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옥스퍼드 철학계의 장면들에 대해 많이 얘기를 했으니 이제 80년대와 90년대의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이 시기는 단지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놀랍게도 새로운 흐름의 언어철학은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옥스퍼드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한 가지 이유는 비극적인 외재적 이유였다. 개릿 에반스(Gareth Evans)가 1980년에 34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이다. 그와 함께 옥스퍼드의 새로운 흐름은 기술적인 위풍당당함을 잃었고 의미론의 세부적인 작업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제임스 히긴보덤(James Higginbotham)이 일반 언어학 교수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재직하고 있었지만 그가 참여할만한 데이빗슨식 의미론의 작업들이 많지 않았다. 데이빗슨 붐은 기묘한 결말로 나아갔다. 존 맥도웰, 데이빗 위긴스(David Wiggins), 마크 플랏츠(Mark Platts) 등에 의해 도덕철학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이런 전환은 단어가 그 지시체를 언명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진리에 관한 동음이론(homophonic truth theory)에 방점을 두면서 이루어졌다. 겉보기완 달리 영어에서 ‘round’가 둥근 대상들에만 정확히 적용된다는 것은 사소한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어를 배우면서 그 사실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의미 분석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어떤 의미론적 원자에 이르러야 한다. 비동음적(non-homophonic) 의미론으로 돌아서는 것은 분석의 의미론을 통해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의미론의 목적은 대상 언어를 바닥부터 배울 수 있게끔 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언어 사용자들은 이미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대상 언어의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를 체계적이고 조합적인 방식을 통해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흐름의 언어 철학에서 내포주의적 입장을 취하더라도 이런 동음적 의미론에 의존해야 한다. 데이빗슨주의자들은 특히 이런 동음적 의미론을 도덕 언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evil’은 악한 모든 것들, 그리고 오직 악한 것들에만 적용된다. 도덕 언어를 이렇게 완전하게 실재론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이 의미론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또, 도덕적 용어에 대한 추가적인 의미론적 분석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것들은 분석불가능한 것으로 다뤄질 수 있다. 따라서 데이빗슨식 언어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도덕적 실재론을 보호하는 의외의 역할을 하고 있게 된 것이다. 이와 달리 더밋은 의미 이론에 관해 더 무거운 설명적 필요성을 두었고, 어쩌면 그런 요구는 너무 무거워서 만족될 수 없을 만큼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후반부터 더밋은 분석철학의 더 큰 세계적인 경향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언어 철학에서 심리 철학으로의 전환이었다. 더밋이 바라보는 철학사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인식론을 제일 철학으로 만들었고 그 후 프레게는 언어 철학을 제일 철학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분석철학은 바로 그 언어적 전회로부터 흘러나온 철학이었다. 하지만 많은 분석철학자 및 탈-분석철학자들(ex-analytic)은 심리 철학을 언어 철학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이단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행동주의 심리학보다 인지 심리학이 철학에게 있어 더 매력적인 대화 상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두 영역의 접촉점은 심리 철학이 되었다. 예컨대, 지각 이론 같은 것 말이다. 마음의 내적 작용에 관한 계산 모형(computer model)은 점점 영향력 있는 견해가 되어 갔다. 수많은 혁신이 다시 한 번 북미에서 일어났다. 행동주의가 그 권위를 잃으면서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의 1974년 논문 “What is it like to be a bat”은 의식 경험을 직접 다루는 논의를 선도한 논문으로 등장했다. 대니얼 대닛(Daniel Dennett)의 1981년 저작 The Intentional Stance는 여전히 옥스포드 대학 시절 그의 지도교수였던 라일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그 역시 심리 철학을 통해 심리학에 접근한 것이지 언어 철학을 통해 접근하지는 않았다. 제리 포더의 1975년 저작 The Language of Thought은 컴퓨터 기계 언어 모형에 착안하여 사고의 언어를 가정하긴 했지만 이는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의 방법론에 따른 연구이지 언어학에 따른 연구는 아니었다. 나아가 사적 언어 논증을 따라 제일 철학을 공적 언어의 철학으로 본 더밋과 달리 사고의 언어는 공적 언어도 아니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이런 심리 철학으로의 전환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더밋은 여기에 기여한 바가 있다. 더밋이 보기에 언어 철학에서 프레게가 이룬 성과의 대부분은 뜻과 지시체를 구분한 것에 의존한다. 뜻은 인지적으로 개별화된다. 즉, 두 뜻은 동일한 지시체를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들로 나타낼 수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뜻이 지시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사고하는 자에게 투명하게 제시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뜻의 이러한 인지적 본성에 착안하여 더밋은 언어의 의미론과 화자의 언어 사용을 연결 짓고 싶어 했다. 말하자면 ‘아침별’과 ‘저녁별’은 다른 뜻과 용법을 갖지만 지시체는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다. 더밋은 지시체의 층위와 언어적 의미의 층위를 나누는 것이 받아들일만하다고 본 점에서 프레게를 따랐다. 프레게식 의미론은 이러한 구분을 함으로써 러셀과 같은 단층 지시적 의미론(one-level referential semantics)보다 언어 현상을 더 잘 설명한다는 점에서 우위에 있었다. 그런 언어 현상의 예시로 ‘메리는 아침별이 밝다고 생각한다’와 ‘메리는 저녁별이 밝다고 생각한다’라는 두 문장의 진리 조건이 얼핏 보기에 달라 보이는 현상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북미에서의 새로운 흐름의 언어 철학은 특히 공적 언어의 차원에서 프레게와 척을 졌다. 특히 화자가 공유하는 이름의 의미론적 속성은 그것의 지시체라는 점에서 그랬다. 크립키가 강조했고 심지어 프레게조차도 강조한바, 어떤 이름과 화자가 어떤 인지적 관계를 맺는지는 화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시체가 맥락에 의존하는 용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저 개’의 언어적 의미는 특정한 화자가 특정한 상황에서 지각적 지시로 사용될 때 얻게 되는 것이라는 풍부한 인지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대부분의 젊은 옥스퍼드 철학자들은 프레게에 동조한다는 점에서 더밋을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더밋보다 크립키와 다른 북미의 새로운 흐름의 언어 철학자들의 작업에 더 큰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개별 언어 사용자의 층위에서만 뜻과 지시체를 구별했고 언어 전체에 그런 구분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만일 뜻이 인지적으로 개별화된 지시체의 결정자(determinant)라면 고유명은 서로 다른 화자에게서 서로 다른 뜻을 표현할 것이고 지각적 지시사의 경우에는 화자가 같더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뜻을 표현할 것이다. 만일 뜻이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 구조의 대부분은 사고의 층위에 있는 것이지 언어의 층위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뜻’은 종종 ‘지시체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a way of thinking of the referent)로 달리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언어에서 사고로 초점이 옮겨지는 사태는 이미 에반스의 1982년 유고집 The Varieties of Reference에서 발견된다. 더밋의 기준에 비춰보면 에반스를 비롯해 이런 길을 택한 다른 철학자들은 더 이상 분석철학자도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더밋은 바깥으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안으로도 싸우는 셈이 된 것이다. 철학적 방법론에서 사고보다 언어의 우선성을 다시금 주장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가 철학을 사고에 관한 연구(the study of thought)로 간주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긴 했겠지만 그는 사고를 연구하기 위해 철학자들이 취해야 할 적절한 방법은 공적 언어에서 표현된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에 관한 신프레게주의 철학자들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그 방식 말이다. 아마도 신프레게주의 철학자들이 사적 언어 논증에 직접적으로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뜻은 원칙적으로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더밋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보면 공적 언어에 대한 연구가 철학에게 필요한 객관적인 지침을 주기 때문에 공적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 벗어난 자들은 퇴보한 것이다. 공적 언어에 대한 연구가 주는 객관적인 지침을 실험 심리학의 객관적 지침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그의 관점에서 보면, 프레게가 격렬하게 거부했던 심리학주의라는 재앙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종국에는 사고와 사고 행위를 혼동하게 될 것이었다.
더밋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분석철학 혹은 포스트 분석철학의 중심은 1980년대에 심리 철학으로 옮겨져 갔다. 논리학과 의미론은 과거의 위신을 잃었고 대학원생들은 점점 힘들여서 논리학과 의미론을 배워야 할 지적 혹은 직업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지엽적으로 보면 사고에 관한 신프레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예를 들어, 웨인플릿 형이상학 교수직은 스트로슨에게서 크리스토퍼 피콕(Christopher Peacocke)에게 물려졌고 그는 1988년붜 2000년까지 재임했다. 뜻은 개념이 되었다(Senses became concepts).
오랜만에 번역글을 이어 올립니다. 7부는 전에 wildbunny님께서 올리셔서 그 이후 내용입니다.
이번 편은 번역하기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윌리엄슨이 대강 쓰윽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오역도 있을 것 같고 문장도 매끄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