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철학》(노엘 캐럴 저, 이윤일 역, 도서출판 b 2019)의 번역에 관한 몇 가지 교정

요즘 아래 책,

으로 비전공자 대상 세미나 하나를 운영 중이던 차에, 오역이나 정정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을 꽤 많이 발견해 제가 (발제자들에게) 제안한 정정 사항들을 공유합니다. 혹 책에 관심이 있어 읽으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1장]

  • (optional) “재현”이라고 옮겨진 부분들은 전부 “표상”으로 옮기는 것이 낫겠습니다. 뒤에서 사용되는 ‘지칭’이나 ‘언급’, ‘지시’ 따위와 이어진 맥락들이 분명하지 않아집니다.
  • 제55면부터 “속성과 관계한다”라는 표현들 및 유사 표현들이 나오는데, 이는 전부 “속성에 관한 것이 된다”로 옮겨져야 합니다. ‘…에 관한 것임’(aboutness), 즉 지향성(intentionality)에 관한 맥락이어서 그렇습니다.

[제2장]

  • 제109면에 등장하는 “관객에게 의도를 전달할 필요 없는no intended audience necessary 논증”은 오독의 소지가 있어, “청자가 의도될 필요 없음 논증”으로 옮겨 읽는 것이 낫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제111면의 “관객에게 전달될 것을 의도함”은, 오역이라 하기엔 애매한데, “의도된 청중에 대한 …”과 같은 구문으로 고쳐 읽는 게 낫습니다.
  • 제115면의 “정신병자”는 “사이코패스”의 오역입니다. (그래서 감정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 Examplification을 역자가 “예화”로 옮겼는데, 이는 “예증”과 같이 옮기는 게 나아 보입니다. Instantiation과 혼동될 여지가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경우는 명시적으로, 굿맨이 컬러 칩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는 것과 같은, 어떤 속성의 예시를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 제145면에 중대한 탈자가 있습니다. “무엇이 유적 귀속을 적절하게 만드는가?”는 “무엇이 유적 귀속을 적절하게 만드는가?”로 읽어야 합니다.
  • 제147면의 “규칙적”은 “systematic”을 옮긴 것인데, “regular”와 혼동되지 않기 위해 “체계적”으로 옮기는 게 나아 보입니다.
  • 제151면의 “(파종기 성질) 트랙터 성질 (tractorness)을 표현한다” 부분에서 원문의 “rather than”이 통째로 빠졌습니다. “(파종기성보다는) 트랙터성(tractorness)을 표현한다”로 고쳐 읽어야 합니다.

[제3장]

  • 별다른 중대한 오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4장]

  • 저자가 “반응 의존적 속성”과 “감응 의존적 속성”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는데, 큰 차이 없이 쓰인 낱말입니다. 전자는 response-dependent, 후자는 respondent-dependent의 역어인데, 차라리 후자의 경우 오역한 것이기도 합니다. ‘반응 의존적’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 듯합니다.
  • 제249면의 “감수-지향적”은 “수용 지향적” 정도로 옮기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같은 낱말이 제252면에서는 “수용적”으로 옮겨져 있음.()
  • 제254면의 정의는 (이건 사실 원문 자체가 문장을 잘 못 쓴 편이긴 한데)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 x가 예술작품이다 iff (1) x는 어떤 능력을 가지게 하게끔 생산된 것이고, (2) 그 능력이랑 곧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능력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음: x is an artwork if and only if (1) x is produced with the intention that it possess a certain capacity, namely (2) the capacity of affording aesthetic experience.)

  • (사소한 문제) 제255면의 “십자고상”은 “예수의 수난” 정도로 옮기는 게 맞습니다. 저자가 기독교적 배경이 적어서 생긴 오역으로 보입니다.
  • 제260면의 “관련 의도가 의도이어야…”가 있는 문장은 통째로 오역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옮겨져야 합니다: “요구되는 바는, [의도적 요소에 있어] 유관한 의도란 그 작품이 미적 경험을 제공할 역량을 갖게 하려는 의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 제260면에 “물리치기(depose)”라는 말이 아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원문 대조를 해 보았는데, “depose” 자체가 흔히 쓰이는 낱말이 아니어서 원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하기로는 "decompose"의 의미로 사용하려던 것을 모종의 영어 능력 이슈(?ㅋㅋㅋㅋ)로 잘못 쓴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해석이 맞다면, 전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 그러나 예술 작품의 이와 같은 의도된 기능은 단지 미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역량이라고만 기술되는데, 이는 예술 작품을 통해 예술가는 이를[즉 그 경험을] 제안하기만(proposes) 하는 것이며, [이를] 청중이 소화하는(deposes) 것이기 때문이다.

  • Disinterest에 관해 저자가 좀 혼란스러운 역어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통상 이를 "무관심함"으로 옮기거든요. "noninterested"를 "관심 없는" 정도로 옮기는게 이 경우 더 나았을 겁니다.
  • 제269면 마지막 줄의 "확인할 수 있다"는 오역입니다. 다음과 같이 옮겨져야 합니다: "… 인공물[…]과 동일시할 수 있다(can identify)."
  • 제305면의 "훈련"은 "conditioning"을 옮긴 것인데, "조건화"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5장]

  • 세미나가 아직 진행되지 않아, 오역 체크를 안 했습니다.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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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하는" (depose)라는 번역어도 적절해 보이네요. 제 생각에는 저자가 propose/depose를 통해 말장난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pose" 가 put/place의 어근이기 때문에 어원적 의미를 살리게 되면 pro-pose = put/place forward; de-pose = put down/away 정도 되거든요. 직역해본다면 "예술작품을 통해 예술가는 앞에 놓기만 하는(pro-pose) 것이며, 이를 취하는(de-pose) 것은 청중이기 때문이다" 대충 이 정도 느낌이지 않을까 해요.

네네! 바로 그 이유에서 '소화하다'를 번역어로 제안했습니다. 결국에는 무언가를 수용하고, 취한다는 맥락인데 ‘물리치다’를 역어로 취한 게 큰 오역이 되어버린 경우이죠. 다만 제 기억에는 원문에 해당 부분에 이탤릭이 되어 있거나 하지도 않았었을 거라, 말장난을 의도한 게 (추측하듯) 맞다면 좀 티를 냈어야 하지 않나… 싶은 ㅎㅎ;;;

+) 예술가가 내놓으면 / 청중이 거두는, 과 같은 식으로 옮겼어도 되었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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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the requirement that the relevant intention be the intention that the work have the capacity to afford aesthetic experience. Here, capacity-talk is ultimately function-talk. That is, the artwork is designed to function as a source of aesthetic experience. But this intended function of the artwork is described merely as a capacity to afford aesthetic experience, since with artworks the artist only proposes, while the audience deposes.

찾아보니 저자가 이탤릭으로 강조한 것은 "Capacity" 뿐인데요. 저자의 고약한 말장난을 추적해보자면, 아마도 capacity/function의 비슷한 의미와 다른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둘 모두 역량/기능이라는 뜻이 있는 반면, capacity는 원래 무언가를 contain할 수 있는 용량과 관련있죠. 이렇게 본다면 예술작품은 일종의 container(source)로서 기능하고, 따라서 예술가는 여기에 무언가를 put forward 하고 청중은 이를 put down/away하는 것이다, 뭐 이런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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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function이랑 capacity가 앞에서 (예술에 대한 미학적 정의를 위해) 사용된 맥락이 있어서 구별되고 있는 건데요. 기억하기로는 다음의 미학적 정의,

에서의 '능력'(capacity)을 일종의 기능적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게 절의 앞부분에서의 맥락입니다.

반면 문제되는 문장에서 'depose'는, 청중이 무작정 예술가의 의도를 거절하는 것은 또 아닌지라, 단지 'put away'로 이해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저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지...

맥락에 맞으면서 'depose'가 맞게 쓰인 것이라면, “while the audience may depose” 정도로 쓰였어야 한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It is the requirement that the relevant intention be the intention that the work have the capacity to afford aesthetic experience. Here, capacity-talk is ultimately function-talk. That is, the artwork is designed to function as a source of aesthetic experience. But this intended function of the artwork is described merely as a capacity to afford aesthetic experience, since with artworks the artist only proposes, while the audience deposes.

여기에서 while은 역접의 의미이고, depose는 완전자동사로 쓰이고 있지요. depose는 완전자동사일때 '증언하다'라는 뜻밖에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depose를 '증언하다'로 보고서 번역해 보면,

  • 그러나 예술 작품의 이와 같은 의도된 기능은 단지 미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라고만 기술되는데, 이는 예술 작품을 통해 예술가는 이를[즉 그 경험을] 제안하기만(proposes) 하며, 반면에 청중은 [이를] 증언하기(deposes) 때문이다.

가 될 것 같습니다.

----> 여기 제가 전에 썼던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들렸습니다. 빨리 수정하지 못해 미안해요. 카르납 님과 Herb님의 해석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으악 뭐죠, 글의 수정 권한이 제게 없는 것 같아요 ;ㅅ; 제5장의 교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5장]

  • 제326면 - '필시'(most likely)는 '거의 확실히' 같은 식으로 옮기는게 좋겠습니다. 귀납논증임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 (참고) 제343면 - "전형"은 "paradigm"의 (통상적) 번역어임.
  • (참고) 제344면 -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s)는 통상적 사물이 특정한 발견 내지 규정을 통해 예술 작품이 되는 경우를 의미함. (ex. 뒤샹의 《샘》)
  • 제5장 제3부 - 앞서 "identify"의 번역에 관해 지적했던 것처럼, 여기에서의 "확인"은 "식별"로 전부 옮겨 읽는 것이 좋습니다.
  • 제400면 - "인정된 당면"(recognized and love)이라고 하니 배가 고파지는데(…) 굳이 이렇게 옮기기보다는, 당연히, "인지되어 있는 현재의"라고 옮기는게 읽기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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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ㅋㅋ 마침 옆에 책이 있네요..! 읽게된다면 참고해서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light_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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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번 쭉 읽은 참이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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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depose의 의미에 대해 여기 제가 달았던 댓글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른 시간에 이를 수정하지 못했네요. 부끄럽습니다만, 혹시라도 폐가 되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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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재현" 번역어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Representation"은 다의적 어휘지만 영미미학의 예술철학적 맥락에서는 대부분 "재현"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eg. 양민정(2011), "회화적 재현과 안에서 보기" )

우리 예술계에서 ‘representation’을 그와 같이 옮기는 것은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만, 캐럴이 언어적 표현의 표상적 성격에 빗대어 예술 작품의 표상적/재현적 성격을 설명하고 있어서요. 전체 논증을 이해하려면 이를 전부 ‘표상’의 파생어로 옮겼거나 적어도 관련된 내용을 부기하는 게 맞았어 보입니다. 물론 지적하신 점이 예술철학 및 미학 전공자들을 고려할 때 합당해서, 저도 “(optional)”이라고 앞에 부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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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다시) 파악하신대로, 원문의 대구법을 고려할 때 두 동사가 같은 목적어를 갖는다고, 따라서 “depose”가 타동사로 쓰였다고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에 대해 코멘트를 하려다 잊고 있었는데 먼저 정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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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문장구조에 대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친절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 오류를 다시 보니 부끄럽습니다만, 늦어도 바로잡는 것이 좋겠죠. 앞으로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