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학생의 질문

요즘에 들어 거의 매일 공부를 하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예전에는 그림 그리거나 철학,고전세계문학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내면 정신과 마음이 깊어지고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요즘은 시계를 확인하고 나서는 공부할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고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요.
이와 비슷한 경우로 최근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읽고나니 주인공이 공부에 내몰아쳐진 처지가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원래 저의 진로는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문과 계열인 것 때문인지 이 진로에 대해 부정적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끝까지 저의 진로를 추구하는 길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취하면서 철학을 취미로 하는 길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취미생활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공동체에 항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미래의 나를 위한 일종의 희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이런 걸 생각하다 보니 제가 봐온 철학자들이 현시대를 보면 슬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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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임용 시장은 언제나 열악했습니다. 철학과에 진학한 사람 중 박사까지 마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교수로 풀리는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철학이 좋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길 찾아보는 거죠. 이미 해당 고민과 비슷한 주제의 글들이 올라왔으니 참조가 될 것입니다.

이공계랑 철학 복수전공도 나쁘지 않고, 이공계 학부를 딴 뒤 철학 석사를 따도 되긴 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분 중에 그런 경우가 꽤 있고요. 철학이랑 이공계랑 워낙 비슷한 면이 많기도 하고, 철학 중에서도 이공계랑 관련이 깊은 철학들도 많아서, 크게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AmorFati 님이 봐오신 철학자들도 원래 유복하게 자란 것이 아니라면 현실과 많이 타협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헤겔도 꽤 늦은 나이까지 대학에서 직장을 못 얻어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였고 (물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긴 했지만요), 칸트도 9년 동안 과외 선생으로 돈벌이를 하기도 하거나 논리학 강의를 엄청 무리해서 하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철학 뿐 아니라 흔히 말하는 예체능이나 문사철에 다 해당되는 얘기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유난히 긴 이유도, 원고료가 페이지 수에 비례했기 때문에, 원고료 더 받으려고 일부러 길게 썼다는 말도 있죠.

아무튼, 저도 공대/순수수학 저울질을 하다가 철학과로 전과했지만, 아직 임용시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해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드리자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 철학 박사생 지원금이 연당 6천만원이 넘어갑니다. 학부 졸업 후, 하버드 박사를 붙고, 박사를 딴 후에 임용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위험할 일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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