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관한 몇 가지 잡념

(1)

UCLA에 있던 리처드 윌하임(Richard Wollheim)은 영국의 포스트-비트겐슈타인 흐름에서 지각 철학(philosophy of perception)을 가져와, 이를 토대로 미학(혹은 예술 철학)을 해야한다 여겼다.

(한편 가렛 에반스나 크리스토퍼 피콕 등으로 대변되는 지각 철학 일반은 대체로 인식론과 심리철학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미국에서도 그리 수용되었다.)
(미국에서 나온 분석미학의 대표주자인 켄달 월튼과 노엘 캐럴은, 아마 당대 모더니즘 현장 비평 - 형식주의와 더 연관성이 커 보인다. [아서 단토도 현장 비평가였다는 것을 까먹어선 안 될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비롯, 당대 새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말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볼 수 있다면 왜 그런지가, 가 그들의 질문이었고 방법에 있어서는 꽤 형식주의적이었다.)
(기실 프랑스나 독일의 현장 비평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크라우크카우어, 앙드레 바쟁, 벤야민과 바르트의 비평들은 생각보다 작품에 밀착해있다. 이런 경향이 뒤집힌 것은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통일화" 경향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여튼 월하임의 제자인 벤처 나너이와 엘리자베스 캠프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론 캠프는 살짝 많이 특이하다. 아마 대체로 문학에 집중하기 때문 같은데, 언어철학을 많이 가져온다.)

(2)

나는 윤리학도 이리 가지 않을까 여긴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윤리학이 형이상학/언어철학에 바탕을 둔 메타윤리학(metaethics)적 접근에서 벗어나, 규범성(normativity)와 가치(value)와 이유(reason)의 영역을 토대로 쌓아올려져야 여긴다.

즉, (광의의) 행위 철학 위에 윤리학이 수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선구자는 버나드 윌리엄스, 앤스콤과 필리파 풋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제자들과 롤스의 제자들. 드물게 언급되는 길버트 허먼의 연구들.

하지만 결국 학계는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분석적 실존주의와 규범성과 가치에 대한 여러 논문들과 선집들.

아직 정리된 지도가 보이지 않아서 접근하기 난망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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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논의이긴 하지만, '규범성'이나 '이유'라는 주제는 주로 언어철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나요? 언급하신 버나드 윌리엄스와 엘리자베스 앤스콤도 모두 비트겐슈타인 배경의 철학자들이니까요.

(1)

우선 언어철학의 범위를 어찌 잡을지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듯합니다.

화용론, 그것도 아주 극단적 입장까지 가면 (물론 이제는 이게 그렇게 극단적인 견해인지도 모르겠고 학계 내에서도 그다지 극단처럼 보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인간의 언어 능력/의미는 인간의 다른 능력들(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행동 인지, 감정 인지 등등)의 연장선에 있다 보고 있죠.
이런 계열이라면, 언어철학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는 통상 말하는 언어철학, 즉 형식의미론 등등의 논의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헤어 등의 논의가 이런 윤리학에 대한 형식의미론적 접근이랄까....이것의 예시일듯합니다.)

(다만 70년대 이후 나온 표현주의나 유사실재론, 같은 입장은 어느정도 규범성을 언어철학 영역 안으로 가져왔다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발화수반행위는 존 설 이후로 철학자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 같지만, 기버드 같은 메타윤리학적 입장을 경유해서 부활했다, 말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2)

규범성과 이유는, 솔직히 이제 이걸 다루는 학문 명칭이 정확히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접면이 있는 분야가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니깐요.

대표적으로는 20세기 후반 메타윤리학 라인, 그 중에서도 스칼론-코스가르드 라인, 파핏-줄리안 드라이버 라인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대 메타윤리학자들.
소사를 비롯한 덕 인식론도 한 마디씩 하고, 아우디나 설의 말년 작품도 규범성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행위철학은 물론 결정 이론에서도 꽤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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