 달라지니깐요.

주변에서 보면, 이런 것까지 설계하고 전공을 고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제가 흥미 없는 공부는 못하는 (....) 편인지라 그 노력이면 차라리 다시 법대를 가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하하.

(2) @yhk9297 님의 조사가 맞을 수도 있지만, 제가 겪은 경험(...)과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약간의 오류가 있지 않나, 라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도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직위를 많이 생겼지만, 이게 영미권의 "테뉴어 트랙 교수"와 비슷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교수는 드문 편입니다. 보통 영미권에서는 XX 교수라고 하면, XX에서 대학에 기부를 많이 하였고 그 결과 생긴 "테뉴어 자리"를 가리킬 때가 많지요.
만약 한국에서는 XX 교수라고 하면, 단기적인 국가 프로젝트의 사업금으로 생긴 자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프로젝트 기간이 사라지면 끝나는 자리이지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영미권 탑스쿨에서 박사를 받으시고 바로 "테뉴어 비스무리한" 자리로 금의환향 하시는 케이스는 한번도 보지 못하긴 했습니다 (...) 다들 시간강사로 시작하시고 운이 좋으신 몇 분들이 결국 '교수' 직함이 있는 지위를 가시고, 그보다 운이 좋아야 '안정적인 교수'가 되지요. (특히 한국 대학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이 가진 위치가 참 좁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하하.)

(3) 정리하자면, 딱히 한국이라고 영미권보다 잡마켓이 낫다고 말하긴 좀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TheNewHegel 님이 지적하듯, 한국 대학의 현상황은 굉장히 처참한 편입니다. 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대학 정원 감소, 그로 인한 학과 통폐합이 예전에는 경고였다면 이제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라고 할까요? 설사 @yhk9297 님이 지금 하신 조사가 정확하다하더라도, 한국에서의 상황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요소는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4) 그리고 이제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한국에서의 잡마켓과 영미권에서의 잡마켓에서 사람을 뽑는 기준이 꽤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옛날이야 뭐,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서 박사 받으면 다 임용되거나 전임 강사 자리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생각 외로 "객관적인 기준"과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교수는 연구자가 아니니깐요. 냉정하게 보자면, 교수는 대학에 이익을 주면 좋고 이익을 못 주더라도 최소한 손해는 안 낼 정도의 수익을 내야 하는 직업인이지요 하하.)

(4-1) "객관적인 기준"의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논문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어찌보면 불합리할 수도 있고 어찌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는 갭이 있습니다.

영미권 탑스쿨 나오셔서, 영미권 탑 저널에 매번 논문이 실리시는 뛰어난 분이 있었지만, 국내 임용에서 다른 분한테 밀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보았더니, 논문 양에서 밀렸다는 군요. 아니, 그 분 1년에 5편 가까이 내는 분 아니었나? 거의 미친 생산성이었는데. 알고보니, 영어 논문은 1.5던가 가중치를 두지만, 경쟁자분이 국내 논문 수가 훨씬 많아서 밀렸다고 하더군요.

(4-2) 말했다시피, 교수 임용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는 어디까지나 한 요소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뛰어난 연구 성과가 없더라도, 대중들이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분야를 연구해서 대중 인지도가 높거나, 국가 프로젝트을 따기 좋은 연계 분야 (문화 컨텐츠로의 전용, 아니면 한국 철학도 있겠지요.)에 있거나, 혹은 점차 한국 대학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는 여러 유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다거나 (생각보다 한국 캠퍼스에서느 이제 중국 혹은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이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하죠.) 등등.
이제 이러한 것들이 교수 임용에서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본 가장 탁월한 금의환향 케이스도 이런 경우(처럼) 보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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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잡마켓이라 하니 두 가지 말이 생각납니다.
모 강사님이 말하시길 "어찌되었든 먹고 사니 너무 걱정 말라." (= 잘먹고 잘 살고 안정적이진 않을테지만, 여하튼 시간강사 두 세개 뛰면 1년에 한국 중산층 평균 수익인 300만원 정도 번다.)

모 교수님이 말하시길 "만약 아프리카 가나에서 날 채용하려고 한다? 그럴 때 군말 없이 거기 가서 먹고 살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박사에 안 가는 걸 추천합니다."
(괜히 요즘 국내 대학에서 탑스쿨 나오신 영미권 백인분들이 계신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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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계 월스트리트에서 파생상품 거래로 돈을 벌고 물의를 일으킨 시발점에 앤드 크루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양반은 유펜에서 인도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밟다가 졸업 후에 교수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하버드 MBA과정에 진학을 합니다. 거기서 외환거래에서 발생하는 재정차익(Arbitrage)와 관련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교수의 연구를 도와줍니다.

그리고는 졸업해서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외환거래에서 발생하는 재정차익거래로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줍니다. 정확하게는 뉴질랜드 통화에서 이상이 발견되자 대형 레버리지(차입거래)를 동원해서 3억불을 법니다. 그러나 그 중 1%만 보너스로 받자 회사를 옮겼다가 자신이 회사를 차립니다.

앤디 크루거 정도 되는 천재라면 삶에서 철학 박사를 하던 뭘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도 취업인터뷰에서 학부 전공이 철학인 경우 MBA를 해도 학부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즉 상경계나 공대에 비해서 불리합니다. 물론 아주 특출난 천재는 예외일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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