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니체 철학의 사회철학적 재구성 흐름에 대한 비판적 점검: 공동체주의와 대안적 독법을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 제45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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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철학의 사회철학적 재구성 흐름에 대한 비판적 점검: 공동체주의와 대안적 독법을 중심으로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을 짧게 옮깁니다. 코멘트 환영합니다.

들어가는 말
‘누칼협’과 ‘알빠노’는 2020년대 한국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유행어이다. 전자는 ‘ 들고 그렇게 하라고 박함?’의 축약어이고, 후자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에 ‘-노’를 붙인 후 축약한 단어이다. 두 단어는 함께 공동체를 영위하는 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한다. 더불어 공동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폭력을 가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기도 한다. 정치·사회 철학의 여러 이론이 각자의 준거점을 갖고 이렇게 극단적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한국에서는 그 이론적 도구로 독일의 정치·사회 이론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헤겔의 주·노 변증법, 마르크스주의, 호네트의 인정이론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니체는 여타 독일의 정치·사회 철학과는 달리 개인주의 옹호 철학으로 쉽사리 취급받고, 그와 관련된 깊이 있는 정치·사회 철학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다. 니체는 주로 푸코와 들뢰즈로 대표되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거쳐 간접적으로 참조될 뿐, 그의 저작을 통해 정치·사회 담론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니체로는 공동체 혹은 사회에 관한 긍정적인 철학 논의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은 니체 연구자에게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나 21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영미권 니체 연구자들은 이러한 기존 견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니체의 정치·사회 철학적 면모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니체에 다른 철학자들의 논의를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그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본 논문은 그간 한국 정치·사회 철학 담론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공동체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여러 가지 니체 독법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선 전통적인 해석 방법인 개인주의 니체 독법의 주요 주장을 짚고, 공동체주의 니체 독법과 다투게 될 쟁점 사안을 요약한다(2장). 개인주의 니체 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등장한 공동체주의 니체 독법을 쟁점에 맞추어 소개하고(3장 1절), 그 한계를 짚어본다(3장 2절). 그 후, 공동체주의 니체 독법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두 대안적 독법을 살펴볼 것이다(4장과 5장). 마지막으로, 대안적 독법들이 갖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6장).

나가는 말
지금까지 개인주의·공동체주의라는 정치·사회 철학의 맥락에서 니체를 읽어내는 세 가지 독법을 요약하고 비판 지점까지 소개했다. 전통적 독법은 개인주의 철학으로 니체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니체 저작 내에 존재하는 공동체를 옹호하는 많은 구절을 설명해내지 못하며, 내재적 가치를 개인에만 부여했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영의 공동체주의 독법은 개인주의 독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하였으나, 논리적 결함의 문제와 귀속 가능 여부의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 후에는 개인주의·공동체주의 이분법 도식을 뛰어넘는 대안적 독법 두 가지를 알아보았으나, 그들 또한 타당성과 적실성에 관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비판적 독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긍정적인 형태로 니체 철학을 재구성하지는 못했지만, 니체 철학 내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좀 더 넓은 맥락으로 보았을 때, 본 논문은 분석적 전통에 서 있는 영미권 니체 학계에서 형성된 조류 중 일부를 소개 및 검토하는 과제를 수행한 셈이다. 물론 그중 고작 하나의 흐름을 보였을 뿐, 남은 과제가 산처럼 있다. 다만 본 논문이 그 흐름을 간략하게나마 살필 기회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니체 철학을 분석적으로 검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폭력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치·사회 철학 담론에 니체도 일조할 수 있음을 보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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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빠노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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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알빠노 (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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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아주 훌륭하네요! 다양한 입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면서,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설하고 평가해주셔서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12-13쪽에서 영의 입장과 그 문제를 재구성한 방식은 조금 더 다듬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1. (니체는 자신을 공동체의 의미와 최고의 정당화라고 여긴) 비범한 개인들의 귀족주의를 고대했다. (1과 2의 연언)

라는 부분에서

(a) 주어인 '니체'가 괄호 안에 들어가면서, 괄호 바깥 문장의 주어가 생략되어버린 게 조금 아쉬워요. 물론, 한국어는 주어 생략 문장이 빈번하게 쓰이니,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논증을 재구성할 때는 가급적 완결된 문장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어서요. (그래서 '이것'이나 '그것' 같은 대명사 표현도 논증의 재구성에서는 지양하거든요.) 또,

(b) '연언'이라는 표현이 약간 걸려요. 논리학에서 연언(conjunction)은 'P & Q'의 형태를 취하거든요. 그런데 제시된 4와 5의 내용들은 이런 연언문이라기보다는, 1과 2에서 도출되는 결론 혹은 2와 3에서 도출되는 결론 정도의 의미를 지니다 보니, 차라리 '연역(deduction)'이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물론, 아주 엄격한 형식논리적 연역은 아니라고 해도, 비판적 사고론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종종 위와 같은 형태의 논증의 재구성에서 '연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든요.

하지만 이것들은 굉장히 사소한 형식적 사항들이라, 논문의 전체 내용이나 가치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니체를 이런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구나!'하고 감탄하면서 논문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관련된 많은 작업들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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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호평해 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제가 논리학이나 논리적으로 적절한 표현 형식(?) 같은 것에 취약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인듯합니다. (a) 같은 사실은 이제 처음 알게됐네요. 그리고 (b)에 관한 선생님의 지적 또한 합당한 것 같습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공동체주의 니체에 이제 마르크스 첨가하면.. 이거 완전 들뢰즈..?