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체 나너이, <미학>(Oxford Very Short) 자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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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적었듯, Oxford Very Short 시리즈 (한국에서는 주로 교유서가의 <첫 단추 시리즈>로 번역되고 있지만, 간혹 다른 출판사에서도 번역본을 내곤 합니다.)는 책마다 편차가 꽤 큰 편입니다. 전에 적은 글에서 보았듯, 이는 내용을 어느정도까지 디테일하게 다룰 것인가, 라는 문제일 때도 있습니다만 <미학>의 경우, 내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문제가 핵심에 가까워보입니다.

이 책은 통상적인 "미학" 개론서라기보다는, 벤처 나너이가 "생각하는" 미학에 대한 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i) 미학이라는 학문이 (학계 내의 여러 패러다임에 대응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ii) 학문(혹은 비평)과 예술의 관계가 어찌 변해왔는지에 대한 간략한 개괄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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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은 통상 "X가 아름답다."라는 판단이 무엇인지, 어떤 경우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다만 18세기쯔음 근대 철학이 형성되던 시점에, 예술에 관한 논의를 하는 다른 철학적 분과가 거의 없었던 탓에, 이래저래 미학이 "예술에 대한 철학"(예술 철학, philosophy of art)의 역할까지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인 나너이가 지적하듯, 이러한 접근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예술과 아름다움은 구분이 됩니다. 우리는 (하다 못해 의도성만 가지는) 인공적인 대상에게만 아름다움을 느끼진 않습니다. 풍경이라던가 그냥 가만히 있던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죠. 한편 모든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수도 있다."라 표현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견해가 갈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학문을 미학으로, 예술을 다루는 학문을 예술 철학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이러면 예술 = 아름다움, 이라는 (유구한 서양 철학의 편견)에서 벗어나, 좀 더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때마침 올빼미에 좋은 예술 철학 개론서에 대한 글이 올라와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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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학은 영미권 분석 철학계에서 거의 "사멸한" 학문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쌍둥이와 같은 예술 철학 역시 변방에 가까운 위치이지만, 미학의 경우는 더 심했습니다.

추정하건데, 분석 철학이란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되었는데, 미학의 대상인 아름다움은 (좋게 표현하자면) 언어로 분석하기에 까다롭거나 (나쁘게 표현하자면) 분석할 수 없으므로 (분석) 철학의 대상이 아니거나,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 중심의 경향은, 분석 철학의 중심이 언어철학에서 심리 철학으로 전환되고, 콰인이 주창한 자연주의가 결국 철학과 인지과학의 경계를 무너트리면서 사라집니다.

(티모시 윌리엄슨의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가>라는 글에서 이러한 분석철학사에 있던 전환을 짧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벤체 나너이의 시작은 여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너이의 스승인 리처드 윌하임(Richard Wollheim)의 시작이 여기입니다. 윌하임은 지각(perception)이 미학/예술 철학의 중요한 문제라고 여겼고, 나너이는 이 문제 의식을 계승해, 그동안 나왔던 지각 철학(과 인지과학의) 중요한 주제/연구들을 미학 연구로 통합시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학은, (흔히 철학사에서 말하는) 바움가르텐 -칸트로 계승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라는 주제와 몇 억 광년 떨어진, 지각의 철학을 바탕으로 "완전히 재구성된" 미적 경험에 관한 이론입니다.

여담 ; 윌하임이 이런 문제를 자각하던 시점에서, 이런 연구가 어려웠을 겁니다. 지각 철학도 인지 과학도, 심리 철학도 이제 막 시작하던 상황이니깐요. 그러다보니 윌하임도, 켄달 윌튼처럼 개념 분석이라는, 보다 고전적인 분석 철학 방식의 예술 철학, 에 해당하는 업적이 더 많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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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나너이는 자신의 세대, 지금의 학계가 가진 문제의식에도 활발하게 대응합니다. 바로 다문화주의와 세계 철학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쓴 짧은 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에 있어서 세계 철학 혹은 "다른 문화권의 개념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는 꽤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과 인식론이 세계/지식에 대한 "가장 올바른 이론"을 제시하려 하는 이상, 결국 어느 문화권이든 (각 문화권이 미치는 영향은 있겠지만) 어떤 공통된 무언가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wildbunny 님이 제가 생각하는 바를 굉장히 명료하고 - 중립적인 언어로 묘사해주신 바 있습니다.

과연, 다른 문화권의 "개념" 중에서 이러한 테스트를 통과할 개념이 몇 개나 있을지...저는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윤리학/미학에 있어서는 이러한 다른 문화권의 개념이 의외로 연구할 만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문화 특정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너이가 지적하듯, 서양 미학은 생각보다 많은, 편협한 가정들 위에 서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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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간략한 요약
1장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 제가 (2)에서 소개한, 예술 철학과 미학에 대한 구분
2장 섹스와 마약, 로큰롤
; 그래서 "미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이 무엇인가? 섹스, 마약, 로큰롤에 대한 경험은 여기에 해당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나너이는 기존 서양 근대 미학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제기합니다.
"미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은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이라하지만, 문제는 아름다움이 빨강 등 대상이 가지는 일반적인 속성과 달리, 굉장히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관찰자에 따라, 심지어 같은 관찰자라도 시점/시간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데, 이러한 맥락 민감성을 포괄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가능한 것인지, 나너이는 회의적인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즐거움이나 무관심 등, "미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의 특성으로 서양 근대 철학이 제시하는 여러 개념들을 비판한 뒤, 나너이는 차라리 주목(attention)의 한 형태로, "미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정의하자 하죠.

3장 -5장은 이 주목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서양 근대 미학이 주목 - 미적으로 여겨지는 경험 대신 미적 판단에 지나치게 집중한 경향을 비판합니다.

6장은 그냥저냥 개인적인 이야기고, 7장은 여러 문화권의 미학에 대해서 살짝 언급한 다음,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주목/인지과학에 기반한 이론의 한 실마리를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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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며, 꽤 충실한 목록도 주지만 여전히 나너이 개인의 "미학"에 대한 접근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책이긴합니다. 따라서 미학 일반에 대한 입문이라기보단, 오늘날 분석 철학에서 "미학"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한 경향성을 볼 수 있는 책이라 보는데 합당한 듯 합니다.

7개의 좋아요

저는 다른것보다 챕터 제목이 자극적이라서 출간하자마자 구입했었네요

저는 조금 오묘했던 것 같아요. 좀 더 본격적인? 적어도 학부나 대학원생을 위한 교재를 예상했는데, 자신의 새로운 야심찬 프로젝트를 "대중" (혹은 비전공자?)에게 선언하는, 그런 출사표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 맞아요. 저도 사실 기존 시리즈와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